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에 서사 인스타에 '프랭크 버거'에 대한 글을 썼습니다.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셨습니다. 버거 앞에 흔들렸던 피자 인으로서의 정체성. 잠시 흔들렸지만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모습에서, 각자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나다움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자신들의 모습이 투영된 게 아닌가 하고 확대 해석하고 있습니다.
정체성이 흔들리는 것은 햄버거 앞에서 뿐만이 아닙니다. 이상하게도 책 이야기보다는 음식 이야기를 쓸 때, 훨씬 반응이 좋습니다. 독서 모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먹는 이야기를 하면, '표정이 살아 있다'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얼마 전에 독서 모임에서는 책 이야기 쓰지 말고 진지하게 음식에 집중하는 게 어떠냐는 권유도 들었습니다. 우리의 시간은 제한되어 있는데, 좋아하고 잘하는 것에 집중하라는 충고였죠. 이런 충고 실은 자주 듣습니다. 책보다는 음식을 더 사랑하는 것 같다. 당연하죠. 책 없어도 살 수 있지만, 음식은 없으면 우린 죽잖아요. 당연히 음식을 더 좋아합니다만 그래도 계속해서 책에 대해서 말하고 쓸 겁니다.
음식에 대해 본격적으로 쓸 기회는 언젠가는 찾아오겠죠. 그날을 기다리며, 부지런히 먹고 끊임없이 쓰겠습니다.

최혜진 작가님의 에디토리얼 씽킹을 읽었습니다. 에디팅하는 능력을 키우는 방법에 대한 책입니다. 작년(작 년)에 책을 좋아하는 분들에게 한바탕 화제가 되었던 책이죠. 읽어야지를 되뇌이다가 올 해 겨우 읽었습니다.
이 책은 정말 잘 쓰여졌습니다. 처음 접했을 때, '와~ 이런 책을 쓰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죠. 저자의 경험과 풍부한 예시가 잘 어우러졌습니다. 똑똑하고 자상한 선배가, 애정하는 후배에게 '너 이렇게 하면 나처럼 될 수 있어!' 라며 과외한 내용을 옮겨 담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말 이상했습니다. 내용도 좋고, 잘 쓰여진 책이라는 것을 알겠는데, 저는 너무 안 읽혔습니다. 머리로는 좋은 책이라고 외치는데, 진도가 너무 안 나가더군요. 초반의 몰입도가 1/3이 지나기도 전에 화악 떨어졌습니다.
이상하다, 이상하다를 되뇌이다가 읽는 방향을 바꿨습니다. 이 책은 왜 이렇게 안 읽히지 라는 것을 물어보며 읽기 시작했습니다.
한참을 고민하니, 몇 가지 답이 나오더군요.
일단은 루트 번스타인 부부가 쓴 생각의 탄생을 너무 많이 읽었습니다. '생각의 탄생'은 제 인생책 중 한 권입니다. 책을 읽고 일을 하고 생각하는 방식도 많이 바뀌었고, 책의 내용을 연습하는 노력도 많이 했습니다. 생각의 탄생과 에디토리얼 씽킹은 비슷한 방향성을 가졌습니다. 다만, 생각의 탄생이 훨씬 긴 분량이다 보니 설명도 다채롭고, 설득당할 시간이 충분합니다. 비슷한 방향성을 가진 에디토리얼 씽킹은 왜 몰입되지 않았는지 미스테리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저의 현실과는 거리감이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었습니다. 에디토리얼 씽킹에서 나오는 대로 꾸준히 실천을 한다면, 분명 좋은 글과 콘텐츠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좋은 글과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사업적으로 무슨 영향이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이 의구심의 씨앗은 '얼룩소'와 '퍼블리' 때문이었습니다. 퍼블리는 사업을 매각하고, 얼룩소는 파산을 했습니다. 퍼블리는 회사의 시스템이 콘텐츠를 통제했고, 얼룩소는 필자에게 최대한 자유도를 줬습니다. 그런데 둘 다 실패한 것이죠. 콘텐츠에 대한 취향과 판단은 서로 다를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완성도가 어느 정도 확보된 콘텐츠였습니다. 에디토리얼 씽킹의 최혜진 저자님이 활동하셨던 볼드저널과 비교해서, 콘텐츠의 결이 달랐을 뿐이지 질이 떨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콘텐츠의 질이 콘텐츠 사업의 성공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에디토리얼 씽킹을 읽으면, 에디토리얼 씽킹 능력이 향상되겠지만, 그것이 사업의 성공을 담보하지는 못합니다.
