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고등학교 때 친구와 하남돼지집을 갔습니다.
그 친구를 만나면, 주로 하남돼지집을 자주 갑니다. 어딜 가나 기대한 맛이 정확하게 나오고, 고기도 구워주는 게 좋아서요.

(이렇게 나른한 표정으로, 생각 없이 먹게 됩니다.)
직원분이 고기를 구워주시면 마치 사육당하는 사람들처럼 꾸역꾸역 먹게 됩니다. 돼지를 먹으러 갔는데, 돼지가 되어서 나옵니다. 진한 먹부림이 잦아들고 나면, 나른한 돼지의 표정으로 대화를 나눕니다.
그날 친구와 했던 대화의 주제는 '도대체 언제 어른이 되는 것인가?'였습니다. 대화의 시작은 드라마 검블유에 나온 대사처럼, '우리는 왜 아직도 어른답지 못한가'였습니다.

(누구의 대사였는지는 기억이 안납니다.)
"어릴 때는요, 서른 여덟 살 정도 먹으면 완벽한 어른이 될 줄 알았어요. 모든 일에 정답을 알고 옳은 결정만 하는 그런 어른."
우리가 어린 시절에 봤던 어른들은 분명 책임감도 있고 믿음직스러웠습니다. 부모님들도 그랬죠. 갖은 풍파를 다 겪으셨을 텐데 자식들 앞에서는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신 적이 없었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면 어느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이, 자기 몫을 해내고, 믿을 만한 어른이 될 줄 알았는데... 이게 노력해서 되는 게 아니란 걸 깨달았죠. 아무리 노력해도 부모님같은, 혹은 내가 생각한 어른은 될 수 없다는 게 점점 더 확실해져 갑니다.
이 나이가 되면 진즉 어른이 되어 있어야 하는데, 아직 어른이 되지 못했습니다. 되게 열심히 산 것 같지만 아직 뭐하나 제대로 해놓은 것도 없는 것 같고 제대로 할 수 있는 건 없는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나는 여전히 미숙한데, 성숙한 역할을 해내야 하는 데서 오는 불안함이 항상 깔려있습니다. 한참을 친구와 '도대체 어른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대화의 주제는 우울했지만, 돼지가 맛있으니 분위기는 밝았습니다. 입으로는 불안하다고 하지만, 아주 행복한 표정으로 볶음밥까지 야무지게 꾸역꾸역 먹었죠. 혼자 돌아오는 길에 '나는 왜 어릅답지 못한가'를 다시 생각해봤습니다.
생각해보니, 우리가 어른답지 못한 어른인 것은 당연합니다. 과거의 어른들은 사회의 변화가 적었습니다. 농업이 중심인 사회에서는 변화가 적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농사를 지었다면, 어른들의 경험과 지혜는 모든 일을 예측 가능 했겠죠. 모두가 나이가 많은 어른들의 경험과 지혜를 의지하기 충분했습니다.
산업화 시대에 들어가면, 변화가 빠르지만 지금보다는 예측 가능한 일이 많았을 것입니다. 고도성장이 계속되는 시기에는 사회와 함께 나도 성장합니다. 정해진 연차에 승진하고, 월급도 올랐겠죠. 재테크도 심플합니다. 저축만해도 충분한 시기라면 미래에 대한 예측과 대비는 적어도 되겠죠. 변화의 속도는 예측할 수 없어도, 변화의 방향만큼은 예측할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변화의 속도와 방향을 모두 예측할 수 없는 시대입니다. 2019년 여름에 내 년에 전염병이 돌아서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산다고 하면 누가 믿었겠습니까. 주기적으로 터지는 금융위기는 누구도 예상을 못합니다. 기술의 발전도 그렇죠. AI만 하더라도 작년과 올해가 다릅니다. 저만 해도 일을 할 때 AI를 활용하는 비율이 달라졌습니다. 재테크도 마찬가지죠. 비트 코인 가격은 예측할 수 없고, 엔비디아는 그렇게 오를거라 누가 예상했겠습니까. 누구나 예측은 할 수 있지만, 그 누구의 예측도 맞지 않은 시대를 저희는 살고 있습니다.
과거와 달리 예측하기 힘든 사회를 살면서, 여전히 우리는 스스로에게 예측가능한 시대의 어른의 모습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내가 어른답지 못한 것은 시대를 탓하기로 했습니다. 아주 마음이 편해지더군요. 저에게는 '왜 어른답지 못할까'를 고민할 게 아니라, '이 시대의 맞는 어른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게 맞아보였습니다.
이 시대의 어른이란...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멋들어진 정의가 나오면 좋겠지만, 거기까지는 답이 안나오더군요.
그냥 저혼자 궁색한 정의를 내렸습니다. 이 시대의 어른은 불안하고 쫄리는 맘으로, 삼겹살을 구워먹고, 그 다음 날 아침에는 전날 삼킨 육즙의 힘으로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힘내서 한 발자국 내딛으며 살면 '충분히 어른'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예측할 수 없는 시대에는, 시대와 함께 흔들리면 됩니다. 내가 뭐라고, 예전처럼 멋진 어른의 모습으로 굳건히 서있겠습니까.
내가 어른답지 못하다고 느끼신다면, 저녁에 삼겹살을 먹고 다음날 아침 힘차게 출근하면 됩니다. 그것이 이 시대의 '어른의 길'이라고 믿습니다.

