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크 스트랜드 | 빈방의 빛
따뜻하지만, 외로운
호퍼의 그림은 짧고 고립된 순간의 표현이다.
시인이 말하는 호퍼 빈방의 빛 / 마크 스트랜드 / p.50
정도성 서사 라이브러리
얼마 전에 부산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해운대처럼 번화한 곳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구도심 느낌이 나는 서구에서 1박을 했습니다. 출장을 가서 1박을 하고, 밥을 먹으러 가게 되면 정말 열심히 관찰을 합니다. 이곳에서 나는 이방인이라고 생각해서인지, 다른 사람들이 밥먹는 장면, 커플들이 대화하는 모습, 가족들이 재미있게 노는 장면들을 열심히 관찰합니다.
이렇게 관찰을 하면 묘한 감정이 듭니다. 눈 앞의 풍광은 따뜻한데, 나는 이 곳에서 완벽한 타자이기 때문에 굉장히 외롭습니다. 따뜻한데 외롭다. 왠지 익숙한 감정입니다. 곰곰이 생각해봅니다. 이 감정 어디서 처음 느꼈지? 잠시 생각한 끝에 떠올랐습니다. 회사를 다녔을 때입니다. 입사하고, 회사 생활에 조금씩 익숙해져갈 때, 수 많은 사람들에 둘러쌓여 있지만, 결국 혼자라른 사실을 깨달았을 때가 있죠. 모두가 함께 하고 있는 것 같지만, 모두가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구나를 느낀 적이 있습니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함께가 아닐 때가 많습니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드는 느낌이 정말 이렇습니다. 따뜻해 보이지만, 외롭죠. 모든 그림을 보면, 따뜻해 보이는 실내에 사람들이 함께 있습니다. 서로 마주 보고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각 자의 역할에는 충실한데,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나의 삶에는 충실해보이지만, 우리의 삶이 없는 사람들. 마크 스트랜드가 쓴 '시인이 말하는 호퍼 빈방의 빛'을 통해 우리 삶을 생각해봅니다.
기품 있는 굴복이 필요한 이유

이런 가차 없는 거부의 분위기 때문에 사람들이 '철로변집'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집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가 어느 쪽으로 가든 그쪽으로 등을 돌리는 듯하다. 가장 단순하고도 콧대 높은 도도함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피할 수 없는 운명에 기품 있게 굴복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이 말하는 호퍼 빈방의 빛 / 마크 스트랜드 / p.38
기품 있는 굴복이 왜 필요할까요? 우리 삶에서는 실패와 굴복을 필연적으로 만납니다. 그 실패가 '나'를 훼손하지 말아야 합니다. 실패는 나의 노력이 원하는 성취에 도달하지 못한 것일 뿐입니다. 나의 도전이 실패했을 뿐이지, 내 자신이 실패는 아닙니다. 실패와 나를 동일시하지 않는다면, 실패를 당당하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물론, 전제가 있습니다. 최선을 다해야겠죠. 최선을 다하지 못하면, 실패한 후에 찾아오는 감정은 후회입니다. '기품있는 굴복'을 할 여유가 없습니다. 기품 있는 굴복은 최선을 다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선물일지도 모릅니다.
따뜻하지만, 외로운
나이트 호크를 보고 있으면 두 개의 모순적인 명령어 사이에서 주춤거리게 된다. 사다리꼴은 가던 길을 계속 가라고 우리를 재촉하고, 어두운 도시 속 다이너의 환한 실내는 우리에게 머물 것을 종용한다.
시인이 말하는 호퍼 빈방의 빛 / 마크 스트랜드 / p.20
나이트호크 / 1942 / 시카고아트인스티튜트 프렌즈오브아메리칸아트 컬렉션
나이트 호크입니다. 출장지에서 느낄 수 있는 전형적인 감정입니다. 늦은 밤, 숙소에 혼자 누워있기 싫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거리로 나갑니다. 혼자 숙소에 누워있기 싫으니, 커피를 한 잔 하러 갈 수도 있고, 위스키를 마시러 갈 수도 있습니다. 아주 따뜻해 보이는 곳을 찾아 들어갑니다. 따뜻해 보이지만, 따뜻한 곳은 아니죠.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공간에 들어가면, 서로 바라보지 않은 사람 한 명이 추가될 뿐입니다. 나이트호크는 전형적으로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지만, 서로에게 관심 없는 순간을 담고 있습니다. 바 위의 두 남녀, 여자가 열심히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남자는 입을 다문채로 정면을 봅니다. 관심이 있다면 고개나 몸이 여자쪽을 향할 수도 있고, 맞장구를 치면서 입이 열려 있을 수도 있지만, 미동도 없는 것 같습니다. 바 안에 직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야기는 들리겠지만, 시선과 몸의 방향은 손님을 향해 있지 않습니다. 자신의 역할에 충실할 뿐이죠.
