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실생활에서 적용하지 못하는 이유는 사건이 관념이 아닌 일상의 세계에서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우리는 '우리'로 사는 데는 적극적이지만 '나'로 사는 데는 소홀합니다. 이는 이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이를 실행할 '힘'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주체력'이라고 부르며, 보편적인 이념이 아닌 자신만의 고유한 활동성을 통해 진정한 주인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 우리에게 인문학이 필요한 이유
인문학의 정의는 ‘인간에 대한 학문’입니다. 또한, 인문학이 추구하는 기본 가치는 어떻게 하면 ‘인문학을 통해 삶의 통찰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나 자신에게 진실한 삶, 이웃과 더불어 사는 도덕적인 삶, 그리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멋진 삶과 의미 있는 죽음을 위해 사는 삶이 인문학적 삶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인문학적 삶을 추구하기 전에, ‘나는 누구인가?’라는 기본적이지만 중요한 질문을 생각해야만 합니다. 인간됨에 대한 성찰로 들어가기 위해서 가장 먼저 ‘나’를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질문을 치열하게 고민했던 역사적 인물을 통해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 자기애와 탁월함
고대 페르시아 제국을 건설한 키루스 대왕은, 우선 자기 자신부터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나를 사랑하라니, 자칫하면 이기적으로 들릴 수 있는 이 말은 실은 ‘탁월함(Virtus)’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훌륭한 사람이란 올바른 일을 하거나 절제를 실천하기 위해서, 그리고 탁월함을 추구하는 것에서는 남들보다 앞서겠다는 자기애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다른 사람들의 삶에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고. 본인도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타인의 비난과 반대가 있더라도 그것이 바른 길이라고 판단되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밀고갈 수 있게 되는 힘이 생기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역사적인 인물들은 이 탁월함을 습득하고 훈련하기 위해 인문학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런 공부는 젊은 사람들의 마음을 바르게 지켜주고, 나이든 사람들의 마음을 행복하게 해줬습니다. 또 다른 위인인 카스트루초 카스트라카니의 생애는 변화무쌍한 세상 속에서 책략을 써서 늘 승리하고, 상대방의 기선을 제압하여 성공을 거두는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탁월함의 화신처럼 살았던 카스트루초도 최후에 이르러 감기에 걸려 죽음을 맞이하게 됨으로써 인간의 유한한 운명을 비껴가지 못했습니다. 단언컨대, 우리에게 인문학이 필요한 이유는 변화무쌍한 세상 속에서 자기 자신을 성찰함으로써, 우리 자신을 인생의 주인으로 살 수 있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유한한 생명을 가진 인간임을 깨닫는 것이지요.
✔ 손끝에서 확장되는 세계
‘자신의 주인으로 산다는 것은’ 기준의 수행자가 아니라 기준의 생산자가 되어보겠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공유하는 보편적인 기준에 견주었을 때 부족하지 않은 인간이 없고, 죄인 아닌 인간이 없고, 결함 없는 인간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나 자신이 주인이 되어서 나 스스로 나의 완결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가 생존하는 공간, 우리의 지혜가 발휘되는 공간인 이 세계에서 우리가 진짜 접촉해야 할 것은 이념이나 이론이 아니라 바로 사건이고 감각입니다. 오직 고유하게 자기 자신에게 맞춰져 있는 손끝에서 나오는 감각의 완성도, 이 개인적인 감각의 활동 폭이 세계로 확장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자신의 주인으로 살게 할 것입니다.
✔ 자신의 주인으로 사는 방법
자신의 주인으로 산다는 것은 보편적인 이념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고유한 활동성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목적은 나를 표현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1. 경계성을 회복하려는 야성
타인의 말을 들을 때, 내 안의 경계성을 회복하려는 야성이 필수적입니다. 삶의 궁극적인 동력은 결국 나를 표현함에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나를 침해하는 어떤 것에도 도전하기를 주저하지 않아야 합니다. 나의 주체성, 나의 존재성, 나의 존엄을 침해하는 것에는 거침없이 저항할 수 있어야 합니다.
2. ‘나’와 ‘사회’가 원하는 것의 구분
내가 좋아하는 것인지 아니면 좋은 것인지, 내가 바라는 것인지 바람직한 것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좋은 것이면서 바람직한 것은 사회가 원하는 것이고 좋아하고 바라는 것이라면 자신이 원하는 것이겠지요. 하고 싶은 것이 바로 자신이 원하는 것입니다.
