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콜리어 | 제2차 세계대전
모든 걸 파괴하고 모든 걸 창조한 전쟁
제2차 세계 대전의 전쟁 범죄자이자 학살을 서슴지 않았던 히틀러, 그는 왜 그렇게 유대인과 슬라브인 등 인종 학살에 집착했던 걸까요?
‘희대의 악마’라고 불린 히틀러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사상 최악의 전쟁이 시작됩니다.

항생제의 탄생
우리에게 제1차 세계 대전 보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더욱 힘있게 다가오는 이유는 8.15 광복, 남과 북의 분단 등 직접적 연관성뿐 아니라 전쟁의 유산을 현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으로 전쟁 중에 최초의 항생제인 ‘페니실린’을 상용화하여 군인들의 부상과 사망률을 획기적으로 줄여 주었지요. 이때 페니실린의 대량 생산을 성공한 회사는 우리에게도 코로나 백신으로 잘 알려진 제약회사 화이자입니다.
기술 혁명의 탄생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전쟁은 군수 산업을 발달시켰다는 사실 기억하시나요? 제2차 대전은 그야말로 비약적인 과학 기술이 이뤄집니다. 탱크와 항공기, 항공 모함, 전투기 등이 전쟁에 사용되며 기술의 혁명이 일어난 것이죠. 또한 무기와 장비뿐 아니라 장갑차, 전차 등 자동차의 대량 생산이 가능해졌습니다.
평화의 탄생
1차 대전이 끝나고 평화를 위해 국제 연맹이 생겨났었죠. 그러나 제2차 전쟁이 일어남으로써 국제 연맹의 기능은 유명무실화됩니다. 2차 대전 이후 국제 연맹이 사라지고 그 역할을 대신할 국제 연합(UN)이 탄생합니다. 세계 평화와 안전을 위한 국제 기구로써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 것이죠. 이번에는 미국을 포함한 연합국 등이 주도적으로 참여했습니다. 국제 연합은 오늘날까지도 세계의 안전과 평화를 위해 활동하고 있지요.

이제는 이념 전쟁이다!
그래서 전쟁이 끝나고 세계가 평화로워졌냐고요? 약 4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세계는 자유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라는 두 개의 큰 축으로 나뉘어 이념 대립을 했습니다. 냉전(Cold War)의 시대가 열린 것이죠. 분단 국가인 우리에게도 익숙한 개념이죠. 냉전은 선전포고를 하고 물리적 충돌이 일어나는 열전(Hot War)이 아닌, 군비 경쟁, 첩보전 등 정치, 경제적으로 대립하며 긴장 상태를 유지하며 전쟁사의 방향을 전환시켰습니다.

평화를 깨트린 화가 지망생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유럽 국가들은 평화주의적 정서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런 유럽을 단박에 전쟁터로 끌고 온 인물이 나타납니다. 오스트리아 출신이자 화가를 꿈꿨던 청년 아돌프 히틀러. 그가 독일의 최고 권력자에 올라서자, 다시 연합국(영국, 프랑스, 소련, 미국)과 추축국(독일, 이탈리아, 일본)의 두 축으로 나뉘어 제2차 세계 대전(1939~1945)은 시작됩니다. 지긋지긋한 전쟁이 왜 다시 시작되었냐고요? 우선 미국에서 발생한 경제대공황의 불황이 유럽 곳곳에 인플레이션을 발생시켰고요. 그중 제1차 대전으로 전쟁을 일으킨 독일은 전범국이라는 시선과 GDP의 10%를 매년 갚아야 하는 재정적 압박으로 독일 국민의 대부분이 빈곤에 시달렸습니다.
이때 나치와 같은 보복주의적 내셔럴리즘이 나타난 것이죠. 독일 국민과 민족의 단합을 강요한 히틀러는 홀로코스트라는 유대인 대학살 자행합니다. 유대인 학살에는 경제적, 종교적 이유가 있었지만 비밀경찰인 ‘게슈타포’까지 재창설하며 유대인의 자산을 빼앗고,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비롯한 수용소에 가두며 강제 노동과 대량 학살을 저질렀습니다. 특히 독가스 사용과 생체 실험 등 비인륜적인 학살이 숨 쉬듯 이뤄졌지요. 이렇듯 내셔럴리즘으로 무장한 히틀러는 독일 국민을 동요시키는 연설과 선전으로 나치당을 제1당으로 만들고 1939년 폴란드를 침공하며 전쟁은 시작됩니다.