그림 왼쪽 1/3을 차지하는 어두운 거리가 크게 보입니다. 따뜻해보이는 공간에 머물렀지만, 잠시 후에 나가야 합니다. 아주 잠시, 따뜻해 보이는 공간에 머물겠지만, 외로운 사람의 시선을 보여줍니다.
호퍼의 그림은 짧고 고립된 순간의 표현이다.
시인이 말하는 호퍼 빈방의 빛 / 마크 스트랜드 / p.50
현실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을 극대화해서, 그림을 통해 느낄 수 있어서 인기가 좋지 않나 싶습니다. 말로는 표현이 안되고, 모호하게 느꼈던 감정을 그림을 통해 형상화시킨 후에 다시 보여주니까요.
파도 / 1939 / 코르코란 미술관 워싱턴D.C
부표는 배와 서로 맞물려 있고, 그들이 이루는 형태 안에 고정돼 있다.
게다가 갑판에 있는 사람들이 부표를 바라보고 있는데, 그들의 시서노 부표를 그 자리에 고정시키는 데 한몫한다.
이들의 시선은 캔버스 밖의 다른 곳을 향하지 않고 한곳에 집중되어 배와 부표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시인이 말하는 호퍼 빈방의 빛 / 마크 스트랜드 / p.45
시선이 고정되어 있으니, 파도가 쳐도 흔들리는 것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흔들리는 것은 나를 둘러썬 상황이 아니라, 내 마음일 뿐입니다. 이런 메세지를 그림 한 장으로 전달합니다. 예술이 가진 힘이자 매력입니다.
애덤 그랜트의 히든 포텐셜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목표지점에 빨리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멀리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히든 포텐셜이라는 책에서, 수 많은 실험과 이론을 통해 야이가합니다. 아주 장황하게 말이죠. 얼마 훈 박완서의 말을 읽었습니다.
차오를 때까지 기다려야 해요.
박완서의 말 / 박완서
과학의 언어가 통찰을 준다면, 예술의 언어는 성찰하게 합니다. 우리가 문학,음악, 미술 같은 예술을 가까이 해야 할 이유입니다.
계단 / 1949 / 휘트니 미술관, 뉴욕
열려 있는 문은 단순히 안과 밖을 이어주는 통로가 아니다.
우리를 이 자리에 머물게 하려는 역설적인 몸짓일 뿐이다.
시인이 말하는 호퍼 빈방의 빛 / 마크 스트랜드 / p.67
밖에 있는 것, 선명하게 보이는 것이 우리 앞을 막을 때가 있습니다. 너무 선명하다보니, 궁금하지 않아서 나가지 않을 때가 있죠.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 중에서는 '미완성 작품'이 많다고 합니다. 일본의 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그 이유가 '궁금하지 않아서'라고 추측합니다. 완성되었을 때의 모습이 생생하게 구현되다보니, 궁굼하지 않아서 앞으로 나아가지 않습니다. 문이 반쯤 열려 있다면, 혹은 문이 닫혀있었다면, 문을 열고 싶었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선명할 때 움직이기도 하지만, 상상할 수 있을 때 움직이기도 합니다.
호퍼가 그린 악의 없는 세상
여자가 남자의 주의를 끌려 하지만, 여전히 허공을 바라보는 남자의 무감각한 표정 때문에 이 그림은 다소 만화 같은, 일화적인 특성을 갖는다. 한편 숲은 아무런 특징 없이, 악의 없는 모습으로 이들의 배경을 이루고 있다.
