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세상의 불행이 나에게 향할 때
그런 날이 있다. 온 세상을 떠도는 불운이 나를 향해 집중된 것만 같은 날,
내가 우주의 먼지보다 못한 존재로 느껴지는 날,
나는 그런 하찮은 존재가 아니라며 발버둥 치다가
제 발에 걸려 넘어지고 결국 엉망진창이 나를 맞닥뜨려야 하는 날.
커튼콜은 사양할게요 / 김유담 / p.93
정도성 서사 라이브러리
현재 내가 서 있는 곳보다 한 발 더 나아가기 위해 애쓰는 과정은 쉽지 않습니다. 그 한 발자국이 정말 어려울 때가 많고, 때로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고사하고 제자리에 서 있는 것조차 힘들다는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이런 기분을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너무 구구절절한 느낌이 들거든요. 이럴 때 누군가가 내 말을 대신해 이야기해주면 정말 속이 시원하고 고맙습니다. 그리고 새삼스럽게 깨닫게 됩니다. '나만 이런 마음이 아니었구나.' 내 마음을 더 잘 알아주는 친구 덕분에 위로를 받습니다.
김유담 작가님의 『커튼콜은 사양할게요』는 마치 내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 같습니다.
어른의 선택
서울로 들어오는 톨게이트에 접어들면서, 나는 어른의 세계에 조금씩 가까워져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회 맛을 안다고 어른이 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아도 필요하다면 삼킬 수 있는 이가 어른이었다.
커튼콜은 사양할게요 / 김유담 /p.43
곰곰이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부터 우리는 입맛에 맞지 않은 선택들을 하고 살아왔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타의에 의해 입맛에 맞지 않은 선택을 해왔다면, '어른'이라는 세계에 들어선 후에는 입맛에 맞지 않지만, 내 의지로...아니 억지로 선택해서 삼키는 게 차이가 있습니다.
과거에는 내 입맛에 맞는 선택을 하는 것이 중요하게 생각되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 생각이 달라집니다. 원하는 선택이 나를 힘들게 하는 경우도 있고, 원치 않은 선택이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나의 의지나 취향이 선택의 결과에 큰 영향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어느 순간부터 원치 않은 선택도 담담하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것이 현재 나에게 최선의 선택이라고 믿으면서 말이죠. 어른은 '원치 않는 선택을 하는 나'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 같습니다.
좋은 기회가 있다면 잡고 싶다는 열망과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동시에 나를 짓눌렀다. 좋은 기회가 대체 뭘 의미하는지, 내가 찾고 있는 기회라는 게 대체 무엇인지 나 자신도 몰랐다.
커튼콜은 사양할게요 / 김유담 / p.67
한 대 맞은 느낌이었습니다. 좋은 기회를 찾기는 하지만, 과연 '나에게 좋은 기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있는 것인지... 그것이 좋아 보이는 기회인지, 아니면 정말 좋은 기회인지. 좋은 기회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그 기회를 통해 내가 만나는 과정과 결과까지 상상해야 합니다. 내가 어떤 경험을 하게 될 것이고, 그 성취 이후에 나는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를요. 저만 해도 좋은 기회라고 하는 것들을 상상할 때, 내가 어떻게 변할지 상상하지 않습니다. 그 기회를 통해 만나는 시간들이 저를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지를 고민하지 않습니다. 좋은 기회가 나를 거만하게 만들 수도 있고, 악에 가까워질 수도 있잖아요. 그런 고민은 하지 않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가 생각하는 좋은 기회란 '남들에게 말하기 좋은 기회'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온 세상의 불행이 나에게 향할 때
그런 날이 있다. 온 세상을 떠도는 불운이 나를 향해 집중된 것만 같은 날,
내가 우주의 먼지보다 못한 존재로 느껴지는 날,
나는 그런 하찮은 존재가 아니라며 발버둥 치다가 제 발에 걸려 넘어지고 결국 엉망진창이 나를 맞닥뜨려야 하는 날.
앞으로 남은 인생이 이런 날들의 연속이라면 도저히 살아낼 수 없겠다고 생각하면서 차라리 우주 밖으로 사라져버리고 싶은 마음마저 들던 그 순간, 권은 그때 마침 나에게 다가와 당신의 인생이 그렇게까지 최악은 아니라고 말해준 사람이었다.
커튼콜은 사양할게요 / 김유담 / p.93
누구에게나 이런 말들은 찾아옵니다. 내가 우주의 먼지가 되어 버린 날. 사람 때문에 먼지가 되어버렸는데, 사람 때문에 다시 일어서는 날이 있습니다. 수 많은 날들이 떠올리면서, 우주의 먼지가 나만 있는 게 아니라는 속좁은 생각으로, 괜히 위로를 받습니다.
모든 서사는 끝내고 싶을 때 끝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으로부터 멀어진 후에야 완결될 수 있다는 걸 쿰쿰한 냄새가 올라오는 학생회관의 무대 위에서 나는 알게 되었다.
