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어드 | 조지프 헨릭
당신은 ‘위어드’인가요?
“인간종이 성공을 거둔 비밀은 우리의 원초적인 지성이나 추론 능력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 있는 이들로부터 배우고 배운 것을
사회적 연결망을 통해 외부와 미래 세대로 퍼뜨리는 역량에 있다.”
위어드 / 조지프 헨릭 / 549p
정도성 서사 라이브러리
당신은 친한 친구가 몰고 있는 차를 타고 있습니다. 그런데 친구가 보행자를 칩니다. 당신은 친구가 최고 속도 20마일인 구역에서 최소 35마일로 달렸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당신 말고 다른 목격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친구의 변호사는 당신이 친구가 시속 20마로 달렸다고 증언한다면 친구가 심각한 법적 처벌을 피할 수 있을 거라 말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당신은 어떻게 생각할 것 같나요?
A : 친구는 당신이 (거짓) 증언을 해주기를 기대할 분명한 권리가 있고 당신은 친구가 시속 20마일로 달렸다고 증언한다.
B : 친구는 당신이 자신에게 유리한 증언을 해주기를 기대할 권리가 없으면 당신은 친구가 시속 20마일로 달렸다고 거짓 증언을 하지 않는다.
만약 여기에서 B를 택했다면 당신은 위어드(WEIRD)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 다른 사례를 볼까요. ‘나는 _____ 다.’ 라는 문장을 서로 다른 10가지 내용으로 완성해 봅시다. ‘호기심이 많다', ‘열정적이다', ‘과학자다' 같은 식으로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문장을 쓴다면 당신은 위어드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쯤에서 궁금할 거예요. 대체 위어드(WEIRD)가 무엇일까. WEIRD는 서구의(Western), 교육 수준이 높고(Educated), 산업화된(Industrialized), 부유하고(Rich), 민주적인(Democratic) 사람을 일컫는 말로, 하버드대학교 인간진화생물학과 교수인 조지프 헨릭이 만들어낸 이름입니다.
위어드의 종교, 결혼, 가족
“만약 서기 1000년이나 1200년에 외계인 인류학자 팀이 비행 궤도에서 인류를 관찰했다면, 유럽 사람들이 밀레니엄 후반에 지구를 지배하게 되리라고 절대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내기를 했다면 아마도 유럽 대신 중국이나 이슬람 세계에 돈을 걸었을 것이다. 이 외계인들이 자신들의 궤도에서 보지 못한 것은 중세시대에 유럽의 몇몇 공동체에서 새로운 심리가 조용히 들끓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위어드 / 조지프 헨릭 / 48p
조지프 헨릭은 미국과 유럽 등 서구 국가가 다른 지역과 구분되는 ‘이상한’ 심리를 갖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들은 개인주의적이고 자신의 생각에 사로잡혀 있으며 통제 지향적이고 일반적인 관행을 따르지 않으며 분석적입니다.
또한 수치심보다 죄책감을 더 잘 느끼고(헨릭에 따르면 죄책감은 개인의 기준과 자기 평가에 좌우되는 반면, 수치심은 사회적 기준에 좌우됩니다) 공평한 규칙이나 원칙을 중요하게 여기며 낯선 사람이나 익명의 타자에 대한 신뢰가 높습니다.
헨릭은 위어드의 독특한 심리가 1500년 경부터 서유럽 국가들이 세계의 많은 지역을 정복할 수 있었던 이유, 18세기 말 서유럽에서 신기술과 산업혁명을 동력으로 경제 성장이 폭발적으로 일어나 오늘날까지 서구 문명이 번영할 수 있었던 이유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위어드의 심리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위어드의 종교, 결혼, 가족이 얼마나 이상했는지 알아야 합니다.
