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좋아하는 것들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 좋아하는 것에는 오늘의 내가 담겨 있습니다. 그냥 좋아하는 것은 없죠.


최근들어 미국의 작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올리브 키터리지'를 읽고, '오 윌리엄'을 읽고, 지금은 '다시, 올리브'를 읽습니다. '다시, 올리브'를 펼쳐들었을 때, 너무 반갑고 기대되서 두근두근하더군요. 희안한 것은 그 책을 신나게 읽지 않습니다. 아주 차분하게 느릿느릿하게 읽습니다. 읽는 동안 불평도 합니다. 하 '마음에 안 들어' 라고 하던지. 왜 굳이 이러지. 혹은 삶의 외로움을 너무 절절하게 묘사한 대목에서는 인상을 쓰며 읽기도 합니다. 재미있다와는 거리가 먼 반응인데, 저는 왜 이렇게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책을 읽을까요? 도대체 왜 좋아하지?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일단 그녀의 책에는 등장인물들이 행복하지 않습니다. 노력은 하는데, 크게 행복해지지 않는 게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이상한 이유네요.
요즘 들어 저의 생각. '모든 이들이 행복하기 위해 애쓰지만, 행복과 불행은 우리가 선택할 수 없다.'라는 것이 잘 반영되어서 좋아하는 듯 합니다. 써놓고 보니 신분 사회에 살던 옛날 사람 같습니다.

원래 '행복이란 우리에게 일어나는 것이고, 우리는 그것에 대해서 아무런 통제력도 없다'는 생각은 아테네의 민주정 이전에 고대 그리스인들이 가지고 있던 생각이었습니다. 세상에 지배자들은 따로 있고, 그들에 의해 피지배인들의 운명이 결정되는 세상에서 출발하던 생각입니다. 신분사회에서는 개인의 노력이 변화를 가져올 수 없습니다.
개인이 행복을 추구할 수도 있고 쟁취할 수 있다고 믿게 된 것은 아테네의 민주정이후였습니다. (행복의 역사 / 대린 맥마흔) 자신들의 정치적인 운명을 자신들의 손으로 결정하게 된 이후부터, 행복은 내 손으로 쟁취가능한 것으로 변화한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행복을 꿈꾸지 못하는 사회는 점차 계급이 고착화된 사회인가라는 생각도 듭니다. 하여튼...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책도 개인의 행복이 노력과는 상관없는 세상입니다. 마주하고 싶지 않은 현실을 미화하지 않고 그려내서 좋습니다.
또 좋은 점이 있습니다. 너무 당연한데, 배경이 미국이고 등장인물도 전부 미국인들입니다. 일상의 이야기지만 외국 이름과 지명 덕분에 거리감을 두고 지켜볼 수 있습니다. 공감가는 일상의 이야기인데 현실감 없이 지켜볼 수 있는 소설입니다. 비현실적인 경험이지만, 외국 소설이라서 가능합니다. 이게 배경이 뉴욕이 아니라 서울이고, 메인주가 아니라 경기도였다면, 올리브 키터리지가 아니라 연남동에 김연희 씨였다면? 과몰입해서 스트레스 받았겠지만, 외국인이기에 구경꾼으로 남을 수 있습니다.
일상에서 구경꾼으로만 존재한다는 것은 일종의 책임없는 쾌락입니다. 무임승차하는 기분.
오늘의 저는 미화되지 않은 현실을 보고 싶은데, 스트레스도 받고 싶지 않아합니다. 현실은 직시하고 싶으나, 스트레스는 피하고 싶은 사람이죠.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을 보면, 제가 요즘 스트레스가 많은 것 같습니다. 이럴 때는 푹 쉬고, 열심히 걸어야겠습니다. 지금처럼 해외 문학을 읽으면서요.

