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에 부산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해운대처럼 번화한 곳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구도심 느낌이 나는 서구에서 1박을 했습니다. 출장을 가서 1박을 하고, 밥을 먹으러 가게 되면 정말 열심히 관찰을 합니다. 이곳에서 나는 이방인이라고 생각해서인지, 다른 사람들이 밥먹는 장면, 커플들이 대화하는 모습, 가족들이 재미있게 노는 장면들을 열심히 관찰합니다. 이렇게 관찰을 하면 묘한 감정이 듭니다. 눈 앞의 풍광은 따뜻한데, 나는 이 곳에서 완벽한 타자이기 때문에 굉장히 외롭습니다.
따뜻한데 외롭다.
왠지 익숙한 감정입니다. 곰곰이 생각해봅니다. 이 감정 어디서 처음 느꼈지? 잠시 생각한 끝에 떠올랐습니다. 회사를 다녔을 때입니다. 입사하고, 회사 생활에 조금씩 익숙해져갈 때, 수 많은 사람들에 둘러쌓여 있지만, 결국 혼자라른 사실을 깨달았을 때가 있죠. 모두가 함께 하고 있는 것 같지만, 모두가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구나를 느낀 적이 있습니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함께가 아닐 때가 많습니다.

에드드 호퍼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드는 느낌이 정말 이렇습니다. 따뜻해보이지만, 외롭죠. 그가 그린 대부분의 그림을 보면, 따뜻해보이는 실내에 사람들이 함께 있습니다. 서로 마주보고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각 자의 역할에는 충실한데,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마크 스트랜드가 쓴 '빈 방의 빛'을 통해,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들여다 봤습니다. 그런데, 전...이상하게 에드워드 호퍼를 자꾸 데이비드 호퍼라고 할 때가 많습니다. 왜그럴까요. 궁금하네요. 왠지 그의 그림은 에드워드보다는 데이비드가 더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에드워드 왠지 나약한 느낌인데, 데이비드라고 하면, 고독하게 담배를 피우며 '나는 외롭지 않어'라고 되뇌이며 외로워하는 느낌이 듭니다. 외롭지만 허세스럽게 외로움을 극복하는 느낌. 에드워드 호퍼는 '전 그냥 외로워요' 라며 포기하는 느낌.

"나이트 호크를 보고 있으면 두 개의 모순적인 명령어 사이에서 주춤거리게 된다. 사다리꼴은 가던 길을 계속 가라고 우리를 재촉하고, 어두운 도시 속 다이너의 환한 실내는 우리에게 머물 것을 종용한다."
- 시인이 말하는 호퍼 빈방의 빛 / 마크 스트랜드 / p.20
나이트 호크입니다. 출장지에서 느낄 수 있는 전형적인 감정입니다. 늦은 밤, 숙소에 혼자 누워있기 싫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거리로 나갑니다. 혼자 숙소에 누워있기 싫으니, 커피를 한 잔 하러 갈 수도 있고, 위스키를 마시러 갈 수도 있습니다. 아주 따뜻해 보이는 곳을 찾아들어갑니다. 따뜻해 보이지만, 따뜻한 곳은 아니죠.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공간에 들어가면, 서로 바라보지 않은 사람 한 명이 추가될 뿐입니다.
나이트호크는 전형적으로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지만, 서로에게 관심 없는 순간을 담고 있습니다. 바 위의 두 남녀, 여자가 열심히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남자는 입을 다문채로 정면을 봅니다. 관심이 있다면 고개나 몸이 여자쪽을 향할 수도 있고, 맞장구를 치면서 입이 열려 있을 수도 있지만, 미동도 없는 것 같습니다. 바 안에 직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야기는 들리겠지만, 시선과 몸의 방향은 손님을 향해 있지 않습니다. 자신의 역할에 충실할 뿐이죠.
그림 왼쪽 1/3을 차지하는 어두운 거리가 크게 보입니다. 따뜻해보이는 공간에 머물렀지만, 잠시 후에 나가야 합니다. 아주 잠시, 따뜻해 보이는 공간에 머물겠지만, 외로운 사람의 시선을 보여줍니다.
호퍼의 그림은 짧고 고립된 순간의 표현이다. (시인이 말하는 호퍼 빈방의 빛 / 마크 스트랜드 /p.50)
현실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을 극대화해서, 그림을 통해 느낄 수 있어서 인기가 좋지 않나 싶습니다. 말로는 표현이 안되고, 모호하게 느꼈던 감정을 그림을 통해 형상화시킨 후에 다시 보여주니까요.

