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를 낳은 전쟁
The war to end war, The war to end all wars
1차 세계대전은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으로 시작했지만,
2차 세계대전의 씨앗을 품은 채 종결되었습니다.
김지연 서사 라이브러리 에디터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유럽의 등불은 꺼졌지만, 미국의 횃불은 타올랐습니다. Only one을 위한 미국의 빌드 업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요? 영국 vs 독일? 아니, 프랑스와 러시아까지! 유럽 최강자를 가리기 위한 피 튀기는 전쟁에서 승자는 누가 될 수 있을까요?
국가를 지키는 국가들 🛡️
게임이 끝났으니 승자에겐 보상을 패자에겐 벌칙을 줍시다. 천문학적 인명, 물적 피해를 남긴 전쟁 이후 유럽은 말 그대로 쑥대밭이 됩니다. 승자에겐 보상을, 패자에겐 가혹한 벌칙을 내려야 하니까요.
1919년 파리에서 베르사유 조약이 체결됩니다. 주요 내용은 패전국의 영토와 식민지 반환, 배상금 지불, 국제 연맹의 창설 등이 있습니다. 이중 국제 연맹은 훗날 국제 연합(United Nations)의 전신으로, 국제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전쟁을 예방하기 위해 42개 국가가 참여했지요.
문제는 미국이 주도하였지만 미국은 참여하지 않았고, 설립 취지와는 다르게 다양한 국제 갈등과 문제 해결에 어려움을 겪었죠. 특히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을 막지 못하였고, 1946년 국제 연합이 창설과 함께 역사속으로 사라집니다.
워킹맘의 탄생 24시간 일하는 남자, 48시간 일하고 또 일하는 여자
전쟁으로 대중들에게 와닿는 변화는 여성권의 신장을 꼽을 수 있습니다. 전쟁터에 나가 있는 남성의 직업 역할을 여성이 대체함으로써 여성은 경제적으로 독립하게 되죠. 즉, 일도 하고 집안일도 하는 워킹맘의 탄생이죠.
전통적인 가부장적 성 역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꿨으며, 이는 여성의 참정권으로 확대되었습니다. 1918년 영국이 ‘일부’ 여성에게, 1920년 미국이 만 20세 이상의 여성에게 투표권을 인정하며 여성의 권리 신장과 사회적 인식 변화에 양차 대전은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위대한 개츠비>의 그 미국! 🍷🇺🇸
포드 자동차 타고, 재즈 들으며 주식 쇼핑하는 미국인
전쟁이 후유증이 아닌 특수로 기억하는 국가가 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본격적인 초강대국에 오른 미국이죠. 미국은 참전을 최대한 늦추면서 유럽과의 외교적, 경제적 이익을 충분히 얻었습니다. 전쟁 중에는 전시 물자를 제공하고, 전쟁 이후에는 재건 물자로 경제적 황금기를 이어갑니다.
1920년대 미국은 ‘광란의 20년대’로 불리며 경제적 발전뿐 아니라 문화, 기술 등 모든 면에서 세계 우위를 점하게 되죠. 포드 자동차의 선전, 블루스와 재즈의 시대, 찰리 채플린을 떠올릴 수 있는 영화 산업의 발전 등 소설 <위대한 개츠비>의 화려하고 향락적인 장면 등을 떠올릴 법한 미국의 황금기는 전쟁의 승리를 누리기엔 충분했습니다. 20세기 이전까지 세계사의 축을 차지했던 유럽의 등불이 꺼지고 미국의 태양이 떠오른 것이죠.
"The lamps are going out all over Europe, we shall not see them lit again in our lifetime."
유럽 전역의 등불이 꺼지고 있으며, 우리 생애 동안 다시 켜질 것을 볼 수 없을 것이다.
어제는 친구, 오늘부터는 원수 ⚔️
그렇다면,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은 어디에서, 왜 일어난 것일까요?제1차 세계대전 이전에도 유럽 국가들은 이른바 ‘동맹’을 맺고 큰 전쟁을 치룬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존의 전쟁과는 다르게 연합국과 동맹국이라는 두 개의 큰 축으로 20여 국가가 참여한 대전(Great war)이 시작된거죠.
프랑스·러시아·영국·이탈리아·미국 등의 연합국과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오스만 제국(現 튀르키예)·불가리아 등의 동맹국(중앙국)이 팀이 되어 벌인 국제 전쟁입니다. 주목할 만한 국가는 이탈리아입니다. 이탈리아는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삼국 동맹’을 맺고 있었는데, 전쟁이 일어나자 동맹국이 아닌 연합국에 편승합니다. 독일 입장에서는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이 된 판국이죠.
