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짜증나는 소확행

image.png


얼마 전에 라떼를 마시며 음악을 들으며 걷는데, 행복해서 짜증이 났습니다. 

저는 소확행이 아닌 대확행을 추구하는 사람인데요. 살다보니 소확행 당해버린 거죠. 세상이 저를 소확행하도록 길들여버렸습니다. 내가 고작 소소한 것에 행복해하다니!! 자존심이 상하더군요.


소확행의 저주에서 어떻게 벗어나지 고민해봤습니다. 잠시 고민해보니, 일단 대확행과 소확행의 구분을 없애야 겠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오지도 않을 대확행을 기다리지도 않고, 자존심 상하게 소확행을 추구하지 않으려면 그냥 '확행'만 추구해야 하나라고 하다가 결국 '중확행'을 노리자는 결심이 섰습니다. 학창시절부터 주입받은 '중용의 도'와 헤겔의 '정반합'의 원리를 적용했다는 뿌듯함도 잠시, '그럼 도대체 중확행이란 무엇인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원래 가운데가 어려운 법이잖아요. 알아서 적당히 잘해달라는 것도 정말 어렵죠. '중용' 같은 것이 싫어지기도 하고요. 

중확행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다 보니, 깨달았습니다. 소확행이든 중확행이든, 그냥 행복을 버려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상에서 행복을 찾으려는 노력, 오늘 내가 얼마나 행복했는지를 돌아보는 노력이 저를 소확행의 굴레로 몰아넣었습니다. 소확행의 굴레가 아니라 소확행의 저주라고 하고 싶습니다. 자꾸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라고 가스라이팅 당한 기분이었죠. 뭘 행복을 추구합니까. 그냥 살면 되지. 

돌이켜보면, 굳이 행복을 추구하지 않고 생각 없이 살 때도 행복했습니다. 그때 행복할 수 있었던 것은 욕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행복에 대한 기대도 없고, 삶에서 딱히 목적이란 게 없었습니다. 삶의 목적이 없으면 조급함이 사라집니다. 빨리 가야지,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야지 라는 조급함이 사라지게 되죠. 행복함을 만들기 위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야겠다는 압박이 없어진다고 할까요.


최근에 제가 북노크 콘텐츠를 만들다가, '목적'이 망쳐버린 여행에 대한 글을 작업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도 다양한 책을 읽다 보니 제목이 기억이 안 나서, 에픽어스에서 '행복'으로 검색해서 겨우 찾았습니다. 병렬 독서의 폐해를 체감하게 되네요. 내용은 기억나는데 제목이 기억이 안 나니... 제가 읽었던 것은 박완서 선생님의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였고, 만들었던 북노트 '목적지가 아닌 과정 중에 느끼는 행복'이었습니다.

image.pngimage.png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에는 망친 여행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친구가 예매를 잘못해서 목적지를 안락하게 가지 못하게 되죠. 시외버스와 시내버스를 타고 여행을 다니며, 그 과정에서 목적지를 향하는 여행이 아닌 이동하는 시간들을 즐기는 여행이 됩니다.


소확행을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걸 해서 내가 행복해야겠다 라는 목적이 오히려 나를 행복하지 못하게 할 수도 있겠죠.

행복은 크기가 아니라 빈도수라고 하는데, 행복하겠다고 빈도수를 높이는 데 집착할 필요도 없습니다. 행복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그 순간을 즐겨봐야겠습니다. 


그냥 내가 해야 할 일들을 하고, 하고 싶은 일을 더하면서 지금 이 순간에 대한 판단을 하지 말아봐야겠습니다. 맛있어서 행복하다는 것이 아니라, 맛있으니 더 먹어야겠다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맛없어서 짜증난다는 것이 아니라, 맛 없지만 배고프니 더 먹어야겠다 라고 다짐하면 됩니다. 행복을 잊고 살수록, 행복에 더 가까워집니다. 아니 아직 안 해봤으니, 소심하게 가까워질 것 같다고 말하겠습니다. 

주말 동안 계속 일을 했더니, 힘드네요. 주말이 순식간에 지나갑니다. 주말에 행복했는지 물어보니, 불행한 주말이네요. 기분이 언짢아집니다. 

주말에 무얼 먹었는지 돌아봤습니다. 저도 모르게 미소가 올라옵니다. 이제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행복을 잊고 살수록, 행복에 더 가까워집니다. 


에픽어스에서 '행복'으로 검색해서 보시면, 박완서 선생님과 서인국 작가님이 말하는 행복에 대해 알 수 있습니다. 

저의 거친 행복론과는 다르니, 구독 중인 분들은 한 번 읽어보세요.

카카오톡 채널 채팅하기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