당신은 사촌과 결혼한 사람을 얼마나 알고 있나요? 한 명도 알지 못한다면 매우 위어드한 일입니다. 지금도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10건의 결혼 중 1건은 사촌을 비롯한 친척 간의 결혼이거든요. 20세기 후반 데이터에 따르면, 중동과 아프리카 사람들은 최소 25%가 친척과 결혼하고 일부 지역에서는 그 수치가 절반을 넘기도 합니다. 반면, 미국, 영국, 네덜란드 같은 위어드한 나라에서는 사촌과 결혼하는 비율이 0.2%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헨릭에 따르면, 유럽의 집약적 친족 기반 제도는 서기 400년부터 1200년 사이 수백 년에 걸쳐 서서히 해체되었는데요. 한 번에 한 배우자하고만 관계를 맺는 일부일처제도, 중매결혼이 아닌 연애결혼을 하는 것도, 결혼 이후 부모로부터 독립해 핵가족을 이루며 사는 것도 인류 전체의 역사에서 봤을 때 매우 독특한 일이었습니다. 많은 인류는 확대가족 속에서 일부다처제를 허용하고 사촌 간 결혼을 장려하며 살아왔기 때문이죠.
서구 사회에서 친족 기반 제도는 어떻게 해체되었을까요? 그 중심에는 기독교의(로마 가톨릭 교회) ‘결혼 가족 강령'이 있습니다. 결혼 가족 강령은 일부다처, 중매결혼, 혈족과 인척 사이 결혼을 모두 금지했습니다.
기독교는 왜 근친상간을 금지했을까요? 헨릭은 그 첫 번째 이유로 교회 지도자들이 근친상간이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라 믿었기 때문이라 설명합니다. 두 번째로 헨릭은 당시 여러 종교 집단이 서로 경쟁 관계에 있었다는 것에 주목합니다.
조로아스터교는 남매 간의 결혼을 인정했고, 유대교와 이슬람에서는 수혼(남편이 죽었을 때 죽은 남편의 친형제나 가까운 사촌 형제와 결혼해 대를 잇는 관습)과 일부다처혼이 모두 허용됐는데요. 결과적으로 근친상간을 엄격하게 금지한 서방 교회의 결혼 가족 강령은 교회에 막대한 부를 가져다줍니다.
교회가 근친상간, 일부다처, 입양, 재혼을 모두 엄격하게 금지하면서 혈족의 계보가 끊기는 집안이 늘어났고 친족 관계는 점차 약화되었습니다. 또한 교회는 개인의 소유와 유언에 따른 상속을 장려했는데요. 이에 따라 기독교인들은 죽어서 천국에 가기 위해 교회에 재산을 증여했습니다. 돈이 가족 안에서 상속되는 것이 아니라 교회로 흘러가게 된 것이죠. 이는 서방 교회의 성공으로 이어집니다.
낯선 사람과의 신뢰, 협동
헨릭은 한 인구 집단이 ‘결혼 가족 강령'에 오랫동안 노출될수록 친족 기반 제도가 약화된다는 것을 보여주는데요(서방 교회에 100년 동안 노출되었을 때 사촌 간 결혼 비율은 60% 가까이 감소했습니다).
친족 제도의 해체는 유럽인들의 심리에도 변화를 가져옵니다.
씨족 중심의 집약적 친족 관계에서는 친족 집단에 충성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따라서 연장자에게 권위를 부여하고 동료에 순응하고 전통적 권위를 따르고 자기 자신보다 집단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와 달리 친족 관계가 약한 사회에서 개인은 전통적 가족 관계에서 벗어나 낯선 사람과 호혜 관계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이러한 관계에서는 독립적이고 권위에 대한 공경심이 적고 개인의 업적과 성취에 관심이 많아야 더 유리합니다. ‘나는 _____다' 라는 문장을 채울 때 위어드가 타인과 구분되는 자기 자신의 특성에 몰두했던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 글 제일 앞에 나온 탑승자의 딜레마를 볼까요. 연구 결과, 한 나라에서 사촌 간 결혼 비율이 높고 친족 집중도가 높을수록 탑승자의 딜레마 상황에서 허위 증언을 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국 식으로 하면 ‘우리가 남이가'인 것이죠. 반면에 친족 집중도가 낮은 사회에서는 개인적 관계가 없는 낯선 사람과 익명의 타인을 신뢰하며 공정하고 정직하며 협동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를 ‘비개인적 친사회성’이라고 부릅니다.
