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경

이상한 정상가족

인문

<blockquote class="quotation_blockquote">
나는 선량한 많은 이들이 정상과 비정상 사이의 금을 매우 쉽게 긋는다는 걸 깨달았다.&nbsp;
이상한 정상가족 / 19p
</blockquote>
&nbsp;
아파트나 자동차 광고에 나오는 가족은 한결 같다. 세련되고 우아한 이미지의 중년 남녀와 예쁘고 귀여운 아이들이 그 주인공이다. 현실에는 수많은 가족의 형태가 있음에도, 부부와 그들의 자녀로 구성된 가족만이 등장하는 광고는 사회의 지향을 반영한다.
&nbsp;
<img src="https://d2w3kyicixnbmm.cloudfront.net/episode/KF71HWPMTJRFSZGYwRMSG6W2N9kLshOkoDDzeyQj.jpg?q=20&amp;f=webp" alt="">
&nbsp;
&lt;이상한 정상가족&gt;은 폭력에 내몰린 아이들의 모습을 통해, 한국사회의 현주소를 진단하는 책이다. 저자 김희경은 '가족 내에서 가장 취약한 사람인 아이를 중심에 놓고 한국 사회의 가족주의가 불러오는 세상의 문제들을 바라보고자 이 책을 썼다'고 집필 의도를 설명한다.
&nbsp;
그녀는 아이들에 대한 억압과 폭력의 가장 큰 원인으로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꼽는다.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는 결혼 제도 안에서 부모와 자녀로 이뤄진 핵가족을 이상적 가족의 형태로 간주하는 사회 및 문화적 구조와 사고방식을 일컫는다. 이를 벗어난 형태는 비정상으로 간주된다.&nbsp;
&nbsp;
<figure class="image"><img src="https://d2w3kyicixnbmm.cloudfront.net/episode/4YY41ljrPmGLYm60XxMBe6la5X8OW12ZGtiP90rW.jpg?q=20&amp;f=webp" alt="">
<figcaption>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lt;어느 가족&gt;. 가족의 의미를 묻는 이 영화는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으며 세계인들에게 가족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했다.</figcaption>
</figure>
&nbsp;
그렇다고 정상가족이 행복할 수 있는 구조도 아니다. 정상성에 대한 지나친 강조는 억압의 빌미가 된다.
&nbsp;
<hr class="title_dash">
한국인에게 가족이란?&nbsp;
&nbsp;
한국에서의 가족주의는 왜 이리도 뿌리 깊을까? 보통은 사회가 근대화되면 가족이나 집단에 대한 의존도가 줄어들고 개인화도 같이 진행되는데, 한국은 여전히 가족주의의 영향력이 뿌리 깊다.
&nbsp;
저자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진행된 한국의 근대화 속도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서구에서 길게는 400년에 걸쳐 진행된 근현대화가 한국에서는 단 50여년만에 진행됐다. 한국은 빠른 성장에만 집중했고, 사회 안전망 정비에는 신경을 쓰지 못했다.
&nbsp;
<figure class="image"><img src="https://d2w3kyicixnbmm.cloudfront.net/episode/fY8f0KlpcyKwP4naNwJSGwU3NWcQ3xQ4cBGpRxJS.jpg?q=20&amp;f=webp" alt="">
<figcaption>한국의 근대화는 개인보다는 사회의 빠른 성장에 집중하여 이루어졌고, 그 속에서 가족주의는 개인들의 최소한의 안전망이었다.</figcaption>
</figure>
&nbsp;
일례로 1930년대에서 60년대 까지 사회보장제도 실시 경험이 전혀 없는 나라는 개발도상국과 선진국을 포함해 딱 5개 나라밖에 없었고, 그 중 하나가 한국이었다. 개인을 보호해줄 사회 안전망이 전무한 상황에서 부여잡을 지푸라기는 오직 가족뿐이었다. 