시인이 말하는 호퍼 빈방의 빛 / 마크 스트랜드 / p.67
호퍼의 세상이 인상적인 것은 악의가 없어서입니다. 색감이나 표정에 모두 악의가 없습니다. 그냥 관심이 없을 뿐이죠. 자연도 인간에게 관심이 없고, 인간도 자연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인간이 자연에게 관심이 있다면, 저렇게 깨끗하게 표현될 리가 없습니다. 관심을 갖고 자세히 들여본다면, 분명 잡목들도 있고, 쓰레기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물성이라고는 한 방울도 없는 세상입니다. 생활이 담겨있지 않다보니, 그저 배경으로만 존재합니다. 우연히 그 공간에 있었을 뿐이지, 애착이라곤 느껴지지 않습니다. 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앉아 있는 남자, 위에서 소리치는 여자. 남자에게 여자가 하는 '말'은 '소리'였을 것입니다. 아니면, 소음일지도 모르겠고요. 사람의 말에는 귀를 기울이는 것이 정상이지만, 그는 미동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관심없는 사람의 이야기는 소리로 취급하죠.

그녀는 무언가를 기대하는 듯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무엇을 보고 있는지 또는 정말 무언가를 보고 있기는 한 건지 알 수 없다.
시인이 말하는 호퍼 빈방의 빛 / 마크 스트랜드 / p.60
호퍼의 그림 속에 사람들을 보면, 나에게 없는 것을 선망하지만, 결코 선을 넘지 않습니다. 아침 햇살도 그렇고, 케이프 코드의 아침도 그렇습니다. 모두 창 밖의 '자연'을 보고 있지만, 집 안에서보 보고 있습니다. 집 밖으로 나가서 보는 것도 아니고, 그냥 내가 있는 자리에서 선망하듯이 바라봅니다. 볕을 쬐는 사람들도 그렇습니다. 모두가 대자연을 '감상'하고 있습니다. 결코 집 밖의 바운더리를 벗어나지 않은 곳에서요. 평야로 들어갈 의지가 1도 없습니다. 모두가 잘 차려 있었고, 시선만 자연을 향할 뿐입니다.
우리 삶에서 중요한 가치는 ㅇㅇ이다. 흔히들 물질적 가치보다 정신적 가치가 중요하다라는 말을 쉽게 합니다. 다만, 항상 몸은 물질적 가치에 있죠. 내가 지향하는 가치는 선망하는 대상으로만 존재할 뿐, 우리 현실에서 실현되는 가치가 아닐 때가 많습니다. 이럴 때, 헛헛합니다. 분명히 내 삶인데, 내 삶에서 내가 배제된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내 가치가 선망의 가치인지, 아니면 실현되는 가치인지를 충분히 고민해야 합니다. 선망할뿐인 가치는 '나'를 외롭게 만듭니다.
추상화의 본질은 한 가지 특징만 잡아내는 것이다.
미셀 루트번스타인 / 생각의 탄생 /p.122
미첼 루트번스타인의 생각의 탄생을 보면, 생각도구로 '관찰','패턴형성','감정이입','추상화''형상화'가 있습니다.
호퍼의 그림을 보면, 루트번스타인이 이야기하는 생각도구들과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수 많은 사람들과 함께 살지만 외로운 사람을 '관찰'했겠죠. 그리고 그들의 특징, 함께 있지만 서로에게 관심이 없다'라는 패턴을 주제로 잡았을 테고, 그 사람들에게 감정이입하여 배경을 그려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을 그림으로 형상화했겠죠. 호퍼가 가장 탁월한 해 보이는 것은 '추상화'같습니다. 저자는 '호퍼의 그림에 등장하는 도시는 대개 사실적이기보다는 형식미가 두드러진다'고 평가합니다. 사실이 아니라, 특정한 형식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정서에만 집중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군더더기 없이 전달하고 싶은 정서에만 집중했기에, 호퍼가 그린 20세기 중반 미국의 자화상에 우리가 공감할 수 있습니다.
마크 스트랜드 | 빈방의 빛
따뜻하지만, 외로운
호퍼의 그림은 짧고 고립된 순간의 표현이다.
시인이 말하는 호퍼 빈방의 빛 / 마크 스트랜드 / p.50
정도성 서사 라이브러리
얼마 전에 부산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해운대처럼 번화한 곳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구도심 느낌이 나는 서구에서 1박을 했습니다. 출장을 가서 1박을 하고, 밥을 먹으러 가게 되면 정말 열심히 관찰을 합니다. 이곳에서 나는 이방인이라고 생각해서인지, 다른 사람들이 밥먹는 장면, 커플들이 대화하는 모습, 가족들이 재미있게 노는 장면들을 열심히 관찰합니다.
