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주 금요일에 김유담 작가님과 함께 하는 모임이 있습니다. 모임을 준비하면서, 작가님의 책을 다시 읽다가 혼자 보기 아까운 문장들이 많아서 공유합니다. 모두 다 '커튼콜은 사양할게요'에 나오는 문장입니다.
참... 김유담의 서사를 기획한 이유는 궁금해서입니다. 작가님 책은 '괜찮은 삶의 경계선'에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일반적으로 '저 정도면 괜찮아'라고 느끼는 삶의 경계 안에 간신히 들어온 이들. 그래서 안정적이지 않고 불안한. 그런데 밖에서 보면 나쁘지 않은 삶. 도대체 이런 사람들만 다루는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다음으로 궁금한 것은 작가의 관찰법이었습니다. 루트번스타인은 새로운 생각을 만들어내는 생각도구를 13가지로 분류합니다. 김유담 작가님은 그 중에서 관찰, 패턴형성, 형상화에 매우 탁월합니다. 여기서 '관찰'이 모든 것의 시작입니다. 도대체 이렇게 공감가는 문장을 쓰는 작가의 관찰법은 뭐가 다른지 궁금해서 모임을 기획했습니다.
그런 날이 있다. 온 세상을 떠도는 불운이 나를 향해 집중된 것만 같은 날, 내가 우주의 먼지보다 못한 존재로 느껴지는 날, 나는 그런 하찮은 존재가 아니라며 발버둥 치다가 제 발에 걸려 넘어지고 결국 엉망진창이 나를 맞닥뜨려야 하는 날. 앞으로 남은 인생이 이런 날들의 연속이라면 도저히 살아낼 수 없겠다고 생각하면서 차라리 우주 밖으로 사라져버리고 싶은 마음마저 들던 그 순간, 권은 그때 마침 나에게 다가와 당신의 인생이 그렇게까지 최악은 아니라고 말해준 사람이었다.
-> 이런 날 있죠. 내가 정말 우주의 먼지가 되어 버린 날. 사람 때문에 먼지가 되어버렸다가, 사람 때문에 다시 일어서는 날
서울로 들어오는 톨게이트에 접어 들면서, 나는 어른의 세계에 조금씩 가까워져 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회 맛을 안다고 어른이 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아도 필요하다면 삼킬 수 있는 이가 어른이었다.
-> 절반은 동의가 되고, 절반은 동의가 되지 않는 문장이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부터 우리는 입맛에 맞지 않은 선택들을 하고 살아왔으니까요. 어린 시절에는 타의에 의해 입맛에 맞지 않은 선택을 해왔다면, '어른'이라는 세계에 들어선 후에는 입맛에 맞지 않지만, 내 의지로 아니 억지로 선택해서 삼키는 게 차이가 있네요.
모든 서사는 끝내고 싶을 때 끝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으로부터 멀어진 후에야 완결될 수 있다는 걸 쿰쿰한 냄새가 올라오는 학생회관의 무대 위에서 나는 알게 되었다.
-> 그렇죠. 내가 끝내고 싶어서 끝내는 게 아닙니다. 내가 그 시간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있어야지, 그 시간들에 대해 무심하게 이야기하거나 혹은 추억처럼 이야기할 수 있어야지 끝낼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시간이 오래 지나도 끝나지 않은 서사들도 있습니다. 부모님과의 추억이나 정말정말 길게 기억이 남는 성취는 끝나지 않은 서사가 되겠죠. 이렇게 끝나지 않은 서사가 모여서, 흔히들 '나답다'고 표현되는 서사들이 만들어질 것입니다.
좋은 기회가 있다면 잡고 싶다는 열망과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동시에 나를 짓눌렀다. 좋은 기회가 대체 뭘 의미하는지, 내가 찾고 있는 기회라는 게 대체 무엇인지 나 자신도 몰랐다. -> 한 대 맞은 느낌이었습니다. 좋은 기회를 찾기는 하지만, 과연 '나한테 좋은 기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있는 것인지...... 좋아보이는 기회인지 아니면 정말 좋은 기회인지. 좋은 기회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그 기회를 통해 내가 만나는 과정과 결과까지 상상해야 합니다. 내가 어떤 경험을 하게 될 것이고, 그 성취를 통한 이후에 나는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를요. 저만 해도 좋은 기회라고 하는 것들을 상상할 때, 내가 어떻게 변화할지 상상하지 않습니다. 그 기회를 통해 만나는 시간들이 저를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지를 고민하지 않습니다. 좋은 기회가 나를 거만하게 만들 수도 있고, 악에 가까워질 수도 있잖아요. 그런 고민은 하지 않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가 생각하는 좋은 기회란 '남들에게 말하기 좋은 기회'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인생에서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찾아가고 있다는 것에 큰 자부심을 느꼈다. 연극을 위해서라면 죽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유치하지만 그때의 감정은 진심이었다.
