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오노 나나미 | 체사레 보르자 혹은 우아한 냉혹
우아하지만, 냉혹하게
정도성 서사 라이브러리 대표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책 중 하나이자, 역사상 가장 극단적으로 평가가 엇갈리는 책 중 하나인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군주론>이 출간됐을 당시엔 정치, 종교, 도덕을 분리시키려 한 시도로 ‘악마의 사상’이라 비난 받으며 교황청 금서로 지정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군주론>이 쓰여진 시대상황을 이해한다면, 현대의 우리에게 통찰을 주는 책이기도 합니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집필할 당시 이탈리아는 크고 작은 여러 개의 나라로 분열돼 있었습니다. 그리고 강대국이었던 프랑스는 이탈리아를 호시탐탐 노렸죠. 베네치아를 제외하고는 정치가 안정되지 않고, 정치체제나 지도자가 빈번하게 바뀌던 이탈리아. 특히 마키아벨리가 거주했던 도시 피렌체는 사보나롤라라고 하는 수도사가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고, 교황이 바뀔 때마다 크고 작은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권을 잡은 메디치 가문 역시 프랑스처럼 안정적으로 권력을 세습받은 군주가 아니었습니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헌사했던 로렌초 데 메디치는 라이벌가문이었던 파치가에 의해 암살당할 뻔한 일도 있었습니다.
<군주론>은 정권의 권위가 확립된 군주를 위한 책이 아니라, 혼란스러운 시기의 신생 군주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혼돈의 시기에 군주는 무엇보다도 권력에 대한 의지와 야심, 용기가 있어야 하며, 필요하다면 불성실, 몰인정, 잔인해도 무방하고 종교까지 이용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혼란한 정국 속에서 새로운 정권을 수립하는 강력한 군주의 모습은 마키아벨리가 상상으로 그려낸 것이 아닙니다. 마키아벨리는 혼란스러운 이탈리아를 통일할 만한 능력을 가진 군주를 만났고, 그를 통해 <군주론>의 영감을 받았습니다. 바로 교황이었던 알렉산데르 6세의 아들이자, 교황군의 총사령관이었던 ‘체사레 보르자’입니다.
마키아벨리는 1502년 10월부터 약 4개월 간, 피렌체의 외교관으로써 체사레 보르자의 군영에 함께 머물며, 체사레 보르자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보게 됩니다. 당시 체사레 보르자의 용병대장들은 이탈리아 로마냐 지방에서, 체사레 보르자를 배신하고 반란을 일으킵니다.
로마냐 지방의 지배권이 흔들릴 수 있는 정치적, 군사적 위기를, 체사레 보르자는 우아할정도록 능숙하지만, 냉혹한 방식으로 진압을 합니다. 자신을 따르던 용병대장들이 반란을 일으켰기에, 군사력이 열세였던 체사레 보르자는 반란을 외교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아니,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교황청과 강대국이었던 프랑스의 중재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노력을 보여주면서, 은밀하게 군대를 모읍니다. 스페인 출신의 새로운 용병대장과 스위스 용병들을 통해 충분한 군사력을 확보하는 동시에, 외교력을 발휘해 강대국이었던 프랑스가 체사레 보르자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도록 만듭니다.
반란을 일으킨 용병대장들이 당황할 때쯤, 체사레 보르자는 군대를 움직여 반란군을 섬멸하는 것이 아니라 화해의 메세지를 보냅니다. 다시 자신에게 충성할 것을 요청하고 그들에 대한 사면을 선포하면서 말이죠. 용병대장들과 체사레 보르자가 다시 만났을 때, 체사레 보르자는 눈물을 흘리며, 그들을 얼싸 안습니다. 치열한 전투를 통해 피를 흘리지 않고, 군사력의 소모도 없이, 외교력과 군사적 우위를 바탕으로 능숙하게 위기를 벗어난 체사레 보르자. 모두가 로마냐 지방을 뒤흔들었던 마조네의 난이 평화롭게 종결되는 것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 해 연말, 체사레 보르자는 다시 하나된 기념으로 축하연을 열고, 용병대장들을 세르갈리아 지방의 성으로 초대합니다. 그리고, 위기 극복을 넘어 위기의 싹을 제거하기 위해 초대한 용병대장들을 모두 죽여버립니다.