지난 주에 서사레터로 썼던 '디앤디파트먼트 프로젝트'에 대한 글을 보강하여, '서사 라이브러리'에 업데이트 하였습니다. 서사레터로 쓴 글들을 퇴고하거나, 내용을 보강해서 '서사 라이브러리'에도 업로드를 하고 있습니다.
서사 레터 덕분에 하나의 주제로 두 번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것도 재미나게요. 읽어주시는 분들께 정말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모든 좋아하는 것들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 좋아하는 것에는 오늘의 내가 담겨 있습니다. 그냥 좋아하는 것은 없죠.
최근들어 미국의 작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올리브 키터리지'를 읽고, '오 윌리엄'을 읽고, 지금은 '다시, 올리브'를 읽습니다. '다시, 올리브'를 펼쳐들었을 때, 너무 반갑고 기대되서 두근두근하더군요. 희안한 것은 그 책을 신나게 읽지 않습니다. 아주 차분하게 느릿느릿하게 읽습니다. 읽는 동안 불평도 합니다. 하 '마음에 안 들어' 라고 하던지. 왜 굳이 이러지. 혹은 삶의 외로움을 너무 절절하게 묘사한 대목에서는 인상을 쓰며 읽기도 합니다. 재미있다와는 거리가 먼 반응인데, 저는 왜 이렇게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책을 읽을까요? 도대체 왜 좋아하지?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일단 그녀의 책에는 등장인물들이 행복하지 않습니다. 노력은 하는데, 크게 행복해지지 않는 게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이상한 이유네요.
요즘 들어 저의 생각. '모든 이들이 행복하기 위해 애쓰지만, 행복과 불행은 우리가 선택할 수 없다.'라는 것이 잘 반영되어서 좋아하는 듯 합니다. 써놓고 보니 신분 사회에 살던 옛날 사람 같습니다.
원래 '행복이란 우리에게 일어나는 것이고, 우리는 그것에 대해서 아무런 통제력도 없다'는 생각은 아테네의 민주정 이전에 고대 그리스인들이 가지고 있던 생각이었습니다. 세상에 지배자들은 따로 있고, 그들에 의해 피지배인들의 운명이 결정되는 세상에서 출발하던 생각입니다. 신분사회에서는 개인의 노력이 변화를 가져올 수 없습니다.
개인이 행복을 추구할 수도 있고 쟁취할 수 있다고 믿게 된 것은 아테네의 민주정이후였습니다. (행복의 역사 / 대린 맥마흔) 자신들의 정치적인 운명을 자신들의 손으로 결정하게 된 이후부터, 행복은 내 손으로 쟁취가능한 것으로 변화한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행복을 꿈꾸지 못하는 사회는 점차 계급이 고착화된 사회인가라는 생각도 듭니다. 하여튼...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책도 개인의 행복이 노력과는 상관없는 세상입니다. 마주하고 싶지 않은 현실을 미화하지 않고 그려내서 좋습니다.
또 좋은 점이 있습니다. 너무 당연한데, 배경이 미국이고 등장인물도 전부 미국인들입니다. 일상의 이야기지만 외국 이름과 지명 덕분에 거리감을 두고 지켜볼 수 있습니다. 공감가는 일상의 이야기인데 현실감 없이 지켜볼 수 있는 소설입니다. 비현실적인 경험이지만, 외국 소설이라서 가능합니다. 이게 배경이 뉴욕이 아니라 서울이고, 메인주가 아니라 경기도였다면, 올리브 키터리지가 아니라 연남동에 김연희 씨였다면? 과몰입해서 스트레스 받았겠지만, 외국인이기에 구경꾼으로 남을 수 있습니다.
일상에서 구경꾼으로만 존재한다는 것은 일종의 책임없는 쾌락입니다. 무임승차하는 기분.
오늘의 저는 미화되지 않은 현실을 보고 싶은데, 스트레스도 받고 싶지 않아합니다. 현실은 직시하고 싶으나, 스트레스는 피하고 싶은 사람이죠.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을 보면, 제가 요즘 스트레스가 많은 것 같습니다. 이럴 때는 푹 쉬고, 열심히 걸어야겠습니다. 지금처럼 해외 문학을 읽으면서요.
지난 주에 서사레터로 썼던 '디앤디파트먼트 프로젝트'에 대한 글을 보강하여, '서사 라이브러리'에 업데이트 하였습니다. 서사레터로 쓴 글들을 퇴고하거나, 내용을 보강해서 '서사 라이브러리'에도 업로드를 하고 있습니다.
서사 레터 덕분에 하나의 주제로 두 번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것도 재미나게요. 읽어주시는 분들께 정말 감사드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