-> 유치하지만, 진심인 감정이 있는 시절이 언제였는지 생각해보는데, 어제였습니다. 새벽 1시에 우동을 끓여먹었습니다. 진심으로 '이거야 이거!'를 외쳤습니다. 진심의 시간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이쯤에서 그만두고 싶다. 여러 사람들 앞에서 뇌의 구성 성분이 어떻게 되느냐고 다그치는 팀장의 모욕보다 더 싫은 것은 갈수록 움츠러들고 주눅 들어가는 나를 견뎌야 하는 일이었다.
-> 나에게 못되게 구는 타인도 싫지만, 그런 사람 때문에 부정적으로 변해가는 나를 지켜보는 것은 더 싫습니다.
그곳이 내 자리이고, 그 자리를 지켜야만 지킬 수 있는 것들을 나는 안다.
-> 어른입니다, 어른. 어른의 문장이네요.
본부장은 '활발한 소통' 그리고 '창조적 사고'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다채로운 주제와 인적 구성으로 활발하게 회의를 소집하는 그의 능력만큼은 놀랄 정도로 창조적이었다.
-> 누구나 창조적입니다. 중요한 것은 어느 분야에서 창조적이냐는 것이죠.
앞으로 내 인생에서 박수와 환호를 받기보다는 깜깜하고 막막한 시간을 더 자주 만나게 될 것이다. 그 너저분한 시간 속에서 한때 내가 무대에서 반짝거렸던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아주 조금은 내게 힘을 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 깜깜하고 막막한 시간을 통과할 때, 지금의 내 모습이 나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떠올리는 것은 위로가 됩니다. 잠시라도 반짝거렸던 추억이 있는 것, 그 추억을 공유하는 사람이 있는 것은 확실히 어두운 시간을 통과하는 데 도움이 되겠죠. "오늘 네 모습이 너의 전부는 아니다"라고 말해주는 사람. 이렇게 생각하면, 우리가 맹목적으로 좋아하고 몰입하는 대상이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합니다. 취향이 정체성과 연결되는 지점도 바로 이 부분일 것입니다.
이번주 금요일에 김유담 작가님과 함께 하는 모임이 있습니다. 모임을 준비하면서, 작가님의 책을 다시 읽다가 혼자 보기 아까운 문장들이 많아서 공유합니다. 모두 다 '커튼콜은 사양할게요'에 나오는 문장입니다.
참... 김유담의 서사를 기획한 이유는 궁금해서입니다. 작가님 책은 '괜찮은 삶의 경계선'에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일반적으로 '저 정도면 괜찮아'라고 느끼는 삶의 경계 안에 간신히 들어온 이들. 그래서 안정적이지 않고 불안한. 그런데 밖에서 보면 나쁘지 않은 삶. 도대체 이런 사람들만 다루는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다음으로 궁금한 것은 작가의 관찰법이었습니다. 루트번스타인은 새로운 생각을 만들어내는 생각도구를 13가지로 분류합니다. 김유담 작가님은 그 중에서 관찰, 패턴형성, 형상화에 매우 탁월합니다. 여기서 '관찰'이 모든 것의 시작입니다. 도대체 이렇게 공감가는 문장을 쓰는 작가의 관찰법은 뭐가 다른지 궁금해서 모임을 기획했습니다.
그런 날이 있다. 온 세상을 떠도는 불운이 나를 향해 집중된 것만 같은 날, 내가 우주의 먼지보다 못한 존재로 느껴지는 날, 나는 그런 하찮은 존재가 아니라며 발버둥 치다가 제 발에 걸려 넘어지고 결국 엉망진창이 나를 맞닥뜨려야 하는 날. 앞으로 남은 인생이 이런 날들의 연속이라면 도저히 살아낼 수 없겠다고 생각하면서 차라리 우주 밖으로 사라져버리고 싶은 마음마저 들던 그 순간, 권은 그때 마침 나에게 다가와 당신의 인생이 그렇게까지 최악은 아니라고 말해준 사람이었다.
-> 이런 날 있죠. 내가 정말 우주의 먼지가 되어 버린 날. 사람 때문에 먼지가 되어버렸다가, 사람 때문에 다시 일어서는 날
서울로 들어오는 톨게이트에 접어 들면서, 나는 어른의 세계에 조금씩 가까워져 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회 맛을 안다고 어른이 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아도 필요하다면 삼킬 수 있는 이가 어른이었다.