친족 기반 제도가 해체되면서 중세 유럽인들은 친족 중심의 관계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이동하고 독자적인 관계망을 형성할 수 있게 되는데요. 집약적 친족 기반 제도의 붕괴는 도시의 성장과 시장의 발전으로 이어집니다. 씨족 사회에서는 누군가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 집단 내에서 처벌을 하고 보복을 한다면 친족 기반이 해체된 사회에서는 공식적인 제도와 법률이 중요한데요. 이는 법 제도와 민주주의 발전으로 이어집니다.
헨릭은 주거 이동성과 관계적 자유가 확대될수록 개인이 더 큰 사회적 연결망을 형성하고 창의적으로 사고할 수 있게 된다고 말합니다. 새롭게 만들어진 자발적 결사체 사이의 경쟁은 혁신의 동력이 됩니다. 이 책은 유럽의 집단 지능이 어떻게 과학과 산업 발전을 이끄는지 보여줍니다.
“인간종이 성공을 거둔 비밀은 우리의 원초적인 지성이나 추론 능력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 있는 이들로부터 배우고 배운 것을
사회적 연결망을 통해 외부와 미래 세대로 퍼뜨리는 역량에 있다.”
위어드 / 조지프 헨릭 / 549p
<위어드>는 기독교라는 종교의 결혼 가족 강령이 어떻게 서구에 심리적, 사회적 변화를 가져왔는지 보여주면서 유럽이 어떻게 세계사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는지 설득력 있게 설명하는 책입니다.
헨릭은 이 책에서 ‘공진화(coevolution)’이라는 개념을 강조하는데요. ‘인류의 역사와 뇌 구조까지 바꿔 놓은 문화적 진화의 힘'이라는 이 책의 부제처럼 문화, 제도, 심리가 어떻게 서로 영향을 미치며 인류가 진화했는지 방대한 데이터와 연구 자료와 함께 보여주는 과정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700쪽이 넘는 벽돌책이지만 소설책을 읽듯 다음 장을 넘길 수 있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자기 자신에 집중하고 원칙과 공정성을 중시하며 위계질서에 얽매이지 않는 위어드의 모습이 한국의 MZ세대와 닮았다는 생각도 들었는데요. 서기 1000년에 시작된 변화가 21세기의 한국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지금의 ‘나'가 과거의 수많은 ‘우리'의 총합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위어드 | 조지프 헨릭
당신은 ‘위어드’인가요?
“인간종이 성공을 거둔 비밀은 우리의 원초적인 지성이나 추론 능력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 있는 이들로부터 배우고 배운 것을
사회적 연결망을 통해 외부와 미래 세대로 퍼뜨리는 역량에 있다.”
위어드 / 조지프 헨릭 / 549p
정도성 서사 라이브러리
당신은 친한 친구가 몰고 있는 차를 타고 있습니다. 그런데 친구가 보행자를 칩니다. 당신은 친구가 최고 속도 20마일인 구역에서 최소 35마일로 달렸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당신 말고 다른 목격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친구의 변호사는 당신이 친구가 시속 20마로 달렸다고 증언한다면 친구가 심각한 법적 처벌을 피할 수 있을 거라 말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당신은 어떻게 생각할 것 같나요?
A : 친구는 당신이 (거짓) 증언을 해주기를 기대할 분명한 권리가 있고 당신은 친구가 시속 20마일로 달렸다고 증언한다.
B : 친구는 당신이 자신에게 유리한 증언을 해주기를 기대할 권리가 없으면 당신은 친구가 시속 20마일로 달렸다고 거짓 증언을 하지 않는다.
만약 여기에서 B를 택했다면 당신은 위어드(WEIRD)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 다른 사례를 볼까요. ‘나는 _____ 다.’ 라는 문장을 서로 다른 10가지 내용으로 완성해 봅시다. ‘호기심이 많다', ‘열정적이다', ‘과학자다' 같은 식으로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문장을 쓴다면 당신은 위어드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쯤에서 궁금할 거예요. 대체 위어드(WEIRD)가 무엇일까. WEIRD는 서구의(Western), 교육 수준이 높고(Educated), 산업화된(Industrialized), 부유하고(Rich), 민주적인(Democratic) 사람을 일컫는 말로, 하버드대학교 인간진화생물학과 교수인 조지프 헨릭이 만들어낸 이름입니다.
