[세계사]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 미국 돕다 파산한 프랑스판 왕좌의 게임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 미국 돕다 파산한 '프랑스판 왕좌의 게임


18세기 베르사유, 영원할 것 같았던 절대 권력

'프랑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거대한 궁전이 있나요? 

바로 화려함의 극치라 불리는 '베르사유 궁전'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230년 전, 이 궁전의 주인은 루이 16세 왕과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였어요. 

당시 프랑스 국왕은 신이 권력을 내려주었다는 '왕권신수설'을 바탕으로 절대적인 힘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영원할 것 같았던 이 두 사람의 삶은 결국 '단두대(기요틴)'라는 끔찍한 형틀에서 막을 내리게 됩니다. 

도대체 무엇이 이 거대한 제국을 무너뜨렸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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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16세의 공식 초상화가인 앙투안프랑수아 칼레가 1779년에 그린 루이 16세의 초상화


프랑스 혁명을 촉발한 진짜 원인은 마리 앙투아네트의 보석 쇼핑이 아니라 잘못된 외교 투자였습니다.

당시 루이 16세는 조상 대대로 앙숙이었던 영국의 콧대를 꺾고 싶어 했어요.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바로 '미국 독립 전쟁' 개입이었죠. 

"적의 적은 나의 친구"라는 생각으로 미국 식민지군에 막대한 현금과 무기, 정예 부대를 아낌없이 퍼부었습니다. 

결국 영국의 힘을 빼는 데는 성공했지만, 프랑스의 통장 잔고는 처참하게 박살 났습니다. 

남의 나라 독립시켜 주려다 정작 내 집 안방 금고를 텅 비워버린 셈이죠.

국가 예산을 훌쩍 뛰어넘는 엄청난 빚을 지게 되면서 프랑스 경제는 완전히 무너져 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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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크타운 포위전에서 기지를 몰아치는 프랑스군


백성의 굶주림을 외면한 리더들 왕이 남의 나라 전쟁에 돈을 쏟아붓는 동안, 

정작 프랑스 백성들은 극심한 흉년으로 빵 한 조각을 구하지 못해 길거리에서 굶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때 오스트리아 출신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를 향해 끔찍한 소문이 퍼집니다. 

백성들이 굶고 있다는 말에 "빵이 없으면 달콤한 케이크를 먹으라고 해라!"라고 말했다는 것이죠. 

사실 이 말은 성난 민심이 만들어낸 가짜 뉴스였습니다.

 

하지만 가짜 뉴스라고 해서 그녀에게 죄가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궁전 구석에 '프티 트리아농'이라는 화려한 인공 시골 마을을 짓고, 

매일 밤 귀족들과 파티와 도박을 즐기며 펑펑 돈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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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프 뒤크뢰-마리 앙투아네트


루이 16세 역시 위기를 해결하려 노력했던 똑똑한 재무 장관을 귀족들의 반발에 밀려 해고해 버렸죠. 

굶주린 백성들의 현실을 철저히 외면한 리더들에게 시민들의 분노는 화산처럼 폭발했고, 

결국 왕과 왕비를 베르사유 궁전에서 파리로 강제 압송하는 '프랑스 혁명(1789)'이 시작되었습니다.


국가 반역자가 된 절대 군주 파리로 끌려왔을 때만 해도 시민들은 왕을 죽일 생각까지는 없었습니다. 

제도를 고쳐서 왕과 의회가 정치를 함께 하길 바랐죠. 

하지만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는 리더로서 절대 해서는 안 될 최악의 선택을 하고 맙니다.

 

바렌 사건 (야반도주): 혁명에 위협을 느낀 왕실 일가는 1791년, 하인으로 변장하고 한밤중에 

왕비의 친정인 오스트리아로 몰래 도망치려다 국경 근처(바렌)에서 시민들에게 붙잡힙니다. 

자신들을 버리고 도망친 왕을 보며 프랑스 국민들은 씻을 수 없는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외세와의 결탁 (국가 반역): 더 충격적인 것은, 이들이 몰래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 등 이웃 나라의 왕들에게 

비밀 편지를 보냈다는 사실이 발각된 것입니다. 

"프랑스로 군대를 몰고 쳐들어와 이 건방진 시민들을 무력으로 진압해 주시오!"라고 부탁한 것이죠.

자기 나라 국민을 죽이기 위해 외국 군대를 끌어들인 이 행동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국가 반역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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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형장으로 끌려가는 앙투아네트


국가를 배신한 죗값은 무거웠습니다. 

결국 1793년, 절대 권력을 휘두르던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는 파리 한복판의 혁명 광장에서 단두대에 올라 처형당하고 맙니다.

이들의 죽음은 단순히 미움받는 왕과 왕비의 비극적인 최후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국가의 주인은 왕이나 귀족이 아니라, 이 땅에서 살아가는 모든 평범한 시민이다"라는 

위대한 진리를 전 세계에 선언한 사건이었죠.

미국의 독립 전쟁에서 불어온 자유의 바람이 프랑스 혁명으로 이어지며, 

인류는 부당한 권력에 맞서 스스로의 권리를 쟁취하는 새로운 민주주의 시대로 진입하게 되었습니다.


💡 아는 척하기 좋은 지식 한 조각

사형 도구인 '단두대(기요틴)'는 사실 아주 '인도적인(?)' 목적으로 발명되었습니다. 

이전에는 귀족은 칼로, 평민은 교수형으로 처형하는 등 신분 차별이 있었고, 집행인의 실력에 따라 죄수가 오랫동안 고통받기도 했거든요.

의사였던 기요탱 박사는 "모든 인간은 신분에 상관없이 평등하게, 고통 없이 한 번에 죽어야 한다"며 이 기계를 제안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권과 평등을 위해 만든 기계가 절대 권력의 목을 가장 평등하게 날려버리며 '왕정의 종말'을 알리는 상징이 된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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