✔ 죽기 전까지 꼭 지켜야 할 두 가지
사람이 죽기 전까지 버려서는 안 될 두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자기 자신에 대한 무한 신뢰이며, 다른 하나는 자기 자신에 대한 무한 사랑입니다. 자신이 도달한 그 깊이와 높이의 간격만큼이 곧 자기 자신의 함량입니다. 그만큼의 세계가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 함량을 지탱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이념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힘이며 이 힘은 곧 욕망입니다. 이 힘을 바탕으로 모든 것을 이끌어나가는 사람만이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존엄한 존재로 새롭게 등장한 나는 존엄한 활동을 하게 되고, 윤리적 힘을 가진 주체로 탄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알고 확인해가는 여정과 그렇게 확인된 결과가 바로 모든 창조적 동력의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 우리에게 인문학이 필요한 이유
인문학의 정의는 ‘인간에 대한 학문’입니다. 또한, 인문학이 추구하는 기본 가치는 어떻게 하면 ‘인문학을 통해 삶의 통찰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나 자신에게 진실한 삶, 이웃과 더불어 사는 도덕적인 삶, 그리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멋진 삶과 의미 있는 죽음을 위해 사는 삶이 인문학적 삶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인문학적 삶을 추구하기 전에, ‘나는 누구인가?’라는 기본적이지만 중요한 질문을 생각해야만 합니다. 인간됨에 대한 성찰로 들어가기 위해서 가장 먼저 ‘나’를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질문을 치열하게 고민했던 역사적 인물을 통해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 자기애와 탁월함
고대 페르시아 제국을 건설한 키루스 대왕은, 우선 자기 자신부터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나를 사랑하라니, 자칫하면 이기적으로 들릴 수 있는 이 말은 실은 ‘탁월함(Virtus)’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훌륭한 사람이란 올바른 일을 하거나 절제를 실천하기 위해서, 그리고 탁월함을 추구하는 것에서는 남들보다 앞서겠다는 자기애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다른 사람들의 삶에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고. 본인도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타인의 비난과 반대가 있더라도 그것이 바른 길이라고 판단되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밀고갈 수 있게 되는 힘이 생기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역사적인 인물들은 이 탁월함을 습득하고 훈련하기 위해 인문학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런 공부는 젊은 사람들의 마음을 바르게 지켜주고, 나이든 사람들의 마음을 행복하게 해줬습니다. 또 다른 위인인 카스트루초 카스트라카니의 생애는 변화무쌍한 세상 속에서 책략을 써서 늘 승리하고, 상대방의 기선을 제압하여 성공을 거두는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탁월함의 화신처럼 살았던 카스트루초도 최후에 이르러 감기에 걸려 죽음을 맞이하게 됨으로써 인간의 유한한 운명을 비껴가지 못했습니다. 단언컨대, 우리에게 인문학이 필요한 이유는 변화무쌍한 세상 속에서 자기 자신을 성찰함으로써, 우리 자신을 인생의 주인으로 살 수 있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유한한 생명을 가진 인간임을 깨닫는 것이지요.
✔ 손끝에서 확장되는 세계
‘자신의 주인으로 산다는 것은’ 기준의 수행자가 아니라 기준의 생산자가 되어보겠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공유하는 보편적인 기준에 견주었을 때 부족하지 않은 인간이 없고, 죄인 아닌 인간이 없고, 결함 없는 인간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나 자신이 주인이 되어서 나 스스로 나의 완결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가 생존하는 공간, 우리의 지혜가 발휘되는 공간인 이 세계에서 우리가 진짜 접촉해야 할 것은 이념이나 이론이 아니라 바로 사건이고 감각입니다. 오직 고유하게 자기 자신에게 맞춰져 있는 손끝에서 나오는 감각의 완성도, 이 개인적인 감각의 활동 폭이 세계로 확장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자신의 주인으로 살게 할 것입니다.
✔ 자신의 주인으로 사는 방법
자신의 주인으로 산다는 것은 보편적인 이념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고유한 활동성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목적은 나를 표현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1. 경계성을 회복하려는 야성
타인의 말을 들을 때, 내 안의 경계성을 회복하려는 야성이 필수적입니다. 삶의 궁극적인 동력은 결국 나를 표현함에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나를 침해하는 어떤 것에도 도전하기를 주저하지 않아야 합니다. 나의 주체성, 나의 존재성, 나의 존엄을 침해하는 것에는 거침없이 저항할 수 있어야 합니다.
2. ‘나’와 ‘사회’가 원하는 것의 구분
내가 좋아하는 것인지 아니면 좋은 것인지, 내가 바라는 것인지 바람직한 것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좋은 것이면서 바람직한 것은 사회가 원하는 것이고 좋아하고 바라는 것이라면 자신이 원하는 것이겠지요. 하고 싶은 것이 바로 자신이 원하는 것입니다.
✔ 죽기 전까지 꼭 지켜야 할 두 가지
사람이 죽기 전까지 버려서는 안 될 두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자기 자신에 대한 무한 신뢰이며, 다른 하나는 자기 자신에 대한 무한 사랑입니다. 자신이 도달한 그 깊이와 높이의 간격만큼이 곧 자기 자신의 함량입니다. 그만큼의 세계가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 함량을 지탱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이념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힘이며 이 힘은 곧 욕망입니다. 이 힘을 바탕으로 모든 것을 이끌어나가는 사람만이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존엄한 존재로 새롭게 등장한 나는 존엄한 활동을 하게 되고, 윤리적 힘을 가진 주체로 탄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알고 확인해가는 여정과 그렇게 확인된 결과가 바로 모든 창조적 동력의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