난공불락의 마지노선과 됭케르트 작전
전쟁 초반 독일은 육해공을 막론하고 ‘블리츠크리크’라는 전술로 연합군을 무력화시킵니다. 전격전이라는 낯설고 어려운 단어로 번역되는 이 작전은 ‘블리츠’가 번개, ‘크리크’가 전쟁이라는 뜻입니다. 번개같이 빠르게 적을 섬멸하는 전략이라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1차 대전 이후 프랑스는 국경 지역에 대규모 요새를 설치하죠. 오늘날 ‘최후의 방어선’이라는 뜻으로 종종 사용되는 국방부 장관 마지노가 설계한 ‘마지노선’입니다. 그러나 독일은 마지노선을 건드리지 않고 우회해서 프랑스군을 섬멸합니다. 1940년 독일군의 전술과 기세로 연합국은 그야말로 완전한 포위 상태에 놓입니다.
딱 한 곳을 제외하고요. 그곳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덩케르트’ 영화로도 유명한 됭케르트 해안가입니다. 포위된 병사들을 구하기 위해 영국은 선박 징발 명령을 내리고 650여 척에 달하는 민간 선박까지 동원되어 전쟁터로 향해 갑니다. 어부의 통통배부터 귀족의 초호화 요트까지요. 병사들을 구할 선박은 됭케르트를 향해 가고 있고, 하늘에서는 독일 공군과 영국 공군이 지상전을 펼칩니다. 군인뿐 아니라 민간의 도움까지 들어간 그야말로 온 힘을 다한 됭케르트 철수 작전은 총 33만명을 구출하는 데 성공하며 영국을 비롯한 연합국에게 전쟁의 터닝 포인트를 가져다 줍니다.
전쟁의 판을 뒤집어 놓은 진주만 공습
1차 대전에서 미국을 끌어들인건 독일이었지만 2차 대전에서는 일본이 그 역할을 합니다. 아시아를 넘어 태평양 제패의 야망으로 가득 찬 일본은 1941년 하와이 주에 있는 미군 해군 기지 진주만을 공습하죠. 전쟁을 원하지 않았던 당시 미국인들은 진주만 공습에 큰 충격을 받아 참전 여론이 들끓고 루스벨트 대통령은 ‘치욕의 날’이라는 연설을 하며 전쟁의 판을 뒤집어 놓으려 참전합니다. 영국의 윈스턴 처칠이 미국의 루스벨트를 참전시키기 위해 수많은 편지를 보냈지만 뜨뜻미지근한 답장을 보냈던 미국이었어요. 영국의 전쟁 초대장보다, 일본의 전쟁 고지서가 더욱 확실했던 거죠.
리틀 보이(Little boy)와 팻 맨(Fat man)이 끝낸 전쟁
전쟁 후반부에는 연합국의 반격과 미국, 소련의 참전으로 독일에는 패전의 기운이 감돌기 시작합니다. 1945년 4월 30일, 히틀러는 지하 벙커에서 권총 자살로 최악의 최후를 맞이했으며, 이후 독일의 무조건적인 항복 문서가 발의되었어요. 여름에 열린 포츠담 회담에서 미국, 영국, 중국, 소련은 일본의 항복 조건을 제안하고 항복을 요구하지만 일본은 더 나은 조건을 기대하며 항복을 거부합니다. 사실상 연합국이 보낸 마지막 경고로 히로시마에 ‘리틀 보이’, 나가사키에 ‘팻 맨’의 원자폭탄이 떨어지죠. 인류의 전쟁사를 살펴 봐도 인간뿐 아니라 도시, 미래까지 파괴시키는 무기인 ‘핵’이 등장한 것이죠. 경험하지 못한 파괴력에 일본은 8월 15일 무조건적인 항복을 선언하며 전쟁은 끝이 납니다.
