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승욱

[행동경제학 2편] 로빈후드의 코는 길어지지 않는다

이런 시선으로 읽었어요


타인을 배려하는 부정행위는 해도 마음이 편하다. 오히려 선의의 부정행위를 거부했을 때, 사람들은 거짓말 탐지기 앞에서 주눅든다. 왜 이런 윤리 부조화가 일어나는 걸까?


진실도 때로는 우리를 다치게 할 때가 있다.

하지만 그것은 머지않아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가벼운 상처이다.

앙드레 지드

타인을 배려하는 부정행위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는 새로 이사 온 이웃이 정성 들여 만든 맛없는 음식에 “맛없다”고 솔직하게 말하지 않는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의 주름진 얼굴을 보고 “세월은 혼자 드셨나요?”라는 정직한 팩트 폭행을 할 사람은 흔치 않다. 아무리 맛이 없어도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 보여도 “여전하시네요.” “시간을 거스르시네요.”라고 인사하기 마련이다.



죄책감 없는 거짓말


타인의 감정에 상처를 입히지 않기 위해 선의의 거짓말을 한다. 이런 거짓말은 해도 마음이 편하다. 부정행위 과정에서 ‘정당화’를 하는 것이다. 자아개념유지이론에 따르면 사람들은 긍정적인 자아상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도덕성과 정직성을 훌륭한 사람의 기준으로 사용한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부정행위를 통해 개인적인 이득을 얻으려는 유혹에 취약하다. 이 둘의 충돌은 심리적 고통을 일으킨다. 이러한 고통을 줄이기 위해 긍정적인 자아상을 유지하면서 부정행위를 정당화하는 갈등 완화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정당화. 부도덕한 행위의 심리적 비용을 감소시키는 효과적인 변명이다. 정당화는 우리의 잘못된 행동으로 인한 정신적, 신체적 고통을 해결함으로써 윤리 부조화를 완화시킨다.


이기적 부정행위는 심리적 고통이 따르지만, 이타적 정당화가 이루어질 때 고통은 감소한다.


부정행위와 이타적 정당화가 결합하면 죄책감을 덜 느낄 뿐만 아니라 정신생리학적 고통도 덜해 거짓말 탐지기 테스트를 통과할 가능성이 높다는 가설을 세우고 이를 두 개의 실험으로 검증하기로 한다.


첫 번째 실험에는 60명의 대학생이 참여했다. 약 10~15분 동안 컴퓨터에서 진행되는 과제를 수행했다. 수직선으로 가운데가 나누어진 정사각형에 25개의 빨간색 점이 나타난다. 점은 수직선의 왼쪽과 오른쪽에 겹치지 않고 2초 동안 보였다가 사라진다. 왼쪽과 오른쪽 중 어디에 더 점이 많았는지 선택하게 한다.


과제에 대한 보상은 정확성에 상관없이 정사각형의 오른쪽에 더 많은 점이 있다고 하면 10센트, 왼쪽에 더 많은 점이 있다고 하면 1센트를 받는다. 이때 정직한 응답과 거짓말을 통한 이익 극대화 사이에 충돌이 발생하여, 실제로 왼쪽에 더 많은 점이 보였는데 보상 때문에 오른쪽에 더 많이 나타났다고 응답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부정행위를 저지르는 것이다.



로빈후드가 된 피노키오


이 실험에 하나의 상황을 더 추가해보자. 과제를 수행하기 전 미리 지정된 비영리 단체 목록 중에서 가장 기부하고 싶은 호감 단체, 가장 기부하고 싶지 않은 비호감 단체, 좋지도 싫지도 않은 무관심 단체를 선택하게 한다. 과제 수행을 통해 얻은 수익은 3개의 단체 중 1개 단체에 기부될 것이다.


호감 단체에 기부된다고 했을 때 하는 거짓 응답, 비호감 단체에 되도록 적은 수익이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 하는 거짓 응답을 측정해 보았다. 참가자들은 호감 단체와 무관심한 단체 중 호감 단체에 더 많은 수익이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 왼쪽이 정답인 경우에도 오른쪽이라는 거짓 답변을 거침없이 했다.