호퍼의 세상이 인상적인 것은 악의가 없어서입니다. 색감이나 표정에 모두 악의가 없습니다. 그냥 관심이 없을 뿐이죠. 자연도 인간에게 관심이 없고, 인간도 자연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인간이 자연에게 관심이 있다면, 저렇게 깨끗하게 표현될 리가 없습니다. 관심을 갖고 자세히 들여본다면 분명 잡목들도 있고, 쓰레기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물질이라고는 한 방울도 없습니다. 인간과 자연이 교집합이 없을 때, 가능한 풍경입니다. 호퍼의 세상에서 자연은 서로 섞이지 않고, 배경으로만 존재합니다. 우연히 그 공간에 있었을 뿐이지, 애착이라곤 느껴지지 않습니다. 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앉아 있는 남자, 위에서 소리치는 여자. 남자에게 여자가 하는 '말'은 '소리'였을 것입니다. 아니면, 소음일지도 모르겠고요. 사람의 말에는 귀를 기울이는 것이 정상이지만, 그는 미동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관심없는 사람의 이야기는 소음조차 되지 못합니다. 자연과 사람모두, 악의 없이 관심 없는 세상입니다.

[아침햇살,1952] [케이프 코드의 아침,1950] [볕을 쬐는 사람들,1960]
"그녀는 무언가를 기대하는 듯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무엇을 보고 있는지 또는 정말 무언가를 보고 있기는 한 건지 알 수 없다."
- 시인이 말하는 호퍼 빈방의 빛 / 마크 스트랜드 /p.60
호퍼의 그림 속에 사람들을 보면, 나에게 없는 것을 선망하지만 결코 선을 넘지 않습니다. 아침햇살도 그렇고, 케이프 코드의 아침도 그렇습니다. 모두 창 밖의 '자연'을 보고 있지만, 집 안에서만 보고 있습니다. 집 밖으로 나가서 보는 것도 아니고, 그냥 내가 있는 자리에서 선망하듯이 바라봅니다. 볕을 쬐는 사람들도 그렇습니다. 모두가 대자연을 '감상'하고 있습니다. 결코 집 밖의 바운더리를 벗어나지 않은 곳에서요. 평야로 들어갈 의지가 1도 없습니다. 모두가 잘 차려 있었고, 시선만 자연을 향할 뿐입니다.
우리 삶에서 중요한 가치는 ㅇㅇ이다. 흔히들 물질적 가치보다 정신적 가치가 중요하다는 말을 쉽게 합니다. 다만, 항상 몸은 물질적 가치에 있죠. 내가 지향하는 가치는 선망하는 대상으로만 존재할 뿐, 우리 현실에서 실현되는 가치가 아닐 때가 많습니다. 이럴 때, 정말 고독한 느낌입니다. 분명히 내 삶인데, 내 삶에서 내가 배제된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내 가치가 선망의 가치인지, 아니면 실현되는 가치인지를 차분하게 따져봐야 합니다. 선망할 뿐인 가치는 '나'를 외롭게 만듭니다.
미첼 루트번스타인의 생각의 탄생을 보면, 생각 도구로 '관찰', '패턴형성', '감정이입', '추상화', '형상화'가 있습니다.
호퍼의 그림을 보면, 루트번스타인이 이야기하는 생각 도구들이 어떻게 쓰이는 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살지만 외로운 사람을 '관찰'했겠죠. 그리고 그들의 특징, 함께 있지만 서로에게 관심이 없다'라는 패턴을 주제로 잡았을 테고 그 사람들에게 감정이입하여 배경을 그려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을 그림으로 형상화했겠죠.
호퍼가 가장 탁월해 보이는 지점은 '추상화'입니다.
"추상화의 본질은 한 가지 특징만 잡아내는 것이다."
- 생각의 탄생/미셀 루트번스타인 / p.122
"호퍼의 그림에 등장하는 도시는 대개 사실적이기보다는 형식미가 두드러진다."
- 시인이 말하는 호퍼 빈방의 빛 / 마크 스트랜드 /p.17
모든 것을 걷어내고, 하나의 정서만 전달합니다. 호퍼가 그린 20세기 중반 미국의 자화상에서 우리가 공감하는 이유일 거라 생각합니다.
