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불안은 어떻게 인간을 잠식하는가

멜랑콜리아 | 욘포세

불안은 어떻게 인간을 잠식하는가



'멜랑콜리아’는 2023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욘 포세의 대표작이다. “말로 하기 어려운 것을 글로 표현했으며, 인간의 불안과 양가성을 잘 드러냈다”는 한림원의 선정 이유처럼 인간이 가진 ‘불안’이라는 감정과 그 감정이 만들어내는 파동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우리는 여러 형태의 불안을 품고 산다. 불안은 상황에 따라 크기를 키우기도 하고 더없이 작아지기도 한다. 욘 포세의 소설 ‘멜랑콜리아’는 이러한 인간 심리를 파고든다.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실패하면 어쩌지?’ 하며 돌연 덮쳐오는 불안. 그것이 만들어낸 균열과 부정적인 생각들. 욘 포세의 소설은 시점과 시간을 오가며 불안과 혼란이 빚어낸 복잡한 심리를 촘촘하게 들여다본다.


“나는 자유를 되찾아야 한다.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 나는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

그림을 그릴 수 없다면 내가 존재할 이유도 없다. 빛도 사라질 것이다.” 

<멜랑콜리아> 중에서


등장인물👨‍👩‍👧‍👧

  • 라스 헤르테르비그 : 풍경화가가 되고자 예술 아카데미를 찾지만 돌연 정신 착란에 사로잡힌다.
  • 헬레네 : 하숙집 주인인 빙켈만의 딸로 라스는 그녀에게 매료된다.
  • 빙켈만 : 헬레네의 삼촌으로 몸집이 크고 뚱뚱하다. 라스를 하숙집에서 쫓아낸다.
  • 알프레드 : 예술가들이 모인 곳인 말카스텐에서 만난 그림을 못 그리는 화가.
  • 한스 구데 : 유명한 화가로 아카데미의 교수로 일한다. 라스는 그의 제자가 되기 위해 독일에 왔다.
  • 허우게 : 라스가 입원한 정신 병원의 보호사로 몸집이 크다.
  • 비드메 : 소설가. 라스의 그림 한 점에 사로잡힌 후 그의 삶을 다룬 소설을 쓰고자 한다.
  • 올리네 : 헤르테르비그의 누이로 치매를 앓고 있다. ‘멜랑콜리아 II’는 올리네의 시점으로 서술된다.

 

이 책은 1인칭과 3인칭을 오가며 서술된다. 소설은 반복되는 문장과 표현을 통해 인물들의 불안과 혼란을 보여준다. 욘 포세의 글은 희곡과 산문의 경계를 부수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따라서 글을 눈으로 읽을 때는 인물의 불안이 전이되고 입으로 소리내어 읽을 땐 특유의 리듬감을 느낄 수 있다.



<멜랑콜리아 I>

Part. 1  돌연 정신착란에 사로잡히는 라스 헤르테르비그

나는 오늘 아틀리에에 가지 않을 것이다

1853년 독일 뒤셀도르프 늦가을, 라스는 보라색 코듀로이 양복을 입고 침대에 누워 있다. 그는 화가 한스 구데의 아틀리에로 찾아가 제자가 될 수 있을지 없을지의 기로에 서 있다. 그러나 라스는 오늘 그의 아틀리에로 가지 않고 침대에 누워만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하숙집 주인 빙켈만의 딸 헬레네를 떠올린다.


라스, 하숙집에서 쫓겨나다

라스는 헬레네에게 다가가 그를 감싸 안았고 라스는 평온함을 느낀다. 헬레네는 자신의 삼촌인 빙켈만이 라스를 집에서 쫓아낼 거라고 말해준다.라스는 헬레네에게 본인이 집을 나가길 바라냐고 묻지만 헬레네는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다. 라스를 쫓아내라고 한 건 헬레네일까, 빙켈만일까. 그때 흰색과 검은색이 섞인 천이 다가온다. 희고 검은 천을 보았냐고 헬레네에게 묻지만 그녀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고 한다. 갑자기 헬레네의 삼촌인 빙켈만이 나타나 화를 내며 라스에게 이 집에서 오늘 당장 나가라고 한다.