&nbsp;
그나마 1987년 민주화 대항쟁 이후 국민연금과 의료보험, '모자복지법'과 '영육아보육법' 등의 법안이 만들어졌지만, IMF 경제 위기를 맞아 시민들은 또 다시 위기에 처했다. '믿을 건 가족뿐'이라는 신념이 팽배해졌다.&nbsp;
&nbsp;
내집단에 대한 공고한 믿음은 반대로 외집단에 대한 배타적 태도를 동반한다. '2016 OECD 사회지표'를 보면 거의 모든 지표들이 나쁘지만 그중에서도 사회통합성을 보여주는 타인 신뢰도, 정부 신뢰도, 사회관계는 바닥 수준이었다.
&nbsp;
<figure class="image"><img src="https://d2w3kyicixnbmm.cloudfront.net/episode/q8jrxwaVFoRJxOJ0IRfihVMG8marTVuMKdWyFD2R.jpg?q=20&amp;f=webp" alt="">
<figcaption>IMF 이후로 사회에 대한 신뢰도는 바닥에 떨어지고, 반대로 믿을 것은 가족뿐이라는 생각은 더 강해졌다.&nbsp;&nbsp;</figcaption>
</figure>
&nbsp;
저자는 우리가 이토록 각박해진 이유에 대해 흔히들 말하는 가족 해체, 개인주의화 때문이 아니라 배타적 가족주의에서 비롯된 차별과 혐오의 영향이 가장 크다고 분석한다.&nbsp;
&nbsp;
<hr class="title_dash">
아이 버리기를 부추기는 사회
&nbsp;
'정상가족'이 경쟁의 압박, 가부장의 위계에 짓눌려 있다면, '비정상가족'은 끊임없이 사회의 따가운 시선을 받고 차별적인 법률에 좌절할 수밖에 없다. 그중 가장 손가락질받고 폄하되는 존재는 미혼모다. 
&nbsp;
출산은 가족 제도의 테두리 안에서 일어나야만 정상이고, 이를 벗어나면 '비정상'적이며 '부도덕'하다는 의식이 팽배하기 때문에, 많은 미혼모가 양육을 선택하지 못하고 포기하게 된다.&nbsp;
&nbsp;
<figure class="image"><img src="https://d2w3kyicixnbmm.cloudfront.net/episode/tD7PElU9YaLwCuKtDFcI6y1GgIIL15HpdkQpYtPf.jpg?q=20&amp;f=webp" alt="">
<figcaption>미혼모가 사회의 시선을 이겨내고 행복을 찾아가는 이야기로 대흥행을 했던 영화 &lt;과속스캔들&gt;</figcaption>
</figure>
&nbsp;
저자는 미혼 임산부를 가장하여 콜센터에 전화를 돌려본 적이 있다. 콜센터에서는 출산, 양육 지원 정보를 안내하기는커녕, 대뜸 입양 기관이나 아동양육시설로 안내했다. 구조적으로 아이 버리기를 부추기는 사회인 것이다.
&nbsp;
아이는 '정상가족' 내에서 커야 한다는 의식은 무분별한 입양 러시의 원인이 되었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해외 입양을 가장 많이, 가장 오래 보낸 나라이며, OECD 회원국 중 현재까지 아이를 해외로 입양 보내는 유일한 나라다. 
&nbsp;
제 5공화국 시절 한국은 한 해 1만 명에 가까운 아이들을 해외로 보냈다. 길거리에서 헤매는 아이가 있으면 부모를 찾아주기보다 입양 기관이나 고아원에 보냈다. 1980년대엔 입양이 산업화되면서 미혼모가 아이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정착됐다.
&nbsp;
이주아동 또한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로부터 가장 상처받는 존재들이다. 이미 220만 명에 달하는 외국인이 살고 있음에도, '한국보다 가난한 나라' 출신 외국인에 대한 차별과 혐오는 심각하다. 다문화 가정, 이주노동자들의 가정은 비정상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nbsp;
<figure class="image"><img src="https://d2w3kyicixnbmm.cloudfront.net/episode/0BOIof1Wy5To5vlbgwcH7fzHrVncwHZBI1QxT48Y.jpg?q=20&amp;f=webp" alt="">
<figcaption>다문화 가족은 전국으로 퍼져 우리 사회의 일부가 된지 오래다. 출처 - 대한민국 국가 지도집</figcaption>
</figure>
&nbsp;
일례로 2014년 &lt;아동복지법&gt; 개정안에 미등록 이주아동의 교육권, 의료권 보장이 포함돼 있었는데, 의원실로 항의가 빗발쳐 무산된 일이 있다. '왜 내가 낸 세금으로 불법 체류 아동을 돕느냐'는 논리의 항의였다.