위어드의 종교, 결혼, 가족
조지프 헨릭은 미국과 유럽 등 서구 국가가 다른 지역과 구분되는 ‘이상한’ 심리를 갖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들은 개인주의적이고 자신의 생각에 사로잡혀 있으며 통제 지향적이고 일반적인 관행을 따르지 않으며 분석적입니다.
또한 수치심보다 죄책감을 더 잘 느끼고(헨릭에 따르면 죄책감은 개인의 기준과 자기 평가에 좌우되는 반면, 수치심은 사회적 기준에 좌우됩니다) 공평한 규칙이나 원칙을 중요하게 여기며 낯선 사람이나 익명의 타자에 대한 신뢰가 높습니다.
헨릭은 위어드의 독특한 심리가 1500년 경부터 서유럽 국가들이 세계의 많은 지역을 정복할 수 있었던 이유, 18세기 말 서유럽에서 신기술과 산업혁명을 동력으로 경제 성장이 폭발적으로 일어나 오늘날까지 서구 문명이 번영할 수 있었던 이유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위어드의 심리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위어드의 종교, 결혼, 가족이 얼마나 이상했는지 알아야 합니다.
당신은 사촌과 결혼한 사람을 얼마나 알고 있나요? 한 명도 알지 못한다면 매우 위어드한 일입니다. 지금도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10건의 결혼 중 1건은 사촌을 비롯한 친척 간의 결혼이거든요. 20세기 후반 데이터에 따르면, 중동과 아프리카 사람들은 최소 25%가 친척과 결혼하고 일부 지역에서는 그 수치가 절반을 넘기도 합니다. 반면, 미국, 영국, 네덜란드 같은 위어드한 나라에서는 사촌과 결혼하는 비율이 0.2%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헨릭에 따르면, 유럽의 집약적 친족 기반 제도는 서기 400년부터 1200년 사이 수백 년에 걸쳐 서서히 해체되었는데요. 한 번에 한 배우자하고만 관계를 맺는 일부일처제도, 중매결혼이 아닌 연애결혼을 하는 것도, 결혼 이후 부모로부터 독립해 핵가족을 이루며 사는 것도 인류 전체의 역사에서 봤을 때 매우 독특한 일이었습니다. 많은 인류는 확대가족 속에서 일부다처제를 허용하고 사촌 간 결혼을 장려하며 살아왔기 때문이죠.
서구 사회에서 친족 기반 제도는 어떻게 해체되었을까요? 그 중심에는 기독교의(로마 가톨릭 교회) ‘결혼 가족 강령'이 있습니다. 결혼 가족 강령은 일부다처, 중매결혼, 혈족과 인척 사이 결혼을 모두 금지했습니다.
기독교는 왜 근친상간을 금지했을까요? 헨릭은 그 첫 번째 이유로 교회 지도자들이 근친상간이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라 믿었기 때문이라 설명합니다. 두 번째로 헨릭은 당시 여러 종교 집단이 서로 경쟁 관계에 있었다는 것에 주목합니다.
조로아스터교는 남매 간의 결혼을 인정했고, 유대교와 이슬람에서는 수혼(남편이 죽었을 때 죽은 남편의 친형제나 가까운 사촌 형제와 결혼해 대를 잇는 관습)과 일부다처혼이 모두 허용됐는데요. 결과적으로 근친상간을 엄격하게 금지한 서방 교회의 결혼 가족 강령은 교회에 막대한 부를 가져다줍니다.
교회가 근친상간, 일부다처, 입양, 재혼을 모두 엄격하게 금지하면서 혈족의 계보가 끊기는 집안이 늘어났고 친족 관계는 점차 약화되었습니다. 또한 교회는 개인의 소유와 유언에 따른 상속을 장려했는데요. 이에 따라 기독교인들은 죽어서 천국에 가기 위해 교회에 재산을 증여했습니다. 돈이 가족 안에서 상속되는 것이 아니라 교회로 흘러가게 된 것이죠. 이는 서방 교회의 성공으로 이어집니다.