“천이 사라졌다. 단지 한 조각의 천에 불과한 것. 사라졌다. 흰 천은 사라졌고 나는 그것을 따라갔다. 바로 저기, 천에 거의 손이 닿을 듯했다. 하지만 천은 다시 사라졌고,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p.35

그림을 못 그리는 화가들이 모인 곳, 말카스텐으로 가다

쫓겨난 라스는 말카스텐으로 향한다. 말카스텐은 화가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말카스텐의 문 안쪽에 그림을 못 그리는 화가들 중 한 명인 알프레드가 테이블에 앉아 있다. 알프레드가 자신을 발견하지 않기를 바라지만 알프레드는 곧장 그를 큰 소리로 부른다. 라스의 눈앞에 헬레네의 모습과 희고 검은 천이 떠돌고, 알프레드는 계속해서 떠들어댄다. 희고 검은 옷을 입은 웨이트리스가 말을 건다. 라스 앞에서 희고 검은 천이 계속 펄럭인다.

 

눈앞에서 흔들리는 희고 검은 천

라스는 알프레드가 그림을 못 그린다고 말한 후에 자신은 그림을 잘 그린다고 말한다.ㅡ라스는 파이프를 들어올려 담배를 피우려 하지만, 알프레드가 자신의 파이프라고 말한다. 두 사람이 파이프를 두고 언쟁하자 사람들이 쳐다보고 희고 검은 천도 라스의 몸을 감싼다. 웨이트리스가 달래듯 맥주를 권하지만 라스는 돈이 없다. 라스는 가난한 집안 출신이다. 그때 헬레네가 라스, 라스 하고 부른다. 고개를 들었지만 도장공 타스타가 보일 뿐이다. 타스타는 라스에게 천국으로 향하는 길을 그려야 한다고 한다. 희고 검은 천이 불러오는 장면에 라스는 고향 해안가의 곶과 하숙집 다락방을 떠올린다.


“나는 그림자 속에서 걸었다. 저 멀리엔 여전히 강렬한 햇살이 비추어 내렸다. 사람들은 우리의 내면에도 빛이 있다고 말했다. 나는 내 속에서도 빛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p.110


피오르의 해안에서 아버지와 함께 했던 기억을 떠올리다

보둠과 알프레드가 헬레네와의 사이는 어떻게 되었냐고, 그녀의 삼촌이 쫓아냈냐고 묻는다. 라스는 하숙집 문 앞에 서 있던 빙켈만과 부두에 서 있던 아버지를 떠올린다. 라스가 배에 앉자 아버지가 나무배를 밀었고, 배는 피오르와 헬레네를 향해 움직였다. 웨이트리스가 무언가 마시지 않겠냐고 묻고, 라스는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맥주를 주문한다.


다시 돌아오라며 라스를 부르는 헬레네

다시 희고 검은 천이 보인다. 헬레네가 집으로 오라며 부르고 라스는 당장 가려고 한다. 사람들에게 가야 한다고 말하자, 여자를 만나러 가려면 용기를 내야한다고 술을 권한다. 라스는 이제 말카스텐을 나서려 한다. 사랑하는 헬레네가 그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문을 나서는 라스의 뒤로, 문 안쪽의 사람들이 미친놈이라며 라스를 비웃는 소리가 들린다. 그때 뮐러가 나타나 구데가 올지도 모르니 말카스텐으로 들어가자고 한다. 구데가 온다면 라스의 그림을 평가할 것이므로 라스는 더욱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


Part. 2  하숙집으로 되돌아온 라스

헬레네의 부름에 따라 하숙집으로 돌아오다

라스는 헬레네가 있는 곳으로 향하며 그녀와 사랑을 나누는 상상에 사로잡힌다. 그러나 헬레네는 왜 그가 집에서 나가기를 바라는 걸까? 혹시 삼촌을 좋아하는 건 아닐까? 하숙집으로 가 문을 열자 방문 앞에는 수트 케이스 두 개가 놓여 있다. 머무를 곳이 없는데, 침대에 조용히 누워 있어야 하는데, 더 이상 이 집에서 살 수 없다. 그때 헬레네가 나타나 삼촌 빙켈만이 라스가 어서 집에서 나가길 바란다고 말한다. 라스는 그녀 또한 같은 마음이냐고 묻자 대답없이 미소를 짓는다. 헬레네의 미소가 커지며 방 안을 가득 채운다. 라스는 얼굴을 가렸고 모든 것이 검게 변했다.



