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물고기를 분류하다가 이 세상을 분류하게 되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룰루 밀러

물고기를 분류하다가 이 세상을 분류하게 되었다


‘2020년 최고의 책’으로 선정되며 미국을 휩쓴 베스트셀러. 삶이 힘들었던 저자는 19세기 어느 과학자의 삶을 좇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 과학자를 추적하며 알게 된 충격적인 진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진실’은 존재하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어류”라는 범주가 이 모든 차이를 가리고 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p.241


모든 ‘분류’는 우리의 의식을 쉽게 단정 짓고 지배하며, 내가 속한 범주가 아니라고 판단하게 만들어 그들을 배제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이 세계의 분류는 어떤 사람들이 정하는 걸까.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물고기를 분류하다가 이 세상을 분류하게 되었다. 저자는 미국의 저명한 어류 분류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물고기를 분류하다가 어떻게 이 세상까지 분류하게 되었는지 그 여정을 좇으며 고발한다. 저자 룰루 밀러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을 동경했다. 젊음을 바쳐 수집해 이름 붙인 수천 종의 물고기 표본이 지진으로 인해 한순간에 뒤섞인 순간에도 흔들림 없이 다시 물고기의 피부에 하나하나 이름을 새기고 질서를 부여하는 사람이었다.

 


저자는 목적을 갖고 끈질기게 나아가는 학자, 인간으로서의 태도에 감명을 받는다. 저자는 마침 그때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신의 인생이 완전히 난파되었다고 느끼던 시기였고, 그 흩어진 잔해를 다시 이어보고자 노력하던 중이어서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이러한 일화는 더욱 와닿았다. 룰루 밀러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에게 공감했다. 소년 시절의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별을 좋아했고, 땅의 모양, 식물의 종 등 자연이 품고 있는, 숨어 있는 작은 것들에 관심을 가졌다. 직장이나 가르치는 학생들에게는 자주 거부당하며 사회에 잘 섞이지 못했지만, 흔들리지 않고 좋아하는 수집에 몰두했다. 그의 삶은 저자의 아버지가 강조하던 삶의 태도와 닮았다. 아버지는 언제나 “너 좋은 대로 살아”라고 말하며 자유로운 삶을 사는 활기 넘치는 사람이었는데, 룰루 밀러가 직접 마주한 현실은 조금 달랐다. 저자의 큰 언니는 머리와 눈이 검다며 외모적인 차별부터 시작해, 사회적으로 배제된 채 살다가 결국 그 상처를 극복하지 못했다. 저자의 성장기 역시 언니와 다르지 않았다. 아버지는 자매에게 충분히 열심히 들여다보면 인생의 좋은 점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데 왜 그러냐며 답답해 했다.



저자는 아버지의 말처럼, 데이비드 스타 조던처럼, 끈질기게 무언가에 몰두하여 내 안의 혼란을 없애는 것이 왜 어려울까 괴로워했다. 저자는 결국 그러한 해결 방식을 포기하기로 한다. 그들과 달리 자연이 아닌 현실을 직시하기로 한다. 그렇게 하니 오히려 혼란을 없애기 위해 세운 현실의 질서가 과연 옳은 것인지에 대해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이 순간부터 데이비드 스타 조던을 동경하기를 멈추게 된다. 특히 사회의 주류적 위치에 놓인 인물이 세상에 어떻게 질서를 부여하고, 그 질서가 질서 밖의 사람을 어떻게 배제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는지 맹렬하게 좇기 시작한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미국의 무수한 미지의 어류를 밝혀낸, 존경받던 어류학자였다. 조던은 생물에게서 도덕적 교훈을 찾으려는 것과 동시에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다른 생물과 비교 우위를 찾아 지위를 부여했다.