낯선 사람과의 신뢰, 협동
헨릭은 한 인구 집단이 ‘결혼 가족 강령'에 오랫동안 노출될수록 친족 기반 제도가 약화된다는 것을 보여주는데요(서방 교회에 100년 동안 노출되었을 때 사촌 간 결혼 비율은 60% 가까이 감소했습니다).
친족 제도의 해체는 유럽인들의 심리에도 변화를 가져옵니다.
씨족 중심의 집약적 친족 관계에서는 친족 집단에 충성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따라서 연장자에게 권위를 부여하고 동료에 순응하고 전통적 권위를 따르고 자기 자신보다 집단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와 달리 친족 관계가 약한 사회에서 개인은 전통적 가족 관계에서 벗어나 낯선 사람과 호혜 관계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이러한 관계에서는 독립적이고 권위에 대한 공경심이 적고 개인의 업적과 성취에 관심이 많아야 더 유리합니다. ‘나는 _____다' 라는 문장을 채울 때 위어드가 타인과 구분되는 자기 자신의 특성에 몰두했던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 글 제일 앞에 나온 탑승자의 딜레마를 볼까요. 연구 결과, 한 나라에서 사촌 간 결혼 비율이 높고 친족 집중도가 높을수록 탑승자의 딜레마 상황에서 허위 증언을 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국 식으로 하면 ‘우리가 남이가'인 것이죠. 반면에 친족 집중도가 낮은 사회에서는 개인적 관계가 없는 낯선 사람과 익명의 타인을 신뢰하며 공정하고 정직하며 협동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를 ‘비개인적 친사회성’이라고 부릅니다.
친족 기반 제도가 해체되면서 중세 유럽인들은 친족 중심의 관계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이동하고 독자적인 관계망을 형성할 수 있게 되는데요. 집약적 친족 기반 제도의 붕괴는 도시의 성장과 시장의 발전으로 이어집니다. 씨족 사회에서는 누군가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 집단 내에서 처벌을 하고 보복을 한다면 친족 기반이 해체된 사회에서는 공식적인 제도와 법률이 중요한데요. 이는 법 제도와 민주주의 발전으로 이어집니다.
헨릭은 주거 이동성과 관계적 자유가 확대될수록 개인이 더 큰 사회적 연결망을 형성하고 창의적으로 사고할 수 있게 된다고 말합니다. 새롭게 만들어진 자발적 결사체 사이의 경쟁은 혁신의 동력이 됩니다. 이 책은 유럽의 집단 지능이 어떻게 과학과 산업 발전을 이끄는지 보여줍니다.
“인간종이 성공을 거둔 비밀은 우리의 원초적인 지성이나 추론 능력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 있는 이들로부터 배우고 배운 것을
사회적 연결망을 통해 외부와 미래 세대로 퍼뜨리는 역량에 있다.”
위어드 / 조지프 헨릭 / 549p
<위어드>는 기독교라는 종교의 결혼 가족 강령이 어떻게 서구에 심리적, 사회적 변화를 가져왔는지 보여주면서 유럽이 어떻게 세계사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는지 설득력 있게 설명하는 책입니다.
헨릭은 이 책에서 ‘공진화(coevolution)’이라는 개념을 강조하는데요. ‘인류의 역사와 뇌 구조까지 바꿔 놓은 문화적 진화의 힘'이라는 이 책의 부제처럼 문화, 제도, 심리가 어떻게 서로 영향을 미치며 인류가 진화했는지 방대한 데이터와 연구 자료와 함께 보여주는 과정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700쪽이 넘는 벽돌책이지만 소설책을 읽듯 다음 장을 넘길 수 있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자기 자신에 집중하고 원칙과 공정성을 중시하며 위계질서에 얽매이지 않는 위어드의 모습이 한국의 MZ세대와 닮았다는 생각도 들었는데요. 서기 1000년에 시작된 변화가 21세기의 한국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지금의 ‘나'가 과거의 수많은 ‘우리'의 총합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