&nbsp;
다행히 법무부는 2021년 미등록 이주 아동이 성인이 될 때까지 한시적으로 국내 체류를 허용한다는 내용의 대책을 발표했다. 저자는 제도 실행의 조건이 까다로워 혜택을 보는 아이들이 소수일 가능성이 크지만, 관련 법률이 조금씩 바뀌어간다는 데서 희망을 보았다.&nbsp;
&nbsp;
<hr class="title_dash">
학대는 비정상가족 안에서만 벌어진다?&nbsp;
&nbsp;
학대와 체벌에 관한 논의에서도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작동한다. 저자는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정상가족 내에서 일어나는 폭력은 체벌이라 정당화하고, 비정상가족 안에서 일어나는 폭력은 학대라 생각하는 경향을 지적한다.
&nbsp;
2016년 3월 정부는 끔찍한 아동 학대를 근절하고자 &lt;아동학대 방지대책&gt;을 발표했다. 학대의 징후를 조기 발견하여 예방하겠다는 취지에서였다. 특히 부모 교육의 실시와 취약계층에 대한 중점적 지원을 강조했다. 
&nbsp;
정부는 &lsquo;한부모 가정, 이혼 가정, 다문화 가정, 새터민 가정, 장애인 가정&rsquo; 등을 취약계층의 예로 들었다. 정상가족이 아닌 형태의 가족에서 학대가 일어나기 쉬울 것이란 판단에 근거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nbsp;
<figure class="image"><img src="https://d2w3kyicixnbmm.cloudfront.net/episode/bVopsGKtAYcVo9zdktaXG3AFM3IXVIu4bpjInHNK.jpg?q=20&amp;f=webp" alt="">
<figcaption>학대냐, 정당한 체벌이냐로 뜨거운 논쟁이 있었던 '사랑의 매'</figcaption>
</figure>
&nbsp;
그러나 체벌과 학대 사이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다.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일하는 상담원들의 말을 들어보면 처음부터 아이를 죽이거나 해를 입힐 의도로 시작하는 학대는 없다. 아동학대는 보통 사람들의 우발적 체벌이 치달은 결과라는 것이 그간 숱한 분석과 연구를 통해 확인됐다. 학대는 비정상적인 사람들에게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nbsp;
학대를 체벌이라 이름붙여 정당화하지만, 체벌은 교육적 효과가 거의 없다. 되레 폭력의 내면화를 통해 뒤틀린 인성을 만들어낼 뿐이다. 2016년 미국 텍사스대학교의 발달심리학자 엘리자베스 거쇼프는 체벌과 관련한 50년 치 데이터를 분석해 체벌을 받은 아이는 반사회적 행동과 공격적 성향을 보이게 될 경향이 높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체벌의 의도와 정반대의 결과가 초래되는 것이다.
&nbsp;
<hr class="title_dash">
자녀를 소유물로 보는 태도, 과보호와 방임&nbsp;
&nbsp;
아이를 부모의 소유물로 생각하면서 과보호와 방임을 오가는 양육 태도가 한국 사회 전반에 퍼져 있다는 사실이 더 큰 문제다. 저자는 과보호와 방임이 반대 개념 같지만, 둘 다 아이를 독립적 존재로 바라보지 못하고 소유물로 바라보는 데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한다.