얼마 전에 부산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해운대처럼 번화한 곳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구도심 느낌이 나는 서구에서 1박을 했습니다. 출장을 가서 1박을 하고, 밥을 먹으러 가게 되면 정말 열심히 관찰을 합니다. 이곳에서 나는 이방인이라고 생각해서인지, 다른 사람들이 밥먹는 장면, 커플들이 대화하는 모습, 가족들이 재미있게 노는 장면들을 열심히 관찰합니다. 이렇게 관찰을 하면 묘한 감정이 듭니다. 눈 앞의 풍광은 따뜻한데, 나는 이 곳에서 완벽한 타자이기 때문에 굉장히 외롭습니다.
따뜻한데 외롭다.
왠지 익숙한 감정입니다. 곰곰이 생각해봅니다. 이 감정 어디서 처음 느꼈지? 잠시 생각한 끝에 떠올랐습니다. 회사를 다녔을 때입니다. 입사하고, 회사 생활에 조금씩 익숙해져갈 때, 수 많은 사람들에 둘러쌓여 있지만, 결국 혼자라른 사실을 깨달았을 때가 있죠. 모두가 함께 하고 있는 것 같지만, 모두가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구나를 느낀 적이 있습니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함께가 아닐 때가 많습니다.
에드드 호퍼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드는 느낌이 정말 이렇습니다. 따뜻해보이지만, 외롭죠. 그가 그린 대부분의 그림을 보면, 따뜻해보이는 실내에 사람들이 함께 있습니다. 서로 마주보고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각 자의 역할에는 충실한데,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마크 스트랜드가 쓴 '빈 방의 빛'을 통해,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들여다 봤습니다. 그런데, 전...이상하게 에드워드 호퍼를 자꾸 데이비드 호퍼라고 할 때가 많습니다. 왜그럴까요. 궁금하네요. 왠지 그의 그림은 에드워드보다는 데이비드가 더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에드워드 왠지 나약한 느낌인데, 데이비드라고 하면, 고독하게 담배를 피우며 '나는 외롭지 않어'라고 되뇌이며 외로워하는 느낌이 듭니다. 외롭지만 허세스럽게 외로움을 극복하는 느낌. 에드워드 호퍼는 '전 그냥 외로워요' 라며 포기하는 느낌.
"나이트 호크를 보고 있으면 두 개의 모순적인 명령어 사이에서 주춤거리게 된다. 사다리꼴은 가던 길을 계속 가라고 우리를 재촉하고, 어두운 도시 속 다이너의 환한 실내는 우리에게 머물 것을 종용한다."
- 시인이 말하는 호퍼 빈방의 빛 / 마크 스트랜드 / p.20
나이트 호크입니다. 출장지에서 느낄 수 있는 전형적인 감정입니다. 늦은 밤, 숙소에 혼자 누워있기 싫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거리로 나갑니다. 혼자 숙소에 누워있기 싫으니, 커피를 한 잔 하러 갈 수도 있고, 위스키를 마시러 갈 수도 있습니다. 아주 따뜻해 보이는 곳을 찾아들어갑니다. 따뜻해 보이지만, 따뜻한 곳은 아니죠.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공간에 들어가면, 서로 바라보지 않은 사람 한 명이 추가될 뿐입니다.
나이트호크는 전형적으로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지만, 서로에게 관심 없는 순간을 담고 있습니다. 바 위의 두 남녀, 여자가 열심히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남자는 입을 다문채로 정면을 봅니다. 관심이 있다면 고개나 몸이 여자쪽을 향할 수도 있고, 맞장구를 치면서 입이 열려 있을 수도 있지만, 미동도 없는 것 같습니다. 바 안에 직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야기는 들리겠지만, 시선과 몸의 방향은 손님을 향해 있지 않습니다. 자신의 역할에 충실할 뿐이죠.
그림 왼쪽 1/3을 차지하는 어두운 거리가 크게 보입니다. 따뜻해보이는 공간에 머물렀지만, 잠시 후에 나가야 합니다. 아주 잠시, 따뜻해 보이는 공간에 머물겠지만, 외로운 사람의 시선을 보여줍니다.
호퍼의 그림은 짧고 고립된 순간의 표현이다. (시인이 말하는 호퍼 빈방의 빛 / 마크 스트랜드 /p.50)
현실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을 극대화해서, 그림을 통해 느낄 수 있어서 인기가 좋지 않나 싶습니다. 말로는 표현이 안되고, 모호하게 느꼈던 감정을 그림을 통해 형상화시킨 후에 다시 보여주니까요.