수트 케이스를 들고, 다시 하숙집에서 나오다

아버지가 선착장으로 달려와 챙모자를 흔들며 집으로 돌아오라고 말한 뒤 바다에 뛰어든다. 희고 검은 천이 나타나면서, “도대체 누구와 대화하는 거죠?” 묻는 소리가 들린다. 대문이 열리고 빙켈만씨와 헬레네의 어머니가 나누는 대화가 들린다. 두 사람은, 라스가 미친 사람 같았다며 쫓아내기를 잘했다면서 방문을 연다. 두 사람에게 라스는 헬레네와 자신은 연인 사이이고 말한다. 빙켈만씨의 눈동자가 얼굴에서 빠져나와 방안을 헤집고, 그들의 윤곽이 흐릿해 보인다.


한스 구데와 함께 말카스텐으로 향하다

라스는 계단을 내려가며 독일에서 더 머무를 수 없으니,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른 채 길을 걷던 중 한스 구데가 나타나 어디로 가는지 묻는다. 라스는 한스 구데가 왜 오늘 강의에 오지 않았는지 묻지 않길 바란다. 구데는 라스에게 말카스텐에 가보자며 라스의 그림을 칭찬한다. 말카스텐 문 앞에 서자 사람들이 원형 테이블에 앉아 있다. 라스를 비웃고 있는 것만 같다. 구데가 들어가자고 권하자 라스는 거절하고 길 위쪽으로 걸어간다.


헬레네가 말카스텐에서 라스를 기다리고 있다

알프레드가 라스에게 헬레네가 말카스텐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라스는 알프레드와 다시 말카스텐 안으로 들어갔다. 희고 검은 옷들이 보인다. 보둠과도 만나 인사한다. 그들은 짐을 든 라스에게 어디 여행이라도 가는 것인지 묻는다. 사람들은 ‘위하여’를 외치며 술잔을 들어올리고, 라스는 묵묵히 서 있을 뿐이다. 라스는 화가들이 만든 원 속에 덩그러니 서 있다. 중간중간 웃음소리가 새어나온다. 알프레드가 어서 애인 헬레네를 소개해달라면서, 설마 이곳에 그녀가 없는 건지 의심한다.


“당신은 지금 어디 있는가? 나는 당신을 만나야 한다. 세상의 그 누구라도 각자 머물 자리가 있는 법이지만, 나는 머물 곳이 없다. 나는 당신을 만나야 한다.” p.233


가야할 곳은 없지만 어디론가 가야 한다

라스는 다시 하숙집이 있는 곳으로 간다. 헬레네가 거기서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라스는 헬레네와 노르웨이의 스타방에르로 떠나리라 생각하며 빙켈만 씨의 문을 두드린다. 발소리가 점점 커지며 문이 열리고 빙켈만 부인이 나타나 왜 이곳에 다시 왔는지 묻는다. 삼촌 빙켈만이 화를 내며 다가와 경찰을 부르겠다며 코트를 입고 밖으로 나간다. 빙켈만 부인이 경찰이 당신을 체포해갈 거라며 돌아가라고 하지만 라스는 가만히 서 있다. 곧 빙켈만이 경찰을 데리고 오고, 라스는 어둑어둑한 거리로 나섰다. 어디론가 가야 한다.


“어디론가 가야 한다. 이 세상에는 누구든 각자 머물 곳이 있는 법이다. 내게도 머물 곳이 있을 것이다. 나는 어둑어둑한 거리로 나섰다. 나는 어디론가 가야 한다.” p.249

Part.3  정신 병원에 입원한 라스

가우스타 정신 병원에 입원하다

1856년 크리스마스 이브, 라스는 하늘을 나는 갈매기를 보며 정신 병원에 입원해 있다. 그는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화구는 모두 빼앗겼으며 시도 때도 없이 자위한다. 주치의 산드베르그 박사는 라스에게 그림을 그려서 안 되고, 자위를 해서도 안 된다고 했다. 라스는 여자들은 모두 창녀라고 비난하며 욕하자, 허우게는 박사에게 보고하겠다고 한다.


가우스타 정신 병원을 탈출해야 한다

모두 일어난 아침, 라스는 뒤늦게 일어나 옆 침대를 쓰는 헬게에게 병원을 도망치자고 한다. 그때 헬레네의 모습이 나타난다. 라스는 그녀에게 다른 나라, 낯선 나라로 떠나자고 한다. 아침 식사를 한 뒤 눈을 치우지만 한스 구데의 제자였던 라스는 눈을 치울 이유가 없다. 박사는 라스에게 자위를 멈추지 않는다면 건강을 되찾을 수 없을 거라고 경고한다. 라스는 성적인 말을 외치고 갈매기 이야기를 하고 뱀은 똬리를 튼다고 말한다.