&nbsp;
과호보의 상황에선 부모의 과잉 교육열과 지나친 간섭이 정서적, 신체적 학대의 양상으로 드러난다. 방임의 경우엔, 부모는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않고 방치하다가 툭하면 화풀이 대상으로 삼는다. 부모와 자녀 사이의 적당한 거리와 존중을 유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양극단의 문제이다.&nbsp;
&nbsp;
<figure class="image"><img src="https://d2w3kyicixnbmm.cloudfront.net/episode/FQRzoiYoNbVbpPNOYVpoDusayqb2fAydVZDHCgaU.gif" alt="">
<figcaption>
"단비꺼야!! 단비꺼!!! 빨리달라니까 뭐하고 있쪄!!!"
&lt;아따아따&gt;의&nbsp; 나단비가 떼를 쓰는 장면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었다.
출처 - 애니메이션 &lt;아따아따&gt;
</figcaption>
</figure>
&nbsp;
저자는 '방임은 개념이 모호할지언정 아동복지법이 정한 학대에 해당하지만 과보호는 그렇지도 않다'면서 그 위험성을 지적한다. 한국 사회의 교육열은 아이가 뒤쳐지면 안된다는 불안을 반영한다. 
&nbsp;
사교육 압박을 포함한 과보호는 아이들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부모로부터 과보호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청소년일수록 자존감이 낮고 우울감이 높은 경향을 보인다. 아이의 미래를 위한 행동이지만, 자녀의 학습에 개입하는 과정에서 기대는 통제와 폭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nbsp;
<hr class="title_dash">
사랑할수록 쿨하게
&nbsp;
서로를 신뢰하면서도 개별성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가족과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저자는 그 롤모델로 스웨덴을 꼽는다. 2차 대전 이후 스웨덴에서는 모든 아이들에게 괜찮은 주거 환경을 만들어 줄 의무가 사회에 있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학교 무상 급식, 아동 병원 등 아동 복지의 토대가 되는 제도들을 처음 도입했다.
&nbsp;
1971년, 세 살 아이를 때려 숨지게 한 아버지가 훈육의 일환임을 인정받아 풀려났다. 사건을 계기로 스웨덴에서는 체벌 금지를 법제화하자는 캠페인이 벌어졌다. 마침내 1979년, 스웨덴 정부는 세계 최초로 가정 내 체벌 금지법을 제정한다. 
&nbsp;
법의 목적은 단지 위반자를 처벌하려는 데에만 있지 않았다. 체벌이 양육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고방식과 문화적 규범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함이었다.&nbsp;
&nbsp;
스웨덴 정부는 체벌을 대신할 수 있는 훈육 방법 설명서를 전국 모든 가정에 배포했다. 독일어, 영어, 불어, 아랍어 등 여러 언어로 번역된 설명서였다. 또한 육아를 하는 가정에 법 제정을 알리기 위해 두 달간 '체벌금지법'에 대한 설명을 시중에 판매하는 우유병에 붙이도록 했다. 비단 법을 제정하는 것을 넘어, 문화적 규범을 바꾸기 위해 스웨덴 정부가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nbsp;
<img src="https://d2w3kyicixnbmm.cloudfront.net/episode/f7aT7J1u9a5nZVNiBi14LJ3qJfqeZneJkvBzS7Wh.jpg?q=20&amp;f=webp" alt="">
&nbsp;
스웨덴의 역사학자 라르스 트레고르드는, 진정한 인간관계는 서로에게 의존하지 않고 평등한 권력 관계에 놓인 개인들 사이에서만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를 '쿨 트러스트 cool trust'라고 명명했다. 스웨덴 정부는 이를 실현하기 위해 매우 작은 사안까지 섬세하게 제도화했다. 
&nbsp;
예컨대 스웨덴의 학생들은 부모 자산과 관계 없이 대출을 받을 수 있다. 경제적으로도 마음만 먹으면 가족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는 것이다. 가족에 의존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토대가 마련돼 있다.
&nbsp;
가족에 대한 정부의 개입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실제로 이 같은 제도들은 오히려 건강한 개인을 만들어 낸다. '정상가족'의 숨 막히는 틀을 조금씩 깨뜨리고 수평적 유대 관계를 확장하기 위해서는 섬세하게 설계된 제도와 그에 걸맞는 규범적 인식 개선을 위한 무던한 노력이 필요하다.

https://seosa.io/episode_text/168318680632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