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 '부자세'는 가난한 사람을 구제할 수 있을까?

정의란 무엇인가 | 마이클 샌델

'부자세'는 가난한 사람을 구제할 수 있을까? 


공리주의를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다. 공리주의는 19세기 중반 영국에서 나타난 사회 사상으로 가치 판단의 기준을 효용과 행복의 증진에 두었다. 따라서 공리주의가 보는 정의란 행복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벤담의 양적 공리주의 

공리주의를 주장하는 대표적 철학자인 제레미 벤담은 양적 공리주의로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정의와 관련된 가치 판단의 기본 명제로 삼는다. 공리(utility)를 극대화하는 것은 무엇이든 옳다고 여기며, 감정은 우리의 통치권자이며, 따라서 쾌락과 행복은 가져오고, 고통과 불행은 막는 것이 곧 정의라고 주장한다. 또한, 쾌락의 질적인 차이를 완전히 배제한다. “쾌락의 양이 동일하다면 푸시핀 게임 (아이들이 하는 놀이)이나 시를 짓는 행위나 그게 그거다.”라고 주장한다. 벤담의 공리주의의 강점은 사적인 판단을 완전히 배제하기 때문에 매우 유효한 설득력을 지닌다. 그러나 쾌락을 양적으로 환산 가능한 것으로만 간주하여, 쾌락의 질적 차이를 배제하고 만족의 총합에만 방점을 두는 결과, 개인의 기본권이라는 개념 자체를 허구로 보는 약점이 있다. 즉, 공동체를 개인들의 총합으로 이루어진 ‘허구의 집단’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공리주의의 딜레마 

예를 들어 고대 로마에서는 로마 시민들의 유흥을 위해 원형 경기장에 사자와 기독교인들을 함께 풀어 놓았다. 기독교인들은 사자에게 뜯어 먹히는 극심한 고통을 겪지만, 로마 관중은 이 광경을 구경하며 집단적 황홀경에 빠진다. 기독교인들의 고통보다 로마인들의 즐거움이 크다는 조건이 충족될 시 공리주의적 입장에서 볼 때 정의에 부합한다. 왜냐하면 이들은 만족의 총량이 양의 값이므로 이는 기독교인들과 로마 시민들 전체를 합한 사회 전체의 복지의 총량이 늘어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입장을 보고 있으면 정의와 도덕의 불일치가 나타날 수 있다. "도덕적으로 보다 중요한 뭔가를 놓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문제가 머릿속에 물음표를 띄운다.

밀의 질적 공리주의

또 다른 공리주의자 존 스튜어트 밀은 질적 공리주의로서 공리주의의 범위 내에서 벤담의 양적 공리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했다. 그 결과 쾌락의 질적 차이를 인정하여, 고급 쾌락과 저급의 쾌락을 구분하면서 유명한 말을 남긴다. 


“배부른 돼지보다는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


또한, 밀은 개인의 자유를 중시한다. 벤담이 주장한 총량의 일부로서의 개인을 부정하고, 개인의 기본권을 강조했다. 

“정부는 개인을 그 자신으로부터 보호한다면서 개인의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 “다수가 믿는 최선의 삶을 개인에게 강요해서는 안 된다.”, “개인이 사회에 책임을 져야 하는 유일한 행동은 타인에게 악영향을 끼치는 행동뿐이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샌델은 밀의 주장에 대해 개인의 기본권에 대한 전제가 깔려 있어야 가능한 것이라고 비판한다. 하지만 이는 곧 공리주의를 부정하는 것이 된다.


‘부자세’는 가난한 사람을 구제할 수 있을까?

로빈후드식 논변은 부의 재분배를 주장할 수 있는, 꽤 급진적인 공리주의적 논리를 펼친다. 예를 들어 빌 게이츠와 같은 부자가 돈이 줄어들어서 입는 타격과 사람들이 돈을 받아서 늘어나는 혜택이 같아질 때까지 빌 게이츠로부터 계속 돈을 걷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줘야 한다고 생각해 보자. 이에 대한 두 가지 반박이 있다. 하나는 양적 공리주의적 사고 내에서의 반박으로 높은 소득세 부과는 일과 투자에 대한 의욕을 꺾어 생산성을 감소시키고, 이는 결국 사회 전체의 복지의 양을 축소시키게 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양적 공리주의 사고 밖에서의 반박이다. 로빈후드식 계산 자체가 문제의 핵심에서 벗어난 것이며, 부당한 것이라고 판단한다. 왜냐하면 부자에게 세금을 걷어 가난한 사람을 돕는 행위는 개인의 기본권을 침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한, 빌 게이츠가 동의하지 않는 상태에서 돈을 가져가는 것은 강압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 반박은 부의 재분배에 대해 자유지상주의자들이 반대하는 기본 근거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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