폴 콜리어 | 제2차 세계대전
모든 걸 파괴하고 모든 걸 창조한 전쟁
항생제의 탄생
우리에게 제1차 세계 대전 보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더욱 힘있게 다가오는 이유는 8.15 광복, 남과 북의 분단 등 직접적 연관성뿐 아니라 전쟁의 유산을 현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으로 전쟁 중에 최초의 항생제인 ‘페니실린’을 상용화하여 군인들의 부상과 사망률을 획기적으로 줄여 주었지요. 이때 페니실린의 대량 생산을 성공한 회사는 우리에게도 코로나 백신으로 잘 알려진 제약회사 화이자입니다.
기술 혁명의 탄생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전쟁은 군수 산업을 발달시켰다는 사실 기억하시나요? 제2차 대전은 그야말로 비약적인 과학 기술이 이뤄집니다. 탱크와 항공기, 항공 모함, 전투기 등이 전쟁에 사용되며 기술의 혁명이 일어난 것이죠. 또한 무기와 장비뿐 아니라 장갑차, 전차 등 자동차의 대량 생산이 가능해졌습니다.
평화의 탄생
1차 대전이 끝나고 평화를 위해 국제 연맹이 생겨났었죠. 그러나 제2차 전쟁이 일어남으로써 국제 연맹의 기능은 유명무실화됩니다. 2차 대전 이후 국제 연맹이 사라지고 그 역할을 대신할 국제 연합(UN)이 탄생합니다. 세계 평화와 안전을 위한 국제 기구로써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 것이죠. 이번에는 미국을 포함한 연합국 등이 주도적으로 참여했습니다. 국제 연합은 오늘날까지도 세계의 안전과 평화를 위해 활동하고 있지요.
이제는 이념 전쟁이다!
그래서 전쟁이 끝나고 세계가 평화로워졌냐고요? 약 4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세계는 자유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라는 두 개의 큰 축으로 나뉘어 이념 대립을 했습니다. 냉전(Cold War)의 시대가 열린 것이죠. 분단 국가인 우리에게도 익숙한 개념이죠. 냉전은 선전포고를 하고 물리적 충돌이 일어나는 열전(Hot War)이 아닌, 군비 경쟁, 첩보전 등 정치, 경제적으로 대립하며 긴장 상태를 유지하며 전쟁사의 방향을 전환시켰습니다.
평화를 깨트린 화가 지망생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유럽 국가들은 평화주의적 정서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런 유럽을 단박에 전쟁터로 끌고 온 인물이 나타납니다. 오스트리아 출신이자 화가를 꿈꿨던 청년 아돌프 히틀러. 그가 독일의 최고 권력자에 올라서자, 다시 연합국(영국, 프랑스, 소련, 미국)과 추축국(독일, 이탈리아, 일본)의 두 축으로 나뉘어 제2차 세계 대전(1939~1945)은 시작됩니다. 지긋지긋한 전쟁이 왜 다시 시작되었냐고요? 우선 미국에서 발생한 경제대공황의 불황이 유럽 곳곳에 인플레이션을 발생시켰고요. 그중 제1차 대전으로 전쟁을 일으킨 독일은 전범국이라는 시선과 GDP의 10%를 매년 갚아야 하는 재정적 압박으로 독일 국민의 대부분이 빈곤에 시달렸습니다.
이때 나치와 같은 보복주의적 내셔럴리즘이 나타난 것이죠. 독일 국민과 민족의 단합을 강요한 히틀러는 홀로코스트라는 유대인 대학살 자행합니다. 유대인 학살에는 경제적, 종교적 이유가 있었지만 비밀경찰인 ‘게슈타포’까지 재창설하며 유대인의 자산을 빼앗고,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비롯한 수용소에 가두며 강제 노동과 대량 학살을 저질렀습니다. 특히 독가스 사용과 생체 실험 등 비인륜적인 학살이 숨 쉬듯 이뤄졌지요. 이렇듯 내셔럴리즘으로 무장한 히틀러는 독일 국민을 동요시키는 연설과 선전으로 나치당을 제1당으로 만들고 1939년 폴란드를 침공하며 전쟁은 시작됩니다.