-> 절반은 동의가 되고, 절반은 동의가 되지 않는 문장이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부터 우리는 입맛에 맞지 않은 선택들을 하고 살아왔으니까요. 어린 시절에는 타의에 의해 입맛에 맞지 않은 선택을 해왔다면, '어른'이라는 세계에 들어선 후에는 입맛에 맞지 않지만, 내 의지로 아니 억지로 선택해서 삼키는 게 차이가 있네요.
모든 서사는 끝내고 싶을 때 끝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으로부터 멀어진 후에야 완결될 수 있다는 걸 쿰쿰한 냄새가 올라오는 학생회관의 무대 위에서 나는 알게 되었다.
-> 그렇죠. 내가 끝내고 싶어서 끝내는 게 아닙니다. 내가 그 시간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있어야지, 그 시간들에 대해 무심하게 이야기하거나 혹은 추억처럼 이야기할 수 있어야지 끝낼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시간이 오래 지나도 끝나지 않은 서사들도 있습니다. 부모님과의 추억이나 정말정말 길게 기억이 남는 성취는 끝나지 않은 서사가 되겠죠. 이렇게 끝나지 않은 서사가 모여서, 흔히들 '나답다'고 표현되는 서사들이 만들어질 것입니다.
좋은 기회가 있다면 잡고 싶다는 열망과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동시에 나를 짓눌렀다. 좋은 기회가 대체 뭘 의미하는지, 내가 찾고 있는 기회라는 게 대체 무엇인지 나 자신도 몰랐다. -> 한 대 맞은 느낌이었습니다. 좋은 기회를 찾기는 하지만, 과연 '나한테 좋은 기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있는 것인지...... 좋아보이는 기회인지 아니면 정말 좋은 기회인지. 좋은 기회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그 기회를 통해 내가 만나는 과정과 결과까지 상상해야 합니다. 내가 어떤 경험을 하게 될 것이고, 그 성취를 통한 이후에 나는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를요. 저만 해도 좋은 기회라고 하는 것들을 상상할 때, 내가 어떻게 변화할지 상상하지 않습니다. 그 기회를 통해 만나는 시간들이 저를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지를 고민하지 않습니다. 좋은 기회가 나를 거만하게 만들 수도 있고, 악에 가까워질 수도 있잖아요. 그런 고민은 하지 않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가 생각하는 좋은 기회란 '남들에게 말하기 좋은 기회'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인생에서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찾아가고 있다는 것에 큰 자부심을 느꼈다. 연극을 위해서라면 죽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유치하지만 그때의 감정은 진심이었다.
-> 유치하지만, 진심인 감정이 있는 시절이 언제였는지 생각해보는데, 어제였습니다. 새벽 1시에 우동을 끓여먹었습니다. 진심으로 '이거야 이거!'를 외쳤습니다. 진심의 시간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이쯤에서 그만두고 싶다. 여러 사람들 앞에서 뇌의 구성 성분이 어떻게 되느냐고 다그치는 팀장의 모욕보다 더 싫은 것은 갈수록 움츠러들고 주눅 들어가는 나를 견뎌야 하는 일이었다.
-> 나에게 못되게 구는 타인도 싫지만, 그런 사람 때문에 부정적으로 변해가는 나를 지켜보는 것은 더 싫습니다.
그곳이 내 자리이고, 그 자리를 지켜야만 지킬 수 있는 것들을 나는 안다.
-> 어른입니다, 어른. 어른의 문장이네요.
본부장은 '활발한 소통' 그리고 '창조적 사고'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다채로운 주제와 인적 구성으로 활발하게 회의를 소집하는 그의 능력만큼은 놀랄 정도로 창조적이었다.
-> 누구나 창조적입니다. 중요한 것은 어느 분야에서 창조적이냐는 것이죠.
앞으로 내 인생에서 박수와 환호를 받기보다는 깜깜하고 막막한 시간을 더 자주 만나게 될 것이다. 그 너저분한 시간 속에서 한때 내가 무대에서 반짝거렸던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아주 조금은 내게 힘을 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 깜깜하고 막막한 시간을 통과할 때, 지금의 내 모습이 나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떠올리는 것은 위로가 됩니다. 잠시라도 반짝거렸던 추억이 있는 것, 그 추억을 공유하는 사람이 있는 것은 확실히 어두운 시간을 통과하는 데 도움이 되겠죠. "오늘 네 모습이 너의 전부는 아니다"라고 말해주는 사람. 이렇게 생각하면, 우리가 맹목적으로 좋아하고 몰입하는 대상이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합니다. 취향이 정체성과 연결되는 지점도 바로 이 부분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