오솔길 아래쪽에 서 있는 헬레네에게로 가다

라스는 박사의 집무실을 나서며 이곳을 도망쳐야 한다고 생각하고 헬레네의 환상을 본다. 헬레네가 남자들 앞에 서 있는 장면을 생각하다 화장실에서 자위를 하고 허우게에게 들킨다. 가우스타 정신 병원에는 그림을 못 그리는 화가들이 가득해서 라스는 그림을 그릴 수 없다. 바깥의 오솔길에 헬레네가 보인다. 구름이 떠 있는 하늘은 헬레네의 눈동자를 닮았다. 이제 라스는 그녀를 닮은 그림을 그릴 것이다. 누군가 “죽어버려” 외치며 눈덩이를 던진다.라스는 오솔길 아래로 내려간다. 멀리서 하얀 드레스를 입은 헬레네가 있는 쪽으로.


“그녀의 아름다운 눈은 구름이 떠 있는 하늘을 닮았다. 나는 그녀의 눈을 자주 그렸다. 나는 구름이 떠 있는 하늘을 자주 그렸다. 빛을 머금은 하늘. 구름이 떠 있는 하늘. 나는 그녀의 그림을 그릴 것이다. 빛 속에서. 구름이 떠 있는 하늘 속에서.” p.334


작가 비드메, 라스의 그림에 대한 소설을 쓰기로 결심하다

장면이 바뀌고 1991년 늦가을 저녁, 작가 비드메가 오사네를 걷고 있다. 비드메는 오슬로의 국립 미술관에서 본 화가 라스 헤르테르비그의 그림에 매료된 후 그에 관한 소설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한 단어도 쓰지 못한 채, 코트를 입고 비 내리는 거리로 나왔다. 그리곤 마음에 담아 두었던 일을 하기 위해 노르웨이 교회 사제를 만나러 간다.


라스가 자란 섬, 보르그외위에 갔던 비드메

비드메는 라스가 유년 시절을 보낸 섬 보르그외위에 가본 적 있다. 비드메는 그곳에서 라스의 친척이라는 남자를 만나 짧게나마 이야기를 나누었다. 소설을 쓰기로 마음먹은 그날을 떠올리며 비드메는 비에 젖은 채 낯선 집의 대문 앞에 섰다. 비드메가 통화해 만남을 청한 노르웨이의 교회 사제는 마리아라는 이름의 여성이었다.


사제 마리아를 만나 대화를 나누다

열다섯 살에 국교를 탈퇴했던 비드메는 지금 다시 노르웨이의 교회에 이름을 올리려 한다. 종교에 관한 대화를 나누던 중 마리아가 왜 교회에 이름을 올리려 하냐고 묻는다. 마리아는 비드메가 종교적 신비주의자라서 노르웨이 교회에 적합하지 않다고 말한다. 비드메는 문득 그곳에 앉아 있기가 싫어져 일어나 나와 집을 향해 발을 옮겼다. 비드메는 앞으로 마리아를 찾아갈 일이 없으리라 생각하며 다시 책상 앞으로 가 글을 쓴다. 그는 작업실에 앉아 매일 글을 쓸 것이고 그러기 위해선 신의 자비가 필요하다.


“비드메는 확신할 수 없는 것들 때문에 갈팡질팡하고, 이해할 수 없는 것들 때문에 빛을 향해 열린 공간을 바라보며 경이로움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종교라고 생각했다. 종교는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경이로움과 빛이다.” p.369

<멜랑콜리아 II>

Part.4  기억이 흐릿해진 올리네

라스의 누나 올리네의 이야기가 시작되다

1902년 초가을, 스타방에르. 올리네는 지팡이에 몸을 의지해 가파른 언덕을 오른다. 손에는 어부 스베인이 준 생선이 든 봉지가 들려 있다. 그런 올리네를 시그네가 부른다.시그네는 올리네의 동생 쉬버트의 건강이 악화되어 마지막 순간이 다가온 것 같다 말한다. 올리네는 또다른 동생 라스를 떠올린다. 유명한 화가가 될 수도 있었던 라스를.라스는 무척이나 아름다운 그림을 그렸지만 어느 순간 그의 그림은 낙서처럼 변해버렸다. 사람들은 그를 미친 라스 혹은 들쥐라고 불렀고 그외에도 입에 담을 수 없는 말로 불렀다.올리네는 화장실에 가는 것도 힘들어할 정도로 나이 들어 요강을 써야 한다. 작은집에서 오줌을 누다가, 문고리에 걸어둔 생선 눈알을 보며 어린 시절, 라스를 떠올린다.