커튼콜은 사양할게요 / 김유담 / p.93
맞습니다. 내가 끝내고 싶어서 끝내는 게 아닙니다. 내가 그 시간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있어야지, 그 시간들에 대해 무심하게 이야기하거나 혹은 추억처럼 이야기할 수 있어야지 끝낼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시간이 오래 지나도 끝나지 않은 서사들도 있습니다. 부모님과의 추억이나 오래토록 기억이 남는 성취나 관계는 끝나지 않은 서사가 되겠죠. 내가 '나답다'고 느끼는 것들은 대부분 끝나지 않은 서사들에서 시작된 것이 많습니다.
우리는 인생에서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찾아가고 있다는 것에 큰 자부심을 느꼈다. 연극을 위해서라면 죽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유치하지만 그때의 감정은 진심이었다.
커튼콜은 사양할게요 / 김유담 / p.69
유치하지만, 진심으로 느낀 감정이 언제였는지 생각해보니, 어제였습니다. 새벽 1시에 우동을 끓여 먹었습니다. 진심으로 '이거야, 이거!'를 외쳤습니다. 진심의 시간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참고로 '이거야'를 외쳤던 우동은 CU에서 구매한 이츠키 우동이었습니다.
이쯤에서 그만두고 싶다. 여러 사람들 앞에서 뇌의 구성 성분이 어떻게 되느냐고 다그치는 팀장의 모욕보다 더 싫은 것은 갈수록 움츠러들고 주눅 들어가는 나를 견뎌야 하는 일이었다.
커튼콜은 사양할게요 / 김유담 / p.74
나에게 못되게 구는 타인도 싫지만, 그런 사람 때문에 부정적으로 변해가는 나를 지켜보는 것은 더 싫습니다.
이루지 못한 꿈의 가치
아무리 생각해도 연극에 매달렸던 청춘의 시기를 지워버린 나의 모습은 상상이 가지 않았다. '꿈을 이루지 못한 나'보다 '꿈꾸던 시간조차 지워버린 나'가 더 싫었다.
커튼콜은 사양할게요 / 김유담 / p.353
얼마 전 김유담 작가님을 모시고, '서사,당신의 서재'에서 모임을 진행했습니다.모임이 끝난 후 하셨던 이야기가 정말 기억에 오래 남았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꿈을 꾸지만, 그 사람들 중 대부분은 꿈을 이루지 못해요."
저도 그렇고, 이 글을 읽는 분들도 확률적으로 '꿈을 이루지 못한 사람'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꿈을 이루지 못한 삶이 당연히 실패한 삶은 아닙니다. 하지만 꿈을 이루지 못했더라도 꿈을 좇았던 시간들이 내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됩니다. 이루지 못한 꿈도 분명히 의미가 있습니다. 꿈을 좇는 과정에서 우리는 노력도 하고, 약간의 성취도 이루며, 꿈에 한 발자국 다가갈 때마다 설렘도 느낍니다. 누군가와 우정을 나누기도 하고, 배우기도 합니다. 다 좋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긍정적인 과정에도 불구하고 결과가 실패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 시간들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실패를 통해 성장을 했다는 손쉬운 위로 말고, 다른 의미를 발견하고 싶은데 쉽게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특히 실패로 인해 원치 않은 선택을 하고 원치 않은 일을 하고 있다면, 그 시간들이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라는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이런 의문을 예상했던 것처럼, 아래와 같은 문장들이 마지막에 등장합니다.
앞으로 내 인생에서 박수와 환호를 받기보다는 깜깜하고 막막한 시간을 더 자주 만나게 될 것이다. 그 너저분한 시간 속에서 한때 내가 무대에서 반짝거렸던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아주 조금은 내게 힘을 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커튼콜은 사양할게요 / 김유담 / p.353
깜깜하고 막막한 시간을 통과할 때, 지금의 내 모습이 나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떠올리는 것은 위로가 됩니다. 잠시라도 반짝였던 추억이 있는 것, 그리고 오늘 네 모습이 너의 전부는 아니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실패한 꿈도 의미가 생깁니다. 꿈을 좇았던 추억이 어두운 시간 속에서 선명한 정체성이 될 수 있습니다.
온 세상의 불행이 나에게 향할 때
그런 날이 있다. 온 세상을 떠도는 불운이 나를 향해 집중된 것만 같은 날,
내가 우주의 먼지보다 못한 존재로 느껴지는 날,
나는 그런 하찮은 존재가 아니라며 발버둥 치다가
제 발에 걸려 넘어지고 결국 엉망진창이 나를 맞닥뜨려야 하는 날.
커튼콜은 사양할게요 / 김유담 / p.93
정도성 서사 라이브러리
현재 내가 서 있는 곳보다 한 발 더 나아가기 위해 애쓰는 과정은 쉽지 않습니다. 그 한 발자국이 정말 어려울 때가 많고, 때로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고사하고 제자리에 서 있는 것조차 힘들다는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이런 기분을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너무 구구절절한 느낌이 들거든요. 이럴 때 누군가가 내 말을 대신해 이야기해주면 정말 속이 시원하고 고맙습니다. 그리고 새삼스럽게 깨닫게 됩니다. '나만 이런 마음이 아니었구나.' 내 마음을 더 잘 알아주는 친구 덕분에 위로를 받습니다.