군사적인 반란을 진압한 후에는, 반란이 일어났던 지역의 민심을 달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시는 반란이 발생하지 않도록 말이죠. 체사레 보르자는 반란이 일어났던 로마냐 지방의 민심을 장악하기 위해, 레미레 데 오르코(Remirro de Orco)를 총독으로 파견합니다. 하지만 그는 능력은 뛰어났지만, 잔혹한 성격으로 민심을 얻기에 부적합한 인물이었습니다.
체사레 보르자는 로마냐의 민심을 얻기 위해서, 백성을 위한 정치를 펼칠 수 있는 총독을 보낸 것이 아니라, 잔혹한 총독을 보낸 겁니다. 레미레 데 오르코는 체사레 보르자의 기대대로 잔혹한 통치를 펼치며, 로마냐 지역 주민들의 원성을 사게 됩니다. 로마냐 주민들의 원망이 점점 커지고 있을 때, 체사레 보르자는 그동안의 실정의 책임을 물으며, 레미레 데 오르코를 반토막 내서 죽여버립니다. 그리고 그 시신을 광장에 전시했습니다. 포학하고 가혹한 정치를 펼친 총독을 반토막냄으로써, 체사레 보르자는 로마냐 지방의 구원자가 되며, 민심을 얻게 되었습니다.
체사레 보르자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로마냐 지방의 반란을 진압하고, 지배권과 민심을 얻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이 목적을 달성하는 데 있어, 선과 악이라는 가치 판단은 전혀 없었습니다. 반란의 싹을 없애기 위해 용병대장들의 믿음을 저버리는 것도, 자신이 임명한 총독을 함정에 빠뜨리고, 그를 죽임으로써 민심을 얻을 때도,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마조네의 난을 통해 본 체사레 보르자는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통해 새롭게 통치권을 장악한 군주가 행동해야 할 원칙에 정확하게 부합니다.
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것.
폭력을 쓰든 기만을 하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승리할 것.
백성들이 자기를 사랑하면서도 두려워하도록 만들 것.
자기를 해칠 수 있는 힘을 가졌거나 그럴 만한 이유를 가진 사람들을 숙청할 것.
가혹하고 인자할 것.
왕이 군주들이 자기에게 기꺼이 호의를 보이고 감히 해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도록 그들과 우호를 맺을 것.
마키아벨리는 이런 기준에서 체사레 보르자보다 훌륭한 사람은 없다고 평가 합니다.
마키아벨리의 이탈리아는 안정된 분위기에서 선정을 베풀수 있었던 세종의 시대보다는 새로운 왕조를 세우고 안정화시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태종’과 같은 군주가 어울리던 시기였던 것입니다.
평화로운 시기에 나라를 발전시켜야 하는 수성의 리더십이 아닌, 혼란스러운 시기를 종결시켜야 하는 창업의 리더십의 관점에서, <군주론>은 극도의 합리주의적 통치관념이라 볼 수 있습니다. 20세기 대표적인 지식인 버트런드 러셀 역시 <군주론>에서 주장하는 것은 부도덕한 것이 아니라, 권력을 갖고 싶다면 냉철해져야 하는 것이고, 그것이 선인지 악인지는 다른 문제가 되는 것이라 말합니다.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는 그녀의 에세이에서 cattivèria(칵테베리아/악의)라는 단어를 소개합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악의’ 가 됩니다. 그렇지만, 이탈리아어에서는 좀더 복잡한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합니다. 감성, 기술, 열정, 재능을 포괄하며 불가능을 가능한 것으로 바꾸는 집요한 의지 정도로 해석됩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을 통해 새로운 국가의 리더가 어떻게 칵테베리아를 발휘할 수 있는 지를 설명했습니다. 칵테베리아가 누군가에겐 악의로, 누군가에겐 불가능을 가능한 것으로 바꾸는 집요함으로 와닿듯, <군주론> 역시 어떤 관점으로 바라볼 것인가는 보는 이에게 달려있습니다.