제가 에디토리얼 씽킹을 읽고, 현실에 발붙이지 못한 책 같다는 느낌은 책을 읽는 관점이 달라서였을 것입니다. 저자님은 브랜딩 프로젝트를 하고, 취재와 비평을 합니다. 발행되는 매체가 흔히들 '레거시 미디어'라고 하는 영역에 속합니다. 서사는 조금 다른 영역에 속해 있습니다. 저자의 현실과 저의 현실이 달랐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이 책을 쓴 저자의 문제의식과 달랐을 뿐입니다. 제가 한참 콘텐츠의 질을 높이기 위해 고민하고 있을 때, '에디토리얼 씽킹'을 읽었다면, '이 책 너무 좋다!'를 연발했을 수도 있습니다. 콘텐츠의 질이 좋았던 두 매체의 끝을 보면서, 콘텐츠의 질보다는 노출과 접근성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잘 쓰여졌다고 하더라도, 저에게 와닿지 않을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읽히지 않는 책이 있다면, 그대로 덮어두면 안 됩니다. 단순히 재미가 없어서 덮는 책이라면, 그래도 되겠죠. 하지만, 분명 좋은 책 같은데, 별로라고 느껴진다면, 그 이유를 집요하게 물어야 합니다.
묻고 묻고 묻다 보면, 내가 가진 시선과 작가의 시선의 차이를 아주 선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읽히지 않는 책의 가치입니다.
얼마 전에 서사 인스타에 '프랭크 버거'에 대한 글을 썼습니다.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셨습니다. 버거 앞에 흔들렸던 피자 인으로서의 정체성. 잠시 흔들렸지만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모습에서, 각자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나다움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자신들의 모습이 투영된 게 아닌가 하고 확대 해석하고 있습니다.
정체성이 흔들리는 것은 햄버거 앞에서 뿐만이 아닙니다. 이상하게도 책 이야기보다는 음식 이야기를 쓸 때, 훨씬 반응이 좋습니다. 독서 모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먹는 이야기를 하면, '표정이 살아 있다'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얼마 전에 독서 모임에서는 책 이야기 쓰지 말고 진지하게 음식에 집중하는 게 어떠냐는 권유도 들었습니다. 우리의 시간은 제한되어 있는데, 좋아하고 잘하는 것에 집중하라는 충고였죠. 이런 충고 실은 자주 듣습니다. 책보다는 음식을 더 사랑하는 것 같다. 당연하죠. 책 없어도 살 수 있지만, 음식은 없으면 우린 죽잖아요. 당연히 음식을 더 좋아합니다만 그래도 계속해서 책에 대해서 말하고 쓸 겁니다.
음식에 대해 본격적으로 쓸 기회는 언젠가는 찾아오겠죠. 그날을 기다리며, 부지런히 먹고 끊임없이 쓰겠습니다.
최혜진 작가님의 에디토리얼 씽킹을 읽었습니다. 에디팅하는 능력을 키우는 방법에 대한 책입니다. 작년(작 년)에 책을 좋아하는 분들에게 한바탕 화제가 되었던 책이죠. 읽어야지를 되뇌이다가 올 해 겨우 읽었습니다.