군비 경쟁, 외환 부족? 💸
제1차 세계대전의 시작은 어느 한 사건으로 콕 집어 말할 수 없는 당시 복잡한 유럽의 정치외교사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19세기 유럽 국가들은 각 국의 이해 관계를 토대로 정치 및 군사적 동맹국을 형성했습니다. 독일은 '철의 재상'로 불린 비스마르크가 있었죠. 그의 진두지휘 하에 독일의 산업과 경제가 급상승하면서 영국과의 군비 경쟁을 가속화하였습니다.
유럽의 또 다른 문제는 국제 금융 시스템의 불안정성과 외환 부족 등의 경제적인 문제가 있었습니다. 특히 독일은 다른 국가로부터 대규모 파산된 지불 채무가 있었죠. 이렇듯 강대국들은 전쟁을 통해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야심도 있었죠.
탕! 전쟁의 도화선이 된 총성 🔫
유럽의 여러 문제가 있었지만 직접적인 원인은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왕위 후계자인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이 세르비아 국민주의자 가브릴로 프린치프에게 암살당한 이른바 ‘사라예보 사건’을 계기로 일어났습니다. 같은 해 7월, 독일은 벨기에를 침공하고 프랑스를 공격하며 전쟁은 유럽 전체와 아프리카, 태평양까지 확장하는 대전(Great War)으로 흘러갑니다.
총이 아닌 가스를 달라 🍄
독일은 참호를 파고 들어가 무기한 대치하는 참호전 작전으로 적들을 무력화시킵니다. 깊은 구덩이를 파고 숨어 들어가 몇 달을 지지부진하게 전쟁을 끌며 영국과 프랑스를 괴롭혔죠. 참호전은 이후 현대식 무기와 전술의 발달로 점차 사라지지만 오늘날 교착 상태, 분쟁의 무력을 나타내는 대명사로 쉽게 쓰입니다.
전쟁을 하면 할수록 발달하는 산업이 군수 산업입니다. 기관총, 탱크, 비행기, 화학 약품 등 양차 대전으로 탄생한 무기이자 발명품들이죠. 제1차 세계대전에서 처음으로 화학 무기가 사용됩니다. 독일이 교착 상태를 타개하기 위해 철제 깡통 속에 포스겐이라고 불린 독가스를 넣고 적진에 살포한거죠. 영국군은 손수건을 갖다댈 여유도 없이 가스를 흡입했고 목과 가슴을 쥐어 뜯으며 생지옥의 현장이 펼쳐졌습니다. 국제 사회는 독일의 야만적인 행위를 규탄했지만 이후 화학 무기의 발명과 거래는 활발해졌죠. 인류는 총알 한 방 쏘지 않고 적을 살상하는 무기를 얻게 된겁니다.
미국을 참전시킨 128명 🇺🇸
독일이 U-Boat라고 불린 공격형 잠수함으로 영국 해상에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유보트는 영국의 상선, 군함뿐 아니라 민간인이 타고 있는 여객선에서도 군수 물자를 실어 나른다는 소식을 듣고 민간 선박도 격침하는 무차별적인 작전에 들어갔습니다. 대표적으로 1915년 5월 미국 뉴욕에서 출발해 영국 리버풀로 향하던 영국의 여객선 ‘루시타니아호’가 유보트에 격침 당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약 2,000명의 사상자를 내었고, 그중 미국인이 128명 타고 있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중립국이었던 미국에게 전쟁에 참여할 구실을 제공한 격이죠.
러시아 퇴장하고요, 미국 입장합니다. 🇷🇺
러시아는 몇 차례의 유의미한 공세에 성공했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러시아 노동자들은 전쟁에 대한 불만과 회의감이 커져갔죠. 전쟁에 반대하는 레닌이 이끄는 볼셰비키당이 혁명에 성공하면서 러시아는 독일과 휴전 협정을 맺고 전쟁에서 급히 물러납니다. 이후 소비에트 연방이 탄생하며 미국과 기나긴 이념 전쟁을 벌이게 되죠.
물러난 자리에 공교롭게 미국이 참여합니다. 미국은 중립국이었지만 전쟁의 군수 물자 수송과 외교로 경제적 이득을 얻고 있었습니다. 참여 시기를 재던 미국을 자극한 국가는 역시 독일입니다. 독일은 1917년 무제한 잠수함 작전을 다시 전개하며 미국을 비롯한 민간 상선을 격침했고, 멕시코에게 미국을 공격하면 19세기에 미국으로부터 빼앗긴 영토를 되찾게 해주겠다는 암호를 전달합니다. 독일 외무장관 짐머만이 주도했기에 ‘짐머만 전보 사건’이라고 하죠.
짐머만 사건을 계기로 미국은 연합국 측에 발을 담그며 전쟁에 참여합니다. 미국의 참전에 힘입은 연합국의 반격으로 불가리아, 오스트리아 순으로 항복했고, 독일 황제 빌헬름 2세가 네덜란드로 망명하며 독일은 군주제를 포기하고 공화정을 선언하면서 4년 간의 전쟁은 연합국의 승리로 끝이 납니다.
