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흑백 요리사를 과몰입하며 봤습니다. 좋아하는 요리사 한 명을 정해놓고, 응원하는 마음으로 봤죠. 처음에는 최현석을 응원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에드워드 리를 응원했습니다. 50대의 나이에도 잘하는 것으로 성취하려고 하지 않고, 새로운 것들에 계속 도전하는 모습에 매료되었습니다. 제가 가장 감탄했던 순간은 Top 2 무대 심사를 위해 나갈 때의 모습이었습니다.

2.에드워드 리가 Top 2로 가는 미션을 수행했을 때, 나레이션에서 돌아가고 싶지만 돌아갈 수 없고, 끝까지 걸어야 한다는 말을 했습니다.
제가 그 상황이었으면, 그저 나아가긴 해야 하는데 갈팡질팡하고 자신감 없는 내가 쭈구리 같다고 한탄했을 것 같습니다. '아니.. 이 나이에, 평생을 해왔던 요리를 하는데, 아직도 자신이 없고 떨리네'라고 자책했을 수도 있죠. 에드워드 리가 멋있었던 것은, 갈팡질팡하며 확신 없이 주저하는 '나'를 비난하지 않아서였습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도 않았죠. '주저되지만, 내가 선택한 길을 끝까지 가는 사람이야'라는 말로 '주저하는 나'를 '주저해도 앞으로 나아가는 나'로 만듭니다.
그 장면을 보며 중얼거렸습니다. '내 삶에 애정을 담은 언어들은 내 삶을 붙잡아주는 닻이 되는구나.'라고요.
쭈구리 같은 삶도 잘 익은 언어를 만나면 빛날 수 있습니다. 실패한 미션도 나의 언어에 따라 치열하게 도전한 미션이 될 수 있고요. 일상의 언어가 삶의 색깔을 다르게 만드는 것을 느꼈습니다. 내 삶에 애정을 담은 언어들을 부지런히 수집해야겠다고 다짐했죠.
3.그런데, 주말에 오카 마리의 '기억, 서사'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오카 마리는 '서사의 한계와 가능성을 연구하는 일본의 학자입니다. 그 책에는 제가 생각했던 것과 정 반대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사건이 우리가 가진 말의 윤곽에 꿰맞추어져 잘려나갈 때,
우리는 말로 이야기된 사건이 사건 자체보다 어딘가 축소되어버린 듯하고 어딘가 어긋난 듯한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는가? 우리가 가진 언어의 윤곽 속에 완전히 담기지 않은 채 넘쳐흐르는 사건의 조각이 잘려나간 부분이 많이 있는 것은 아닐까?"
언어는 우리의 경험을 온전히 담을 수 없음을 지적합니다. 불완전한 언어가 우리의 경험을 제한하고 있다고 봅니다. 솔직히 '기억, 서사'를 읽으면서, 나의 일상의 언어로 내 경험을 수시로 정의하는 게 과연 바람직한 행동인지 잠깐 고민했습니다. 오카 마리의 의견처럼, 내 언어가 내 경험의 윤곽들을 잘라내고 있는 건가라는 의심도 했습니다. 오카 마리의 말이 맞는 것 같더군요. 그녀의 말처럼, 언어는 내 삶을 왜곡시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주어진 삶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 내 삶에 애정을 담은 언어로 조금은 왜곡해도 괜찮다고 결론지었습니다. 내가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 이건 내 삶의 윤곽을 잘라내는 게 아니라, 삶을 정렬시키는 노력이라고요.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사는 나를 위해 내가 이 정도 응원은 해줘야죠.
4.최선을 다하고 있는 '나'를 응원하는 한 주 보내시길 바랍니다.
5.한강 작가의 책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죠. 전국의 서점들이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지만...저처럼 책을 확보하지 못한 서점들은 다들 이런 심정일겁니다. 진즉...구매해놓을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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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흑백 요리사를 과몰입하며 봤습니다. 좋아하는 요리사 한 명을 정해놓고, 응원하는 마음으로 봤죠.
처음에는 최현석을 응원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에드워드 리를 응원했습니다.
50대의 나이에도 잘하는 것으로 성취하려고 하지 않고, 새로운 것들에 계속 도전하는 모습에 매료되었습니다.
제가 가장 감탄했던 순간은 Top 2 무대 심사를 위해 나갈 때의 모습이었습니다.
2.
에드워드 리가 Top 2로 가는 미션을 수행했을 때,
나레이션에서 돌아가고 싶지만 돌아갈 수 없고,
끝까지 걸어야 한다는 말을 했습니다.
제가 그 상황이었으면, 그저 나아가긴 해야 하는데 갈팡질팡하고 자신감 없는 내가 쭈구리 같다고 한탄했을 것 같습니다.
'아니.. 이 나이에, 평생을 해왔던 요리를 하는데, 아직도 자신이 없고 떨리네'라고 자책했을 수도 있죠.
에드워드 리가 멋있었던 것은, 갈팡질팡하며 확신 없이 주저하는 '나'를 비난하지 않아서였습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도 않았죠. '주저되지만, 내가 선택한 길을 끝까지 가는 사람이야'라는 말로
'주저하는 나'를 '주저해도 앞으로 나아가는 나'로 만듭니다.
그 장면을 보며 중얼거렸습니다. '내 삶에 애정을 담은 언어들은 내 삶을 붙잡아주는 닻이 되는구나.'라고요.
쭈구리 같은 삶도 잘 익은 언어를 만나면 빛날 수 있습니다.
실패한 미션도 나의 언어에 따라 치열하게 도전한 미션이 될 수 있고요.
일상의 언어가 삶의 색깔을 다르게 만드는 것을 느꼈습니다.
내 삶에 애정을 담은 언어들을 부지런히 수집해야겠다고 다짐했죠.
3.
그런데, 주말에 오카 마리의 '기억, 서사'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오카 마리는 '서사의 한계와 가능성을 연구하는 일본의 학자입니다.
그 책에는 제가 생각했던 것과 정 반대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사건이 우리가 가진 말의 윤곽에 꿰맞추어져 잘려나갈 때,
우리는 말로 이야기된 사건이 사건 자체보다 어딘가 축소되어버린 듯하고
어딘가 어긋난 듯한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는가?
우리가 가진 언어의 윤곽 속에 완전히 담기지 않은 채
넘쳐흐르는 사건의 조각이 잘려나간 부분이 많이 있는 것은 아닐까?"
언어는 우리의 경험을 온전히 담을 수 없음을 지적합니다.
불완전한 언어가 우리의 경험을 제한하고 있다고 봅니다.
솔직히 '기억, 서사'를 읽으면서, 나의 일상의 언어로 내 경험을 수시로 정의하는 게
과연 바람직한 행동인지 잠깐 고민했습니다.
오카 마리의 의견처럼, 내 언어가 내 경험의 윤곽들을 잘라내고 있는 건가라는 의심도 했습니다.
오카 마리의 말이 맞는 것 같더군요.
그녀의 말처럼, 언어는 내 삶을 왜곡시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주어진 삶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
내 삶에 애정을 담은 언어로 조금은 왜곡해도 괜찮다고 결론지었습니다.
내가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 이건 내 삶의 윤곽을 잘라내는 게 아니라,
삶을 정렬시키는 노력이라고요.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사는 나를 위해 내가 이 정도 응원은 해줘야죠.
4.
최선을 다하고 있는 '나'를 응원하는 한 주 보내시길 바랍니다.
5.
한강 작가의 책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죠.
전국의 서점들이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지만...저처럼 책을 확보하지 못한 서점들은 다들 이런 심정일겁니다.
진즉...구매해놓을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