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멈추면 비로소 보인다는 헛소리.


1.

저는 ‘출발’이 항상 늦은 편이었습니다. 남들이 대학교 1학년이 되었을 때, 학원을 다니며 수능공부를 했습니다. 친구들이 제대를 할 때쯤 훈련소에 들어갔습니다. 친구들이 취업을 하거나 취업준비를 한참하고 있을 때, 겨우 복학을 했죠. 취업도 30대가 되어서야 겨우 했습니다. 남들이 일반적으로 하는 일들을 겨우겨우 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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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를 챗gpt에게 이미지로 부탁했습니다. 아주 한국적인 이미지가 나왔네요]


2.

모든 게 늦었던 저를 위로 하기 위해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라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늦어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나 쉽게 할 수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나이에 따른 사회적 위치가 명확한 나라에서, ‘느리다’는 ‘부족하다’ 혹은 ‘무능하다’와 동의어가 될 수 있습니다. 당사자는 정말 쫄리는 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삶은 속도가 아닌 방향이라고 떠들어대지만, 그건 앞서서 다른 방향으로 이미 뛰어간 사람들이나 속편하게 할 수 있는 말이다. 실제로 뒤처져서 남들의 등을 바라보고 있으면 ‘속도가 아닌 방향’이라는 말은 듣기 좋은 헛소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3.

출발이 늦어서 이미 출발한 사람들의 등을 보고 있으면, 다른 방향으로 뛸 생각이 전혀 안듭니다. 다른 방향으로 뛰는 건 항로 이탈로 느껴지기 때문이죠. 겉으로는 잘 버티는 척하지만, 정말정말 X줄이 타는 느낌입니다. 이 사회의 영원한 아웃사이더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한없이 커집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꾸역꾸역 출발을 해야 했습니다. 늦더라도 일단 출발을 하다보면, 방향에 대한 고민은 자연스럽게 찾아옵니다. 바보가 아니라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죠. 내가 이대로 뛰어서 추월 할 수 있을지, 내가 남들보다 뒤에서 뛰지만, 순위에 상관없이 이 레이스를 즐길 수 있는지. 혹은 내가 뛰자 말아야 할 경주를 하고 있는 건 아닌지......


4.

출발도 안하고, 뛰어보지도 못한 채 다른 방향과 가능성을 고민하는 일은 자신에 대한 믿음을 밟아버릴 수도 있다. 굉장한 소신과 꿈이 있는 사람이라면 처음부터 신중하게 자신만의 길을 찾고 걸어도 됩니다. 그게 아니라면, 다수가 선택하는 길을 걸어본 후에, 자신만의 길을 선택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경험한 뒤에 선택해야, 늦더라도 자신의 삶에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도 있겠지만, 뛰어야 비로소 알 수 있는 것들도 있습니다. 출발도 안한 사람은 멈출 일도 없습니다.


5.

출발이라는 것이 꼭 취업이나 창업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삶의 모든 순간들이 선택이고 출발일 때가 많죠. 고민은 오래했는데, 확신이 없을 때에는 일단 출발해야 한다는 다짐을 스스로 하다가...서사레터를 남겨봅니다. 다들 행복한 명절 보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