호퍼의 세상이 인상적인 것은 악의가 없어서입니다. 색감이나 표정에 모두 악의가 없습니다. 그냥 관심이 없을 뿐이죠. 자연도 인간에게 관심이 없고, 인간도 자연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인간이 자연에게 관심이 있다면, 저렇게 깨끗하게 표현될 리가 없습니다. 관심을 갖고 자세히 들여본다면 분명 잡목들도 있고, 쓰레기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물질이라고는 한 방울도 없습니다. 인간과 자연이 교집합이 없을 때, 가능한 풍경입니다. 호퍼의 세상에서 자연은 서로 섞이지 않고, 배경으로만 존재합니다. 우연히 그 공간에 있었을 뿐이지, 애착이라곤 느껴지지 않습니다. 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앉아 있는 남자, 위에서 소리치는 여자. 남자에게 여자가 하는 '말'은 '소리'였을 것입니다. 아니면, 소음일지도 모르겠고요. 사람의 말에는 귀를 기울이는 것이 정상이지만, 그는 미동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관심없는 사람의 이야기는 소음조차 되지 못합니다. 자연과 사람모두, 악의 없이 관심 없는 세상입니다.
[아침햇살,1952] [케이프 코드의 아침,1950] [볕을 쬐는 사람들,1960]
"그녀는 무언가를 기대하는 듯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무엇을 보고 있는지 또는 정말 무언가를 보고 있기는 한 건지 알 수 없다."
- 시인이 말하는 호퍼 빈방의 빛 / 마크 스트랜드 /p.60
호퍼의 그림 속에 사람들을 보면, 나에게 없는 것을 선망하지만 결코 선을 넘지 않습니다. 아침햇살도 그렇고, 케이프 코드의 아침도 그렇습니다. 모두 창 밖의 '자연'을 보고 있지만, 집 안에서만 보고 있습니다. 집 밖으로 나가서 보는 것도 아니고, 그냥 내가 있는 자리에서 선망하듯이 바라봅니다. 볕을 쬐는 사람들도 그렇습니다. 모두가 대자연을 '감상'하고 있습니다. 결코 집 밖의 바운더리를 벗어나지 않은 곳에서요. 평야로 들어갈 의지가 1도 없습니다. 모두가 잘 차려 있었고, 시선만 자연을 향할 뿐입니다.
우리 삶에서 중요한 가치는 ㅇㅇ이다. 흔히들 물질적 가치보다 정신적 가치가 중요하다는 말을 쉽게 합니다. 다만, 항상 몸은 물질적 가치에 있죠. 내가 지향하는 가치는 선망하는 대상으로만 존재할 뿐, 우리 현실에서 실현되는 가치가 아닐 때가 많습니다. 이럴 때, 정말 고독한 느낌입니다. 분명히 내 삶인데, 내 삶에서 내가 배제된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내 가치가 선망의 가치인지, 아니면 실현되는 가치인지를 차분하게 따져봐야 합니다. 선망할 뿐인 가치는 '나'를 외롭게 만듭니다.
미첼 루트번스타인의 생각의 탄생을 보면, 생각 도구로 '관찰', '패턴형성', '감정이입', '추상화', '형상화'가 있습니다.
호퍼의 그림을 보면, 루트번스타인이 이야기하는 생각 도구들이 어떻게 쓰이는 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살지만 외로운 사람을 '관찰'했겠죠. 그리고 그들의 특징, 함께 있지만 서로에게 관심이 없다'라는 패턴을 주제로 잡았을 테고 그 사람들에게 감정이입하여 배경을 그려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을 그림으로 형상화했겠죠.
호퍼가 가장 탁월해 보이는 지점은 '추상화'입니다.
"추상화의 본질은 한 가지 특징만 잡아내는 것이다."
- 생각의 탄생/미셀 루트번스타인 / p.122
"호퍼의 그림에 등장하는 도시는 대개 사실적이기보다는 형식미가 두드러진다."
- 시인이 말하는 호퍼 빈방의 빛 / 마크 스트랜드 /p.17
모든 것을 걷어내고, 하나의 정서만 전달합니다. 호퍼가 그린 20세기 중반 미국의 자화상에서 우리가 공감하는 이유일 거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