김유담 작가님의 『커튼콜은 사양할게요』는 마치 내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 같습니다.
어른의 선택
곰곰이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부터 우리는 입맛에 맞지 않은 선택들을 하고 살아왔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타의에 의해 입맛에 맞지 않은 선택을 해왔다면, '어른'이라는 세계에 들어선 후에는 입맛에 맞지 않지만, 내 의지로...아니 억지로 선택해서 삼키는 게 차이가 있습니다.
과거에는 내 입맛에 맞는 선택을 하는 것이 중요하게 생각되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 생각이 달라집니다. 원하는 선택이 나를 힘들게 하는 경우도 있고, 원치 않은 선택이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나의 의지나 취향이 선택의 결과에 큰 영향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어느 순간부터 원치 않은 선택도 담담하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것이 현재 나에게 최선의 선택이라고 믿으면서 말이죠. 어른은 '원치 않는 선택을 하는 나'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 같습니다.
한 대 맞은 느낌이었습니다. 좋은 기회를 찾기는 하지만, 과연 '나에게 좋은 기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있는 것인지... 그것이 좋아 보이는 기회인지, 아니면 정말 좋은 기회인지. 좋은 기회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그 기회를 통해 내가 만나는 과정과 결과까지 상상해야 합니다. 내가 어떤 경험을 하게 될 것이고, 그 성취 이후에 나는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를요. 저만 해도 좋은 기회라고 하는 것들을 상상할 때, 내가 어떻게 변할지 상상하지 않습니다. 그 기회를 통해 만나는 시간들이 저를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지를 고민하지 않습니다. 좋은 기회가 나를 거만하게 만들 수도 있고, 악에 가까워질 수도 있잖아요. 그런 고민은 하지 않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가 생각하는 좋은 기회란 '남들에게 말하기 좋은 기회'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온 세상의 불행이 나에게 향할 때
누구에게나 이런 말들은 찾아옵니다. 내가 우주의 먼지가 되어 버린 날. 사람 때문에 먼지가 되어버렸는데, 사람 때문에 다시 일어서는 날이 있습니다. 수 많은 날들이 떠올리면서, 우주의 먼지가 나만 있는 게 아니라는 속좁은 생각으로, 괜히 위로를 받습니다.
맞습니다. 내가 끝내고 싶어서 끝내는 게 아닙니다. 내가 그 시간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있어야지, 그 시간들에 대해 무심하게 이야기하거나 혹은 추억처럼 이야기할 수 있어야지 끝낼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시간이 오래 지나도 끝나지 않은 서사들도 있습니다. 부모님과의 추억이나 오래토록 기억이 남는 성취나 관계는 끝나지 않은 서사가 되겠죠. 내가 '나답다'고 느끼는 것들은 대부분 끝나지 않은 서사들에서 시작된 것이 많습니다.
유치하지만, 진심으로 느낀 감정이 언제였는지 생각해보니, 어제였습니다. 새벽 1시에 우동을 끓여 먹었습니다. 진심으로 '이거야, 이거!'를 외쳤습니다. 진심의 시간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참고로 '이거야'를 외쳤던 우동은 CU에서 구매한 이츠키 우동이었습니다.
나에게 못되게 구는 타인도 싫지만, 그런 사람 때문에 부정적으로 변해가는 나를 지켜보는 것은 더 싫습니다.
이루지 못한 꿈의 가치
얼마 전 김유담 작가님을 모시고, '서사,당신의 서재'에서 모임을 진행했습니다.모임이 끝난 후 하셨던 이야기가 정말 기억에 오래 남았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꿈을 꾸지만, 그 사람들 중 대부분은 꿈을 이루지 못해요."
저도 그렇고, 이 글을 읽는 분들도 확률적으로 '꿈을 이루지 못한 사람'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꿈을 이루지 못한 삶이 당연히 실패한 삶은 아닙니다. 하지만 꿈을 이루지 못했더라도 꿈을 좇았던 시간들이 내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됩니다. 이루지 못한 꿈도 분명히 의미가 있습니다. 꿈을 좇는 과정에서 우리는 노력도 하고, 약간의 성취도 이루며, 꿈에 한 발자국 다가갈 때마다 설렘도 느낍니다. 누군가와 우정을 나누기도 하고, 배우기도 합니다. 다 좋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긍정적인 과정에도 불구하고 결과가 실패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 시간들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실패를 통해 성장을 했다는 손쉬운 위로 말고, 다른 의미를 발견하고 싶은데 쉽게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특히 실패로 인해 원치 않은 선택을 하고 원치 않은 일을 하고 있다면, 그 시간들이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라는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이런 의문을 예상했던 것처럼, 아래와 같은 문장들이 마지막에 등장합니다.
깜깜하고 막막한 시간을 통과할 때, 지금의 내 모습이 나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떠올리는 것은 위로가 됩니다. 잠시라도 반짝였던 추억이 있는 것, 그리고 오늘 네 모습이 너의 전부는 아니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실패한 꿈도 의미가 생깁니다. 꿈을 좇았던 추억이 어두운 시간 속에서 선명한 정체성이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