과거의 기억 속에서 동생 라스를 떠올리다

부모님의 언쟁이 오가는 가운데, 집을 뛰쳐간 라스는 바위 위에 앉아 바다를 바라본다. 아버지는 생계를 걱정하며 스타방에르로 떠나기를 계획했고 동생 라스는 자주 집을 뛰쳐나가곤 했다. 라스는 눈물을 흘리며 제발 혼자 있게 해달라고 외치고 하늘과 먼 바다를 바라보았다. 올리네는 그런 라스의 뒤를 밟으며 몸을 숨긴 채 가만히 서서 라스를 보았다. 화장실에 앉아 과거를 회상하는 올리네의 눈에 꿈꾸듯 몽롱한 생선의 눈알이 보인다.


“나는 라스가 하늘 같다고, 바다 같다고 생각했다. 항상 변하는 사람. 밝음에서 어둠으로, 흰색에서 칠흑 같은 검은색으로. 라스는 그런 사람이었다. 반면 나는 돌멩이와 습지 같은 사람이다.” p.411


동굴에서 석탄으로 그림을 그리던 라스

올리네를 발견한 라스가 돌을 던지고 돌은 집으로 향했다. 아버지는 집에 돌멩이가 날아들었다며 이웃들이 이제 집에 돌을 던진다며 화를 냈다. 올리네는 화를 낼 거란 걸 알면서도, 그의 향해 조심조심 발을 옮겼다. 한편 라스는 미소지으며 그녀를 동굴로 안내한다. 자신이 그림을 그리는 곳으로. 라스는 석탄과 물을 이용해 구름과 산과 나무배를 그렸고 올리네를 그린 그림도 보여주었다. 올리네가 자신과 닮지 않았다고 하자 그 그림을 바닷물 속으로 던져버렸다.


“나는 그 그림이 가끔 우울함에 빠져 있을 때의 라스를 연상시킨다고 생각했다. 거뭇거뭇하고 어두운 그림은 어둠에 빠져 있는 라스였던 것이다. 그것은 어둠이었다. 생명을 머금은 어둠,빛을 발하는 어둠이라고 해야 할까.” p.147


집으로 돌아가자 아버지가 이사를 가겠다며 지붕을 뜯어내고 갑자기 비가 쏟아진다. 어머니는 동생들을 끌어안고 밤새 울었고, 다음날 방바닥에는 물이 흥건하게 차올라 있었다. 볼일을 다 본 올리네는 일어나, 화장실 문고리에 걸어둔 생선 봉지를 들고 밖으로 나간다.


기억나지 않는 지인, 알리다의 방문

올리네는 생선을 손질해 내장을 밖에 내놓으려는데 알리다가 나타나 말을 건다. 올리네는 알리다와 오랫동안 알고 지냈지만 기억이 가물가물해 누구인지 확신할 수 없다. 라스가 나타나 알리다의 장작을 손질해주고 커피를 한 잔 얻어 마신다. 알리다는 누굴까. 동생 중 한 명과 결혼한 걸까. 하지만 쉬버트의 아내는 시그네다. 알리다와 장작을 손질하는 라스에게 가보자 라스는 소리를 지르며 장작을 내리치고 있다. 라스는 너는 죽었어, 너는 쓰레기야, 내가 너를 죽였어, 쓰레기 같은 놈! 같은 말을 외친다. 다시 요강에 앉아 있던 올리네는 문득 쉬버트에게 가봐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신은 라스를 데려갔고 이제 쉬버트도 데려가려는 것 같다. 자신의 차례도 조만간 올 것 같다.