"The war to end all wars."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해 시작된 전쟁이었지만, 1차 세계대전 후에 맺어진 베르사유 조약은 새로운 전쟁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패전국 독일에게 지나치게 가혹한 배상조건으로 인해, 히틀러가 부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줍니다.
위대한 개츠비를 낳은 전쟁
The war to end war, The war to end all wars
1차 세계대전은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으로 시작했지만,
2차 세계대전의 씨앗을 품은 채 종결되었습니다.
김지연 서사 라이브러리 에디터
국가를 지키는 국가들 🛡️
게임이 끝났으니 승자에겐 보상을 패자에겐 벌칙을 줍시다. 천문학적 인명, 물적 피해를 남긴 전쟁 이후 유럽은 말 그대로 쑥대밭이 됩니다. 승자에겐 보상을, 패자에겐 가혹한 벌칙을 내려야 하니까요.
1919년 파리에서 베르사유 조약이 체결됩니다. 주요 내용은 패전국의 영토와 식민지 반환, 배상금 지불, 국제 연맹의 창설 등이 있습니다. 이중 국제 연맹은 훗날 국제 연합(United Nations)의 전신으로, 국제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전쟁을 예방하기 위해 42개 국가가 참여했지요.
문제는 미국이 주도하였지만 미국은 참여하지 않았고, 설립 취지와는 다르게 다양한 국제 갈등과 문제 해결에 어려움을 겪었죠. 특히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을 막지 못하였고, 1946년 국제 연합이 창설과 함께 역사속으로 사라집니다.
전쟁으로 대중들에게 와닿는 변화는 여성권의 신장을 꼽을 수 있습니다. 전쟁터에 나가 있는 남성의 직업 역할을 여성이 대체함으로써 여성은 경제적으로 독립하게 되죠. 즉, 일도 하고 집안일도 하는 워킹맘의 탄생이죠.
전통적인 가부장적 성 역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꿨으며, 이는 여성의 참정권으로 확대되었습니다. 1918년 영국이 ‘일부’ 여성에게, 1920년 미국이 만 20세 이상의 여성에게 투표권을 인정하며 여성의 권리 신장과 사회적 인식 변화에 양차 대전은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전쟁이 후유증이 아닌 특수로 기억하는 국가가 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본격적인 초강대국에 오른 미국이죠. 미국은 참전을 최대한 늦추면서 유럽과의 외교적, 경제적 이익을 충분히 얻었습니다. 전쟁 중에는 전시 물자를 제공하고, 전쟁 이후에는 재건 물자로 경제적 황금기를 이어갑니다.
1920년대 미국은 ‘광란의 20년대’로 불리며 경제적 발전뿐 아니라 문화, 기술 등 모든 면에서 세계 우위를 점하게 되죠. 포드 자동차의 선전, 블루스와 재즈의 시대, 찰리 채플린을 떠올릴 수 있는 영화 산업의 발전 등 소설 <위대한 개츠비>의 화려하고 향락적인 장면 등을 떠올릴 법한 미국의 황금기는 전쟁의 승리를 누리기엔 충분했습니다. 20세기 이전까지 세계사의 축을 차지했던 유럽의 등불이 꺼지고 미국의 태양이 떠오른 것이죠.
어제는 친구, 오늘부터는 원수 ⚔️
그렇다면,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은 어디에서, 왜 일어난 것일까요?제1차 세계대전 이전에도 유럽 국가들은 이른바 ‘동맹’을 맺고 큰 전쟁을 치룬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존의 전쟁과는 다르게 연합국과 동맹국이라는 두 개의 큰 축으로 20여 국가가 참여한 대전(Great war)이 시작된거죠.
프랑스·러시아·영국·이탈리아·미국 등의 연합국과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오스만 제국(現 튀르키예)·불가리아 등의 동맹국(중앙국)이 팀이 되어 벌인 국제 전쟁입니다. 주목할 만한 국가는 이탈리아입니다. 이탈리아는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삼국 동맹’을 맺고 있었는데, 전쟁이 일어나자 동맹국이 아닌 연합국에 편승합니다. 독일 입장에서는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이 된 판국이죠.
군비 경쟁, 외환 부족? 💸
제1차 세계대전의 시작은 어느 한 사건으로 콕 집어 말할 수 없는 당시 복잡한 유럽의 정치외교사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19세기 유럽 국가들은 각 국의 이해 관계를 토대로 정치 및 군사적 동맹국을 형성했습니다. 독일은 '철의 재상'로 불린 비스마르크가 있었죠. 그의 진두지휘 하에 독일의 산업과 경제가 급상승하면서 영국과의 군비 경쟁을 가속화하였습니다.