“한자리에 뿌리를 내리고 주머니 모양의 몸으로 여과 섭식을 하는 멍게가 한때는 더 고등한 물고기였지만 “게으름”, “무활동과 의존성”이 더해진 결과 현재와 같은 형태로 강등된 것이라는 의견을 냈다. 데이비드에게 멍게는 명백한 경고이자 게으름에 대한 교훈담이고, 말 그대로 멍청하기 짝이 없는 주머니였다.” p.74


이런 관점을 인간에게 적용한다면 어떻게 될까. ‘우생학’은 세상에 우월한 유전자가 흘러넘치도록, 유전적 엘리트들에게 더 많은 아이를 낳게 하고, 부적합해 보이는 사람들은 박멸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개념이다. <종의 기원> 저자 찰스 다윈의 고종사촌인 프랜시스 골턴이라는 영국의 과학자가 만든 말이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물고기 수집 여행 중 이탈리아 알프스의 아오스타라는 마을을 방문했다. 그곳은 정신적, 육체적 장애를 지닌 사람들의 안식처 같은 곳이었다. 1880년대 이곳을 찾은 데이비드는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을 보고 경악하고는 아오스타의 사람들에게 ‘거위보다 지능이 낮고 돼지보다 품위가 떨어지는’ 지위를 부여했다. 



우생학을 보급시킨 데이비드 스타 조던

이들이 ‘새로운 인간의 종’을 퇴화시키고 있다는 주장을 담은 책 한 권을 쓰게 된다. 그전에는 미국에서 인기 없던 ‘우생학’이 그의 책을 통해 널리 보급되기 시작했다. 우생학 추종자들은 자연스럽게 불임화의 합법화를 주장했고, 이는 여성 혐오로 이어지기도 했다. 물론 나치의 홀로코스트 이후부터 우생학은 점차 쇠퇴했다. 그러나 이 시대에는 여전히 다른 버전의 우생학이 존재하고 있다. 과연 ‘부적합자들’은 하나로 뭉뚱그려 ‘부적합자들’로 분류될 수 있을까. 어류는 모두 어류로 분류되는 것이 맞는 걸까. 우리가 잘 몰라서 그렇지 육기어류 폐어와 실러캔스는 우리와 상당히 가까우며,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의 진화적 사촌이라 볼 수 있다.


“데이비드가 게으름의 상징이라고 지적한 멍게는 척삭이라는 척추와 비슷한 구조물을 가장 먼저 선구적으로 갖춘 생물 중 하나다. 다시 말해 멍게는 퇴보한 존재가 아니라 정반대로 혁신가였던 셈이다. ‘어류’라는 범주가 이 모든 차이를 가리고 있다. 많은 미묘한 차이들을 덮어버리고, 지능을 깎아내린다. 그 범주는 가까운 사촌들을 우리에게서 멀리 떼어놓음으로써 잘못된 거리 감각을 만들어내는데, 이는 상상 속 사다리에서 우리가 차지하는 제일 윗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p.241~242


분류를 깨부수는 통쾌함

세상에 이렇게 뭉뚱그려 분류된 것들이 ‘어류’ 뿐일까. 이 책은 작품 외적으로도 ‘분류’를 부수고자 시도하고 있다. 서점에 가면 책이 카테고리별로 분류되어 있다. 인문, 시, 과학, 에세이, 역사, 문화, 정치, 사회 등. 이 책은 신기하게도 서점이 분류해 놓은 장르의 특성을 다 포함하고 있다. 에세이로 시작해 에세이로 끝나지만, 그 안에는 여러 논문이 인용되어 있고, 논문의 해석을 시의 언어로 은유한다. 과학자의 연구를 좇는 전기적 흐름을 보이지만, 그 과학자가 보급한 ‘우생학’이 어떤 피해의 역사를 쓰게 했는지 개인의 증언을 통해 고발하며, 이것이 현실 세계의 문화적, 사회적 상황과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 검토한다.


 


에디터의 생각👽

우리는 왜 ‘물고기’를 ‘물고기’라고 부르게 된 걸까. 물고기의 뜻은 물에 사는 고기로 어류의 척추동물을 이른다. 때로는 아예 ‘물’자를 빼고 ‘고기’라고 부르기도 한다. ‘고기’의 뜻을 찾아보았다. 식용하는 온갖 동물의 살. 새삼 ‘물고기’라는 단어가 인간 입장에서 만들어진, 생명체에게 붙기엔 폭력적인 단어라는 생각이 든다. ‘물고기’는 어쩌면 누군가 정한 수많은 범주와 명명의 예라고 볼 수 있다. 모두가 믿고 있는 ‘분류’의 언어는 당연히 옳은 걸까 의문을 품고 질문을 던져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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