임경선 작가님의 '나 자신으로 살아가기'를 읽으면, '이 시대의 어른의 삶'에 대해 고민해보기 좋습니다. 작가님은 나답게 나이 들기 위한 조건으로 'ageless'라는 표현을 씁니다. 나이(age)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에서 벗어나서, '나다운 삶'을 정의하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고등학교 때 친구와 하남돼지집을 갔습니다.
그 친구를 만나면, 주로 하남돼지집을 자주 갑니다. 어딜 가나 기대한 맛이 정확하게 나오고, 고기도 구워주는 게 좋아서요.
(이렇게 나른한 표정으로, 생각 없이 먹게 됩니다.)
직원분이 고기를 구워주시면 마치 사육당하는 사람들처럼 꾸역꾸역 먹게 됩니다. 돼지를 먹으러 갔는데, 돼지가 되어서 나옵니다. 진한 먹부림이 잦아들고 나면, 나른한 돼지의 표정으로 대화를 나눕니다.
그날 친구와 했던 대화의 주제는 '도대체 언제 어른이 되는 것인가?'였습니다. 대화의 시작은 드라마 검블유에 나온 대사처럼, '우리는 왜 아직도 어른답지 못한가'였습니다.
(누구의 대사였는지는 기억이 안납니다.)
"어릴 때는요, 서른 여덟 살 정도 먹으면 완벽한 어른이 될 줄 알았어요. 모든 일에 정답을 알고 옳은 결정만 하는 그런 어른."
우리가 어린 시절에 봤던 어른들은 분명 책임감도 있고 믿음직스러웠습니다. 부모님들도 그랬죠. 갖은 풍파를 다 겪으셨을 텐데 자식들 앞에서는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신 적이 없었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면 어느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이, 자기 몫을 해내고, 믿을 만한 어른이 될 줄 알았는데... 이게 노력해서 되는 게 아니란 걸 깨달았죠. 아무리 노력해도 부모님같은, 혹은 내가 생각한 어른은 될 수 없다는 게 점점 더 확실해져 갑니다.
이 나이가 되면 진즉 어른이 되어 있어야 하는데, 아직 어른이 되지 못했습니다. 되게 열심히 산 것 같지만 아직 뭐하나 제대로 해놓은 것도 없는 것 같고 제대로 할 수 있는 건 없는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나는 여전히 미숙한데, 성숙한 역할을 해내야 하는 데서 오는 불안함이 항상 깔려있습니다. 한참을 친구와 '도대체 어른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대화의 주제는 우울했지만, 돼지가 맛있으니 분위기는 밝았습니다. 입으로는 불안하다고 하지만, 아주 행복한 표정으로 볶음밥까지 야무지게 꾸역꾸역 먹었죠. 혼자 돌아오는 길에 '나는 왜 어릅답지 못한가'를 다시 생각해봤습니다.
생각해보니, 우리가 어른답지 못한 어른인 것은 당연합니다. 과거의 어른들은 사회의 변화가 적었습니다. 농업이 중심인 사회에서는 변화가 적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농사를 지었다면, 어른들의 경험과 지혜는 모든 일을 예측 가능 했겠죠. 모두가 나이가 많은 어른들의 경험과 지혜를 의지하기 충분했습니다.
산업화 시대에 들어가면, 변화가 빠르지만 지금보다는 예측 가능한 일이 많았을 것입니다. 고도성장이 계속되는 시기에는 사회와 함께 나도 성장합니다. 정해진 연차에 승진하고, 월급도 올랐겠죠. 재테크도 심플합니다. 저축만해도 충분한 시기라면 미래에 대한 예측과 대비는 적어도 되겠죠. 변화의 속도는 예측할 수 없어도, 변화의 방향만큼은 예측할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변화의 속도와 방향을 모두 예측할 수 없는 시대입니다. 2019년 여름에 내 년에 전염병이 돌아서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산다고 하면 누가 믿었겠습니까. 주기적으로 터지는 금융위기는 누구도 예상을 못합니다. 기술의 발전도 그렇죠. AI만 하더라도 작년과 올해가 다릅니다. 저만 해도 일을 할 때 AI를 활용하는 비율이 달라졌습니다. 재테크도 마찬가지죠. 비트 코인 가격은 예측할 수 없고, 엔비디아는 그렇게 오를거라 누가 예상했겠습니까. 누구나 예측은 할 수 있지만, 그 누구의 예측도 맞지 않은 시대를 저희는 살고 있습니다.
과거와 달리 예측하기 힘든 사회를 살면서, 여전히 우리는 스스로에게 예측가능한 시대의 어른의 모습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내가 어른답지 못한 것은 시대를 탓하기로 했습니다. 아주 마음이 편해지더군요. 저에게는 '왜 어른답지 못할까'를 고민할 게 아니라, '이 시대의 맞는 어른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게 맞아보였습니다.
이 시대의 어른이란...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멋들어진 정의가 나오면 좋겠지만, 거기까지는 답이 안나오더군요.
그냥 저혼자 궁색한 정의를 내렸습니다. 이 시대의 어른은 불안하고 쫄리는 맘으로, 삼겹살을 구워먹고, 그 다음 날 아침에는 전날 삼킨 육즙의 힘으로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힘내서 한 발자국 내딛으며 살면 '충분히 어른'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예측할 수 없는 시대에는, 시대와 함께 흔들리면 됩니다. 내가 뭐라고, 예전처럼 멋진 어른의 모습으로 굳건히 서있겠습니까.
내가 어른답지 못하다고 느끼신다면, 저녁에 삼겹살을 먹고 다음날 아침 힘차게 출근하면 됩니다. 그것이 이 시대의 '어른의 길'이라고 믿습니다.
임경선 작가님의 '나 자신으로 살아가기'를 읽으면, '이 시대의 어른의 삶'에 대해 고민해보기 좋습니다. 작가님은 나답게 나이 들기 위한 조건으로 'ageless'라는 표현을 씁니다. 나이(age)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에서 벗어나서, '나다운 삶'을 정의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