유럽의 또 다른 문제는 국제 금융 시스템의 불안정성과 외환 부족 등의 경제적인 문제가 있었습니다. 특히 독일은 다른 국가로부터 대규모 파산된 지불 채무가 있었죠. 이렇듯 강대국들은 전쟁을 통해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야심도 있었죠.
탕! 전쟁의 도화선이 된 총성 🔫
유럽의 여러 문제가 있었지만 직접적인 원인은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왕위 후계자인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이 세르비아 국민주의자 가브릴로 프린치프에게 암살당한 이른바 ‘사라예보 사건’을 계기로 일어났습니다. 같은 해 7월, 독일은 벨기에를 침공하고 프랑스를 공격하며 전쟁은 유럽 전체와 아프리카, 태평양까지 확장하는 대전(Great War)으로 흘러갑니다.
총이 아닌 가스를 달라 🍄
독일은 참호를 파고 들어가 무기한 대치하는 참호전 작전으로 적들을 무력화시킵니다. 깊은 구덩이를 파고 숨어 들어가 몇 달을 지지부진하게 전쟁을 끌며 영국과 프랑스를 괴롭혔죠. 참호전은 이후 현대식 무기와 전술의 발달로 점차 사라지지만 오늘날 교착 상태, 분쟁의 무력을 나타내는 대명사로 쉽게 쓰입니다.
전쟁을 하면 할수록 발달하는 산업이 군수 산업입니다. 기관총, 탱크, 비행기, 화학 약품 등 양차 대전으로 탄생한 무기이자 발명품들이죠. 제1차 세계대전에서 처음으로 화학 무기가 사용됩니다. 독일이 교착 상태를 타개하기 위해 철제 깡통 속에 포스겐이라고 불린 독가스를 넣고 적진에 살포한거죠. 영국군은 손수건을 갖다댈 여유도 없이 가스를 흡입했고 목과 가슴을 쥐어 뜯으며 생지옥의 현장이 펼쳐졌습니다. 국제 사회는 독일의 야만적인 행위를 규탄했지만 이후 화학 무기의 발명과 거래는 활발해졌죠. 인류는 총알 한 방 쏘지 않고 적을 살상하는 무기를 얻게 된겁니다.
미국을 참전시킨 128명 🇺🇸
독일이 U-Boat라고 불린 공격형 잠수함으로 영국 해상에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유보트는 영국의 상선, 군함뿐 아니라 민간인이 타고 있는 여객선에서도 군수 물자를 실어 나른다는 소식을 듣고 민간 선박도 격침하는 무차별적인 작전에 들어갔습니다. 대표적으로 1915년 5월 미국 뉴욕에서 출발해 영국 리버풀로 향하던 영국의 여객선 ‘루시타니아호’가 유보트에 격침 당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약 2,000명의 사상자를 내었고, 그중 미국인이 128명 타고 있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중립국이었던 미국에게 전쟁에 참여할 구실을 제공한 격이죠.
러시아 퇴장하고요, 미국 입장합니다. 🇷🇺
러시아는 몇 차례의 유의미한 공세에 성공했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러시아 노동자들은 전쟁에 대한 불만과 회의감이 커져갔죠. 전쟁에 반대하는 레닌이 이끄는 볼셰비키당이 혁명에 성공하면서 러시아는 독일과 휴전 협정을 맺고 전쟁에서 급히 물러납니다. 이후 소비에트 연방이 탄생하며 미국과 기나긴 이념 전쟁을 벌이게 되죠.
물러난 자리에 공교롭게 미국이 참여합니다. 미국은 중립국이었지만 전쟁의 군수 물자 수송과 외교로 경제적 이득을 얻고 있었습니다. 참여 시기를 재던 미국을 자극한 국가는 역시 독일입니다. 독일은 1917년 무제한 잠수함 작전을 다시 전개하며 미국을 비롯한 민간 상선을 격침했고, 멕시코에게 미국을 공격하면 19세기에 미국으로부터 빼앗긴 영토를 되찾게 해주겠다는 암호를 전달합니다. 독일 외무장관 짐머만이 주도했기에 ‘짐머만 전보 사건’이라고 하죠.
짐머만 사건을 계기로 미국은 연합국 측에 발을 담그며 전쟁에 참여합니다. 미국의 참전에 힘입은 연합국의 반격으로 불가리아, 오스트리아 순으로 항복했고, 독일 황제 빌헬름 2세가 네덜란드로 망명하며 독일은 군주제를 포기하고 공화정을 선언하면서 4년 간의 전쟁은 연합국의 승리로 끝이 납니다.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해 시작된 전쟁이었지만, 1차 세계대전 후에 맺어진 베르사유 조약은 새로운 전쟁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패전국 독일에게 지나치게 가혹한 배상조건으로 인해, 히틀러가 부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