시오노 나나미 | 체사레 보르자 혹은 우아한 냉혹
우아하지만, 냉혹하게
정도성 서사 라이브러리 대표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책 중 하나이자, 역사상 가장 극단적으로 평가가 엇갈리는 책 중 하나인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군주론>이 출간됐을 당시엔 정치, 종교, 도덕을 분리시키려 한 시도로 ‘악마의 사상’이라 비난 받으며 교황청 금서로 지정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군주론>이 쓰여진 시대상황을 이해한다면, 현대의 우리에게 통찰을 주는 책이기도 합니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집필할 당시 이탈리아는 크고 작은 여러 개의 나라로 분열돼 있었습니다. 그리고 강대국이었던 프랑스는 이탈리아를 호시탐탐 노렸죠. 베네치아를 제외하고는 정치가 안정되지 않고, 정치체제나 지도자가 빈번하게 바뀌던 이탈리아. 특히 마키아벨리가 거주했던 도시 피렌체는 사보나롤라라고 하는 수도사가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고, 교황이 바뀔 때마다 크고 작은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권을 잡은 메디치 가문 역시 프랑스처럼 안정적으로 권력을 세습받은 군주가 아니었습니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헌사했던 로렌초 데 메디치는 라이벌가문이었던 파치가에 의해 암살당할 뻔한 일도 있었습니다.
<군주론>은 정권의 권위가 확립된 군주를 위한 책이 아니라, 혼란스러운 시기의 신생 군주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혼돈의 시기에 군주는 무엇보다도 권력에 대한 의지와 야심, 용기가 있어야 하며, 필요하다면 불성실, 몰인정, 잔인해도 무방하고 종교까지 이용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혼란한 정국 속에서 새로운 정권을 수립하는 강력한 군주의 모습은 마키아벨리가 상상으로 그려낸 것이 아닙니다. 마키아벨리는 혼란스러운 이탈리아를 통일할 만한 능력을 가진 군주를 만났고, 그를 통해 <군주론>의 영감을 받았습니다. 바로 교황이었던 알렉산데르 6세의 아들이자, 교황군의 총사령관이었던 ‘체사레 보르자’입니다.
마키아벨리는 1502년 10월부터 약 4개월 간, 피렌체의 외교관으로써 체사레 보르자의 군영에 함께 머물며, 체사레 보르자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보게 됩니다. 당시 체사레 보르자의 용병대장들은 이탈리아 로마냐 지방에서, 체사레 보르자를 배신하고 반란을 일으킵니다.
로마냐 지방의 지배권이 흔들릴 수 있는 정치적, 군사적 위기를, 체사레 보르자는 우아할정도록 능숙하지만, 냉혹한 방식으로 진압을 합니다. 자신을 따르던 용병대장들이 반란을 일으켰기에, 군사력이 열세였던 체사레 보르자는 반란을 외교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아니,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교황청과 강대국이었던 프랑스의 중재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노력을 보여주면서, 은밀하게 군대를 모읍니다. 스페인 출신의 새로운 용병대장과 스위스 용병들을 통해 충분한 군사력을 확보하는 동시에, 외교력을 발휘해 강대국이었던 프랑스가 체사레 보르자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도록 만듭니다.
반란을 일으킨 용병대장들이 당황할 때쯤, 체사레 보르자는 군대를 움직여 반란군을 섬멸하는 것이 아니라 화해의 메세지를 보냅니다. 다시 자신에게 충성할 것을 요청하고 그들에 대한 사면을 선포하면서 말이죠. 용병대장들과 체사레 보르자가 다시 만났을 때, 체사레 보르자는 눈물을 흘리며, 그들을 얼싸 안습니다. 치열한 전투를 통해 피를 흘리지 않고, 군사력의 소모도 없이, 외교력과 군사적 우위를 바탕으로 능숙하게 위기를 벗어난 체사레 보르자. 모두가 로마냐 지방을 뒤흔들었던 마조네의 난이 평화롭게 종결되는 것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 해 연말, 체사레 보르자는 다시 하나된 기념으로 축하연을 열고, 용병대장들을 세르갈리아 지방의 성으로 초대합니다. 그리고, 위기 극복을 넘어 위기의 싹을 제거하기 위해 초대한 용병대장들을 모두 죽여버립니다.