난공불락의 마지노선과 됭케르트 작전
전쟁 초반 독일은 육해공을 막론하고 ‘블리츠크리크’라는 전술로 연합군을 무력화시킵니다. 전격전이라는 낯설고 어려운 단어로 번역되는 이 작전은 ‘블리츠’가 번개, ‘크리크’가 전쟁이라는 뜻입니다. 번개같이 빠르게 적을 섬멸하는 전략이라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1차 대전 이후 프랑스는 국경 지역에 대규모 요새를 설치하죠. 오늘날 ‘최후의 방어선’이라는 뜻으로 종종 사용되는 국방부 장관 마지노가 설계한 ‘마지노선’입니다. 그러나 독일은 마지노선을 건드리지 않고 우회해서 프랑스군을 섬멸합니다. 1940년 독일군의 전술과 기세로 연합국은 그야말로 완전한 포위 상태에 놓입니다.
딱 한 곳을 제외하고요. 그곳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덩케르트’ 영화로도 유명한 됭케르트 해안가입니다. 포위된 병사들을 구하기 위해 영국은 선박 징발 명령을 내리고 650여 척에 달하는 민간 선박까지 동원되어 전쟁터로 향해 갑니다. 어부의 통통배부터 귀족의 초호화 요트까지요. 병사들을 구할 선박은 됭케르트를 향해 가고 있고, 하늘에서는 독일 공군과 영국 공군이 지상전을 펼칩니다. 군인뿐 아니라 민간의 도움까지 들어간 그야말로 온 힘을 다한 됭케르트 철수 작전은 총 33만명을 구출하는 데 성공하며 영국을 비롯한 연합국에게 전쟁의 터닝 포인트를 가져다 줍니다.
전쟁의 판을 뒤집어 놓은 진주만 공습
1차 대전에서 미국을 끌어들인건 독일이었지만 2차 대전에서는 일본이 그 역할을 합니다. 아시아를 넘어 태평양 제패의 야망으로 가득 찬 일본은 1941년 하와이 주에 있는 미군 해군 기지 진주만을 공습하죠. 전쟁을 원하지 않았던 당시 미국인들은 진주만 공습에 큰 충격을 받아 참전 여론이 들끓고 루스벨트 대통령은 ‘치욕의 날’이라는 연설을 하며 전쟁의 판을 뒤집어 놓으려 참전합니다. 영국의 윈스턴 처칠이 미국의 루스벨트를 참전시키기 위해 수많은 편지를 보냈지만 뜨뜻미지근한 답장을 보냈던 미국이었어요. 영국의 전쟁 초대장보다, 일본의 전쟁 고지서가 더욱 확실했던 거죠.
리틀 보이(Little boy)와 팻 맨(Fat man)이 끝낸 전쟁
전쟁 후반부에는 연합국의 반격과 미국, 소련의 참전으로 독일에는 패전의 기운이 감돌기 시작합니다. 1945년 4월 30일, 히틀러는 지하 벙커에서 권총 자살로 최악의 최후를 맞이했으며, 이후 독일의 무조건적인 항복 문서가 발의되었어요. 여름에 열린 포츠담 회담에서 미국, 영국, 중국, 소련은 일본의 항복 조건을 제안하고 항복을 요구하지만 일본은 더 나은 조건을 기대하며 항복을 거부합니다. 사실상 연합국이 보낸 마지막 경고로 히로시마에 ‘리틀 보이’, 나가사키에 ‘팻 맨’의 원자폭탄이 떨어지죠. 인류의 전쟁사를 살펴 봐도 인간뿐 아니라 도시, 미래까지 파괴시키는 무기인 ‘핵’이 등장한 것이죠. 경험하지 못한 파괴력에 일본은 8월 15일 무조건적인 항복을 선언하며 전쟁은 끝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