이렇게 관찰을 하면 묘한 감정이 듭니다. 눈 앞의 풍광은 따뜻한데, 나는 이 곳에서 완벽한 타자이기 때문에 굉장히 외롭습니다. 따뜻한데 외롭다. 왠지 익숙한 감정입니다. 곰곰이 생각해봅니다. 이 감정 어디서 처음 느꼈지? 잠시 생각한 끝에 떠올랐습니다. 회사를 다녔을 때입니다. 입사하고, 회사 생활에 조금씩 익숙해져갈 때, 수 많은 사람들에 둘러쌓여 있지만, 결국 혼자라른 사실을 깨달았을 때가 있죠. 모두가 함께 하고 있는 것 같지만, 모두가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구나를 느낀 적이 있습니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함께가 아닐 때가 많습니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드는 느낌이 정말 이렇습니다. 따뜻해 보이지만, 외롭죠. 모든 그림을 보면, 따뜻해 보이는 실내에 사람들이 함께 있습니다. 서로 마주 보고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각 자의 역할에는 충실한데,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나의 삶에는 충실해보이지만, 우리의 삶이 없는 사람들. 마크 스트랜드가 쓴 '시인이 말하는 호퍼 빈방의 빛'을 통해 우리 삶을 생각해봅니다.
기품 있는 굴복이 필요한 이유
기품 있는 굴복이 왜 필요할까요? 우리 삶에서는 실패와 굴복을 필연적으로 만납니다. 그 실패가 '나'를 훼손하지 말아야 합니다. 실패는 나의 노력이 원하는 성취에 도달하지 못한 것일 뿐입니다. 나의 도전이 실패했을 뿐이지, 내 자신이 실패는 아닙니다. 실패와 나를 동일시하지 않는다면, 실패를 당당하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물론, 전제가 있습니다. 최선을 다해야겠죠. 최선을 다하지 못하면, 실패한 후에 찾아오는 감정은 후회입니다. '기품있는 굴복'을 할 여유가 없습니다. 기품 있는 굴복은 최선을 다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선물일지도 모릅니다.
따뜻하지만, 외로운
나이트 호크입니다. 출장지에서 느낄 수 있는 전형적인 감정입니다. 늦은 밤, 숙소에 혼자 누워있기 싫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거리로 나갑니다. 혼자 숙소에 누워있기 싫으니, 커피를 한 잔 하러 갈 수도 있고, 위스키를 마시러 갈 수도 있습니다. 아주 따뜻해 보이는 곳을 찾아 들어갑니다. 따뜻해 보이지만, 따뜻한 곳은 아니죠.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공간에 들어가면, 서로 바라보지 않은 사람 한 명이 추가될 뿐입니다. 나이트호크는 전형적으로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지만, 서로에게 관심 없는 순간을 담고 있습니다. 바 위의 두 남녀, 여자가 열심히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남자는 입을 다문채로 정면을 봅니다. 관심이 있다면 고개나 몸이 여자쪽을 향할 수도 있고, 맞장구를 치면서 입이 열려 있을 수도 있지만, 미동도 없는 것 같습니다. 바 안에 직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야기는 들리겠지만, 시선과 몸의 방향은 손님을 향해 있지 않습니다. 자신의 역할에 충실할 뿐이죠.
그림 왼쪽 1/3을 차지하는 어두운 거리가 크게 보입니다. 따뜻해보이는 공간에 머물렀지만, 잠시 후에 나가야 합니다. 아주 잠시, 따뜻해 보이는 공간에 머물겠지만, 외로운 사람의 시선을 보여줍니다.
현실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을 극대화해서, 그림을 통해 느낄 수 있어서 인기가 좋지 않나 싶습니다. 말로는 표현이 안되고, 모호하게 느꼈던 감정을 그림을 통해 형상화시킨 후에 다시 보여주니까요.
시선이 고정되어 있으니, 파도가 쳐도 흔들리는 것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흔들리는 것은 나를 둘러썬 상황이 아니라, 내 마음일 뿐입니다. 이런 메세지를 그림 한 장으로 전달합니다. 예술이 가진 힘이자 매력입니다.
애덤 그랜트의 히든 포텐셜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목표지점에 빨리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멀리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히든 포텐셜이라는 책에서, 수 많은 실험과 이론을 통해 야이가합니다. 아주 장황하게 말이죠. 얼마 훈 박완서의 말을 읽었습니다.