군사적인 반란을 진압한 후에는, 반란이 일어났던 지역의 민심을 달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시는 반란이 발생하지 않도록 말이죠. 체사레 보르자는 반란이 일어났던 로마냐 지방의 민심을 장악하기 위해, 레미레 데 오르코(Remirro de Orco)를 총독으로 파견합니다. 하지만 그는 능력은 뛰어났지만, 잔혹한 성격으로 민심을 얻기에 부적합한 인물이었습니다.
체사레 보르자는 로마냐의 민심을 얻기 위해서, 백성을 위한 정치를 펼칠 수 있는 총독을 보낸 것이 아니라, 잔혹한 총독을 보낸 겁니다. 레미레 데 오르코는 체사레 보르자의 기대대로 잔혹한 통치를 펼치며, 로마냐 지역 주민들의 원성을 사게 됩니다. 로마냐 주민들의 원망이 점점 커지고 있을 때, 체사레 보르자는 그동안의 실정의 책임을 물으며, 레미레 데 오르코를 반토막 내서 죽여버립니다. 그리고 그 시신을 광장에 전시했습니다. 포학하고 가혹한 정치를 펼친 총독을 반토막냄으로써, 체사레 보르자는 로마냐 지방의 구원자가 되며, 민심을 얻게 되었습니다.
체사레 보르자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로마냐 지방의 반란을 진압하고, 지배권과 민심을 얻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이 목적을 달성하는 데 있어, 선과 악이라는 가치 판단은 전혀 없었습니다. 반란의 싹을 없애기 위해 용병대장들의 믿음을 저버리는 것도, 자신이 임명한 총독을 함정에 빠뜨리고, 그를 죽임으로써 민심을 얻을 때도,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마조네의 난을 통해 본 체사레 보르자는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통해 새롭게 통치권을 장악한 군주가 행동해야 할 원칙에 정확하게 부합니다.
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것.
폭력을 쓰든 기만을 하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승리할 것.
백성들이 자기를 사랑하면서도 두려워하도록 만들 것.
자기를 해칠 수 있는 힘을 가졌거나 그럴 만한 이유를 가진 사람들을 숙청할 것.
가혹하고 인자할 것.
왕이 군주들이 자기에게 기꺼이 호의를 보이고 감히 해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도록 그들과 우호를 맺을 것.
마키아벨리는 이런 기준에서 체사레 보르자보다 훌륭한 사람은 없다고 평가 합니다.
마키아벨리의 이탈리아는 안정된 분위기에서 선정을 베풀수 있었던 세종의 시대보다는 새로운 왕조를 세우고 안정화시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태종’과 같은 군주가 어울리던 시기였던 것입니다.
평화로운 시기에 나라를 발전시켜야 하는 수성의 리더십이 아닌, 혼란스러운 시기를 종결시켜야 하는 창업의 리더십의 관점에서, <군주론>은 극도의 합리주의적 통치관념이라 볼 수 있습니다. 20세기 대표적인 지식인 버트런드 러셀 역시 <군주론>에서 주장하는 것은 부도덕한 것이 아니라, 권력을 갖고 싶다면 냉철해져야 하는 것이고, 그것이 선인지 악인지는 다른 문제가 되는 것이라 말합니다.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는 그녀의 에세이에서 cattivèria(칵테베리아/악의)라는 단어를 소개합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악의’ 가 됩니다. 그렇지만, 이탈리아어에서는 좀더 복잡한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합니다. 감성, 기술, 열정, 재능을 포괄하며 불가능을 가능한 것으로 바꾸는 집요한 의지 정도로 해석됩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을 통해 새로운 국가의 리더가 어떻게 칵테베리아를 발휘할 수 있는 지를 설명했습니다. 칵테베리아가 누군가에겐 악의로, 누군가에겐 불가능을 가능한 것으로 바꾸는 집요함으로 와닿듯, <군주론> 역시 어떤 관점으로 바라볼 것인가는 보는 이에게 달려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