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도 슈사쿠를 좋아하는 표정

Date: 2025년 8월 14일 (목) 오전 12:51

보낸사람: 정도성 서사 대표


1.

어제 '좋은 관계란 무엇인가?'를 이야기하는 모임이 있었습니다. 서사를 하면서 가장 좋은 점은 책과 삶에서 얻은 질문을 공유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긴 행복 탐구 보고서'에서 얻은 질문이 '좋은 관계'였습니다. 아니..정확히 말하면 '도대체 좋은 관계란 무엇인가?'였죠.

이 질문의 답을 혼자 끙끙대며 구하는 게 아니라, 결이 맞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대화해가며 구할 수 있다는 것은 삶의 어마어마한 즐거움입니다. 아니, 즐거움을 넘어 가끔씩은 축복같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2.

어제 기억 남는 장면은 오랜만에 모임에 참석하신 분이 '엔도 슈사쿠'를 이야기할 때였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를 이야기하면서, 설레이는 표정을 보는데...정말 덕질하는 사람의 행복함이 이것이구나 싶었습니다. 

저는 엔도 슈사쿠를 잘 알지 못합니다. 아주 오래전에 숙적이라는 책을 흥미롭게 읽은 게 전부였습니다. 숙적은 임진왜란 당시 조선을 침공했던 일본의 선봉장들이었던 고니시 유키나가와 가토 기요마사의 이야기였습니다. 

실제로 주인공은 고니시입니다. 읽으면서 정말 궁금했던 것은 왜 고니시였을까 였습니다. 역사의 승리자는 고니시가 아니라 가토입니다. 그리고 고니시는 당시 일본에서는 아주아주 소수였던 가톨릭 신자였기 때문입니다.

주인공으로 삼기에 적절하지 않은 조건인데, 굳이 왜 그를 주인공으로 삼았을까 라는 의문은, 어제 모임에서 풀렸습니다. 

엔도 슈사쿠는 가톨릭으로서의 정체성이 확고한 작가라고 합니다. 가톨릭 문학이라고 지칭할 정도로, 종교색이 강한 글을 쓴다고 합니다.


이렇게....엔도 슈사쿠의 이야기를 해주시는 참석자 분의 표정이 정말 빛났습니다. 그리고는 가방에서 그의 마지막 장편소설인 '깊은 강'을 꺼내서 보여주셨습니다
수 많은 포스트잇 인덱스가 붙어있더군요. 설레이는 표정으로 꺼낸 책에 수 많은 포스트잇이 붙어 있는 것을 보니, 꼭 읽어봐야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대체, 저런 설레이는 표정을 만들어주는 책에는 어떤 내용이 들어있을까...너무 궁금하더군요. 

꼭 읽어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제가 오늘 서사레터를 쓰는 이유도 어제 그 표정이 잊혀지지 않아서였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꼭 한 번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제가 사람의 표정을 보고, 읽지도 않은 책을 추천하기는 처음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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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문득...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의 나는 저런 표정을 지을 때가 언제였을까?

멈칫하면서, 떠오르는 게 없었습니다. 최근에는 저렇게 신나고 설레는 표정을 지으면서 이야기한 적이 없었습니다. 


질문을 바꿔봤습니다. 

내가 타인에게 이야기를 할 때, 신이 나고 설레는 표정으로 소개할만한 것이 뭐가 있지? 라는 질문을 해보니, 다행히 떠오르는 것이 많았습니다. 

대단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분이 엔도 슈사쿠를 좋아하는 것처럼 저 역시 좋아하는 작가가 있습니다. 좋아하는 피자도 있고요. 음식도 있습니다.

다만, 바쁘다는 이유로, 사고를 당해서 체력이 떨어진다는 핑계로 그냥 멀리 했을 뿐입니다.

대부분 약간의 시간이 필요하지, 큰 돈이 필요한 것은 없습니다.

내 삶의 생기를 되살려주는 작은 불씨들을, 스스로 꺼뜨리고 있었던 겁니다. 

잠깐의 시간만 내어주고, 쫄리는 마음은 접어두고 잠시만 집중하면 되는 데 말이죠. 


나에게 신나는 표정을 돌려주기 위해 아니, 엔도 슈사쿠를 좋아하는 표정을 돌려주기 위해서, 하루에 30분이라도 투자를 해야겠습니다. 

실은 이 시간에 서사레터를 쓰는 이유도, 신나는 표정을 돌려주기 위함입니다.


4.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내가 이번 주는 어떤 표정으로 살았나?'를 돌이켜 봐야겠습니다.

이 레터를 읽는 분들도, 일주일동안 나는 어떤 표정이었는지를 그림으로 그리거나,

한 번 써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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