과학의 언어가 통찰을 준다면, 예술의 언어는 성찰하게 합니다. 우리가 문학,음악, 미술 같은 예술을 가까이 해야 할 이유입니다.
밖에 있는 것, 선명하게 보이는 것이 우리 앞을 막을 때가 있습니다. 너무 선명하다보니, 궁금하지 않아서 나가지 않을 때가 있죠.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 중에서는 '미완성 작품'이 많다고 합니다. 일본의 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그 이유가 '궁금하지 않아서'라고 추측합니다. 완성되었을 때의 모습이 생생하게 구현되다보니, 궁굼하지 않아서 앞으로 나아가지 않습니다. 문이 반쯤 열려 있다면, 혹은 문이 닫혀있었다면, 문을 열고 싶었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선명할 때 움직이기도 하지만, 상상할 수 있을 때 움직이기도 합니다.
호퍼가 그린 악의 없는 세상
호퍼의 세상이 인상적인 것은 악의가 없어서입니다. 색감이나 표정에 모두 악의가 없습니다. 그냥 관심이 없을 뿐이죠. 자연도 인간에게 관심이 없고, 인간도 자연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인간이 자연에게 관심이 있다면, 저렇게 깨끗하게 표현될 리가 없습니다. 관심을 갖고 자세히 들여본다면, 분명 잡목들도 있고, 쓰레기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물성이라고는 한 방울도 없는 세상입니다. 생활이 담겨있지 않다보니, 그저 배경으로만 존재합니다. 우연히 그 공간에 있었을 뿐이지, 애착이라곤 느껴지지 않습니다. 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앉아 있는 남자, 위에서 소리치는 여자. 남자에게 여자가 하는 '말'은 '소리'였을 것입니다. 아니면, 소음일지도 모르겠고요. 사람의 말에는 귀를 기울이는 것이 정상이지만, 그는 미동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관심없는 사람의 이야기는 소리로 취급하죠.
호퍼의 그림 속에 사람들을 보면, 나에게 없는 것을 선망하지만, 결코 선을 넘지 않습니다. 아침 햇살도 그렇고, 케이프 코드의 아침도 그렇습니다. 모두 창 밖의 '자연'을 보고 있지만, 집 안에서보 보고 있습니다. 집 밖으로 나가서 보는 것도 아니고, 그냥 내가 있는 자리에서 선망하듯이 바라봅니다. 볕을 쬐는 사람들도 그렇습니다. 모두가 대자연을 '감상'하고 있습니다. 결코 집 밖의 바운더리를 벗어나지 않은 곳에서요. 평야로 들어갈 의지가 1도 없습니다. 모두가 잘 차려 있었고, 시선만 자연을 향할 뿐입니다.
우리 삶에서 중요한 가치는 ㅇㅇ이다. 흔히들 물질적 가치보다 정신적 가치가 중요하다라는 말을 쉽게 합니다. 다만, 항상 몸은 물질적 가치에 있죠. 내가 지향하는 가치는 선망하는 대상으로만 존재할 뿐, 우리 현실에서 실현되는 가치가 아닐 때가 많습니다. 이럴 때, 헛헛합니다. 분명히 내 삶인데, 내 삶에서 내가 배제된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내 가치가 선망의 가치인지, 아니면 실현되는 가치인지를 충분히 고민해야 합니다. 선망할뿐인 가치는 '나'를 외롭게 만듭니다.
미첼 루트번스타인의 생각의 탄생을 보면, 생각도구로 '관찰','패턴형성','감정이입','추상화''형상화'가 있습니다.
호퍼의 그림을 보면, 루트번스타인이 이야기하는 생각도구들과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수 많은 사람들과 함께 살지만 외로운 사람을 '관찰'했겠죠. 그리고 그들의 특징, 함께 있지만 서로에게 관심이 없다'라는 패턴을 주제로 잡았을 테고, 그 사람들에게 감정이입하여 배경을 그려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을 그림으로 형상화했겠죠. 호퍼가 가장 탁월한 해 보이는 것은 '추상화'같습니다. 저자는 '호퍼의 그림에 등장하는 도시는 대개 사실적이기보다는 형식미가 두드러진다'고 평가합니다. 사실이 아니라, 특정한 형식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정서에만 집중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군더더기 없이 전달하고 싶은 정서에만 집중했기에, 호퍼가 그린 20세기 중반 미국의 자화상에 우리가 공감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