이 책은 정말 잘 쓰여졌습니다. 처음 접했을 때, '와~ 이런 책을 쓰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죠. 저자의 경험과 풍부한 예시가 잘 어우러졌습니다. 똑똑하고 자상한 선배가, 애정하는 후배에게 '너 이렇게 하면 나처럼 될 수 있어!' 라며 과외한 내용을 옮겨 담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말 이상했습니다. 내용도 좋고, 잘 쓰여진 책이라는 것을 알겠는데, 저는 너무 안 읽혔습니다. 머리로는 좋은 책이라고 외치는데, 진도가 너무 안 나가더군요. 초반의 몰입도가 1/3이 지나기도 전에 화악 떨어졌습니다.
이상하다, 이상하다를 되뇌이다가 읽는 방향을 바꿨습니다. 이 책은 왜 이렇게 안 읽히지 라는 것을 물어보며 읽기 시작했습니다.
한참을 고민하니, 몇 가지 답이 나오더군요.
일단은 루트 번스타인 부부가 쓴 생각의 탄생을 너무 많이 읽었습니다. '생각의 탄생'은 제 인생책 중 한 권입니다. 책을 읽고 일을 하고 생각하는 방식도 많이 바뀌었고, 책의 내용을 연습하는 노력도 많이 했습니다. 생각의 탄생과 에디토리얼 씽킹은 비슷한 방향성을 가졌습니다. 다만, 생각의 탄생이 훨씬 긴 분량이다 보니 설명도 다채롭고, 설득당할 시간이 충분합니다. 비슷한 방향성을 가진 에디토리얼 씽킹은 왜 몰입되지 않았는지 미스테리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저의 현실과는 거리감이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었습니다. 에디토리얼 씽킹에서 나오는 대로 꾸준히 실천을 한다면, 분명 좋은 글과 콘텐츠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좋은 글과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사업적으로 무슨 영향이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이 의구심의 씨앗은 '얼룩소'와 '퍼블리' 때문이었습니다. 퍼블리는 사업을 매각하고, 얼룩소는 파산을 했습니다. 퍼블리는 회사의 시스템이 콘텐츠를 통제했고, 얼룩소는 필자에게 최대한 자유도를 줬습니다. 그런데 둘 다 실패한 것이죠. 콘텐츠에 대한 취향과 판단은 서로 다를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완성도가 어느 정도 확보된 콘텐츠였습니다. 에디토리얼 씽킹의 최혜진 저자님이 활동하셨던 볼드저널과 비교해서, 콘텐츠의 결이 달랐을 뿐이지 질이 떨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콘텐츠의 질이 콘텐츠 사업의 성공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에디토리얼 씽킹을 읽으면, 에디토리얼 씽킹 능력이 향상되겠지만, 그것이 사업의 성공을 담보하지는 못합니다.
제가 에디토리얼 씽킹을 읽고, 현실에 발붙이지 못한 책 같다는 느낌은 책을 읽는 관점이 달라서였을 것입니다. 저자님은 브랜딩 프로젝트를 하고, 취재와 비평을 합니다. 발행되는 매체가 흔히들 '레거시 미디어'라고 하는 영역에 속합니다. 서사는 조금 다른 영역에 속해 있습니다. 저자의 현실과 저의 현실이 달랐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이 책을 쓴 저자의 문제의식과 달랐을 뿐입니다. 제가 한참 콘텐츠의 질을 높이기 위해 고민하고 있을 때, '에디토리얼 씽킹'을 읽었다면, '이 책 너무 좋다!'를 연발했을 수도 있습니다. 콘텐츠의 질이 좋았던 두 매체의 끝을 보면서, 콘텐츠의 질보다는 노출과 접근성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잘 쓰여졌다고 하더라도, 저에게 와닿지 않을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읽히지 않는 책이 있다면, 그대로 덮어두면 안 됩니다. 단순히 재미가 없어서 덮는 책이라면, 그래도 되겠죠. 하지만, 분명 좋은 책 같은데, 별로라고 느껴진다면, 그 이유를 집요하게 물어야 합니다.
묻고 묻고 묻다 보면, 내가 가진 시선과 작가의 시선의 차이를 아주 선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읽히지 않는 책의 가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