거짓 답변 빈도는 호감 단체에 기부될 때가 무관심 단체 기부될 때보다 2배 이상 높았다. 비호감 단체에 대한 보복적 부정행위도 일어났다. 잘못된 선택을 해 비호감 단체에게 의도적으로 더 적은 수익을 기부하는 쪽을 선택했다.


부정행위가 정당화될 수 있는 상황에서 부정행위 발생 빈도는 그렇지 않은 상황보다 훨씬 높았다. 110명의 대학생이 참여한 두 번째 실험. 조건은 셋으로 나뉜다. 이기적. 이타적. 부분 이타적. 참가자는 세 가지 조건 중 하나에 무작위로 할당되어 첫 번째 실험에서 주어졌던 똑같은 과제를 수행했다.


이기적 조건에서 참가자들은 온전히 자신의 이익이 극대화되도록 과제를 수행했고, 이타적 조건에서는 자신이 가장 기부하고 싶은 자선단체를 위해 과제를 수행했다. 마지막으로 부분 이타적 조건에서는 과제수행 결과로 얻은 수익은 참가자와 호감 자선단체 간 균등하게 분배되었다. 각 조건의 과제를 완료한 후 참가자들은 거짓말 탐지기로 부정행위 여부에 대한 테스트를 받았다.


선의의 거짓말을 했을 때 거짓말 탐지기는 어떻게 반응할까


과제 수행 후 신체 변화와 부정행위 사이의 관계를 측정했다. 자신의 이익을 늘리기 위해 거짓말을 많이 한 참가자는 신체 변화가 심했다. 이에 반해 호감 단체에 더 많은 기부를 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 이타적 조건의 참가자는 오히려 거짓말을 자주 할수록 신체 변화가 줄어 부정행위 탐지 가능성을 줄였다.


부분 이타적 조건에서는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발견되지 않았다. 타인을 이롭게 하는 상황이 거짓말과 같은 부정행위에 대한 강력한 정당성을 부여하여 부정행위를 부추길 수 있다. 정당화된 부정행위는 부정행위 시 흔히 발생하는 신체 변화를 동반하지 않아 거짓말 탐지기에 탐지될 가능성을 현저히 낮춘다.


만약 로빈 후드가 피노키오 코를 단 채 거짓말 탐지기 테스트를 받았다면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 합리화했을 것이고 가볍게 통과했을 것이다. 코도 길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로빈 후드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거나 사익을 위해 정당화를 의도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사람에겐 거짓말 탐지기 결과의 신뢰성과 타당성이 크게 저하되기 때문에 특별한 주의와 경계가 필요하다. 특히 후자의 경우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발전을 저해하는 해악의 원흉이다.


정당하지 못한 정당화를 일삼는 사람, 조직, 시스템을 주의하자. 사회는 우리에게 타인을 도울 수 있는 상황에서는 돕는 선택을 해야 한다 요구한다. 이는 두 번째 실험의 이타적인 조건 하에서 타인을 이롭게 하는 부정행위를 거부하는 정직한 사람이 오히려 거짓말 탐지기 앞에서 주눅 들고 긴장하는 신체 변화를 보이는 현상을 만들었다.


이타주의와 같은 긍정적 규범을 장려하는 것은 어느 사회에나 중요하지만, 이러한 규범을 맹목적으로 쫓다 보면 다른 도덕적 가치와의 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진실을 말하는 것은 부정직한 것보다 더 큰 심리적 피해나 육체적 불편을 초래할 수 있다.


선의의 거짓말이 사회적 규범이 된 데는 우리의 윤리 부조화가 일등 공신이다.

써먹을 포인트


  • 우리는 긍정적인 자아상을 유지하고자 노력하고, 부정행위(거짓말)를 할 때 심리적 고통을 겪습니다. 그러나 그 부정행위에 선의가 담겨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심리적 고통은 사라지고, 정당화가 일어나 선뜻 거짓말을 하게되죠.
  • 일상 생활에서 상대의 기분을 맞춰주는 거짓말은 관계를 돈독하게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정당하지 못한 상황에서 인간은 정당화를 일삼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잊지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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