생선을 다시 구하기 위해 밖으로 나오다

올리네의 생선 두 마리가 사라졌고, 생선을 다시 구하려 밖으로 나온다. 올리네는 작은집에 들어가 변기에 앉았다. 걸쇠 옆에는 라스가 그린 말 그림이 걸려 있다. 올리네는 그 말이, 바로 라스인 것만 같다. 라스는 자기 자신을 그린 게 아니었을까. 라스는 누구와도 말하고 않으려 했고 그와 실랑이를 하며 방문을 열었다. 문 사이로 검은 머리와 턱수염이 보였고 올리네는 라스의 눈동자가 발한 검은 빛을 본다. 아버지는 라스의 상태가 어떻든 받아들이고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담뱃갑 포장지에 그린 그림을 선물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라스가 쫓아와 올리네에게 쪽지 한 장과 그림 한 장을 건냈다. 담뱃갑 포장지의 뒷면에 그린 갈색 말 한 마리. 지금 작은집에 걸린 그 그림이다. 변기에서 일어나 바닷가로 향하는 내리막길을 걷던 중, 어부 스베인은 만나고 그는 고기를 새로 잡아주겠다며 함께 바다로 가자고 한다. 어부 스베인이 대구를 잡아 왔고 실로 생선의 눈알을 꿰어 올리네에게 건네주었다. 올리네는 발의 통증을 견디며 다시 언덕길을 오른다. 속옷이 젖었고 오줌을 참느라 힘들다.

 

The horse, Leonardo da Vinci

Part. 5 흩어진 기억의 파편 속에 빛나는 것들

동생 쉬버트를 만나러 가다

저 멀리 문 앞에 서 있던 시그네가 묻는다. “죽어가는 동생을 찾아보지 않으려는 건 아니죠?” 올리네는 집으로 가 침대에 누워 있는 쉬버트를 본다. 얼굴이 푸석푸석하고 창백하다. 올리네는 쉬버트에게 말을 걸지만, 쉬버트는 꼼짝없이 누운 채 대답하지 않았다. 시그네가 들어와 쉬버트는 이미 죽었다고,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 말한다. 쉬버트는 올리네와 대화를 나누고 싶어했는데 올리네가 너무 늦게 온 거라고 말한다. 올리네는 생선을 꼭 쥐고서 오르막길을 걷기 시작한다. 가서 생선을 손질해야 한다. 올리네는 생선을 준 어부 비에른에게 감사하면서, 동생 쉬버트에게 가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발의 통증은 여전하지만 젖먹던 힘까지 짜내 조금 더 조금 더 올라간다.

 

신이 어서 데려가주기를 바라다

앞으로, 앞으로 걸어 집으로 가던 중 작은집에 들러 문을 닫다가 별안간 정신이 아득해진다. 똥을 싸버린 것이다. 자신은 이제 똥오줌도 못 가리는 사람이 된 것이다. 올리네는 슬퍼하며 어서 신이 자신을 데려가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작은집에 걸린 아름다운 라스의 그림을 보며, 바닷가에서 뛰어오던 라스를 떠올린다. 라스는 보라색 코듀로이 양복을 입고, 화구가 든 가죽 가방을 든 채 나무배 위로 올랐다. 라스는 풍경화가가 되기 위해 독일에서 공부하고, 여름에 돌아와 그림을 보여주겠다 한다. 하지만 돌아온 라스의 눈빛은 야생적으로 변했고, 밖에 나가려 하지 않았다. 라스는 가우스타 정신 병원에 가야만 했다. 건강해지기 위해서. 집에 돌아온 뒤 라스는 사람을 만나는 것을 피했고, 보트 창고 벽에 기대 하늘만 바라보았다.

 

 

라스의 그림과 생선 눈알이 발하는 빛을 보다

올리네는 정신을 차리고 변기에 제대로 앉아 생선과 그림을 바라보았다. 올리네가 생선 눈알을 보는 동안 바깥에서 누군가 괜찮으냐고 물었다. 괜찮다고 대답해야하는데, 올리네는 생선 눈알만 바라보았다. 숨결이 차분해졌다. 갑자기 너무 피곤해졌고 온 몸이 축 늘어지면서 동시에 평온해졌다. 올리네는 생선 눈알이 열리는 것을 보았다. 생선 눈알과 라스의 그림이 빛을 발한다. 그제야 아래쪽에서 무언가 나오고, 남아 있는 것은 생선 눈알과 평온한 빛뿐이다.


“생선 눈알은 그녀의 영혼을 파고들었다. 조금의 변화도 없이 뻣뻣하기 그지없는 눈으로 보려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그 눈알은 단지 공허하게 허공을 쏘아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p.512

카카오톡 채널 채팅하기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