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사소한 것들 | 클레어 키건
[서사레터 55] 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
정도성 서사 라이브러리 대표


[미묘하게 다른 해외 포스터와 국내 포스터, 처음에는 해외 포스터가 더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국내용 포스터가 영화의 정서를 더 잘 담은 것 같습니다.]
1.
오늘 서사레터는 '이처럼 사소한 것들'에 대한 내용입니다. 영화나 소설을 보신 분은 쉽게 이해하실 수 있지만, 안보신 분들은 약간 불친절할 수 있습니다. 내용을 간단하게 한 줄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결말이 중요한 영화나 소설이 아니라서, 스포지만 스포가 아니라고 확신합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포라고 생각하는 분들을 위해서 3줄을 띄우고 이어가겠습니다. 원치 않는 분들은 나가기를 누르셔도 되는데...암만 생각해도 그냥 읽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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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나 영화나 내용은 동일합니다. 따뜻하고 선함을 간직한 주인공 펄롱이 수녀원에 갇힌 소녀를 구출하는 내용입니다. 한 줄로 쓰니까 액션영화같네요. 테이큰처럼 격투 끝에 나오는 것은 아니고, 그냥 창고에 갇힌 소녀에게 손을 내밀고 부축해서 나옵니다. 이 소설을 너무너무 재미있게 읽어서 영화로 봤습니다.

2.
인스타그램에도 썼듯이, 24일에 관람했습니다. 크리스마스의 설렘과 따뜻함을 느끼고 싶어서 선택했습니다. 아,... 아까 인스타에 올린 글이 영화 수입사에서 스토리에 공유되었습니다. 괜히 뿌듯하더군요. 주연 배우인 킬리언 머피가 좋아요를 누르거나 스토리에 업로드한 것도 아닌데, 그냥 왠지 뿌듯했습니다. 저도 모르게 킬리언 머피를 언급하네요. 네..맞습니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킬리언 머피의 영화입니다. 클레어 키건의 소설이 영화로 각색된 것이 아니라, 그냥 킬리언 머피의 영화처럼 느껴집니다. 소설에서는 이 세상을 따뜻하게 만드는 선함, 특히 개인의 작은 선함들이 아일랜드의 작은 도시를 따뜻하게 채우는 느낌을 줍니다. 주인공 펄롱은 타인의 선함 덕분에 삶을 살아갈 수 있었고, 이제는 자신의 선함으로 타인의 삶에 온기를 불어넣으려 합니다. 클레어 키건의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좋아했던 문장을 딱 2개만 소개하겠습니다.
" 늘 그러하듯, 크리스마스는 사람들한테서 가장 좋은 면과 가장 나쁜 면 둘 다를 끌어냈다." (p.103)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날을, 수십 년을, 평생을 단 한 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며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p.119)
3. 영화는 그렇게 동화 같지 않습니다. 펄롱이 선택을 하기까지의 고민과 번뇌, 불안함이 스크린을 꽉 채웁니다. 그 감정들은 스크린을 뚫고 나오는 듯합니다. 정말로, 왜 저렇게까지 연기를 해서 나를 괴롭히는지 의문이 들 정도입니다. 킬리언 머피 덕분에 크리스마스의 따뜻함을 즐기겠다는 저의 계획은 산산조각났습니다. 하긴, 생각해보면 킬리언 머피라면 이런 전개는 예상했어야 했죠.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어쨌든, 소설 속에서는 클레어 키건의 문장에 감춰져 있던 선택의 그림자들이 무섭게 다가옵니다. 킬리언 머피가 연기한 펄롱을 보면서, 나도 함께 고민하게 됩니다. 내가 과연 선한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계속해서 고민하게 되죠. 아무리 선한 선택이고 선한 행위라고 하더라도,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떠오릅니다. 선함에 대한 선택의 문제가 아닌, 선한 의지의 문제로 변화합니다. 무엇이 옳은 것인지는 모두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의지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내가 선한 선택의 그림자를 온전히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인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질문이 남습니다.

4.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소설처럼, 펄롱이 세라를 데리고 수녀원에서 나옵니다. 펄롱이 손을 내밀고, 세라가 그 손을 잡습니다. 세라는 펄롱을 의지하며 힘겹게 걷습니다. 중간에 힘이 들 때에는 펄롱이 업어주기도 합니다. 솔직히 의문이 들었습니다. 오랜 시간 창고에 갇힌 소녀를 왜 업어주지 않고, 굳이 걷게 하는지...
힘겹게 걷던 소녀와 펄롱은 마을 중심부를 지나갑니다. 펄롱은 앞만 보고 가지만,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집니다. 사람들은 펄롱에게 다가오고, 그는 애써 그들의 시선을 무시하며 집으로 향합니다. 처음에는 펄롱이 세라를 부축하는 듯 보였지만, 나중에는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며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이 듭니다.
펄롱이 업어주지 않았던 이유를 알겠더군요. 혼자만의 선한 의지로는 바꿀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펄롱의 선한 의지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함께 집으로 가겠다는 세라의 의지도 필요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굳은 결심을 하더라도, 소설과 영화의 제목처럼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선한 의지는 아주 사소한 것일 수 있습니다. 사소한 의지로 앞으로 나아간다면 몇 걸음도 못 갈 것입니다. 타인의 시선에 굴복하기도 하고, 스스로 넘어지기도 하겠죠. 그렇지만, 나의 작은 의지가 타인의 작은 의지와 만난다면,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될 것입니다.
5.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마지막 장면이었습니다. 늦은 밤, 펄롱은 세라를 부축하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부엌에는 여전히 불빛이 환합니다. 환청처럼 펄롱의 딸들의 행복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펄롱이 세라에게 손을 내밀고, 함께 부엌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따뜻한 빛은 여전하지만, 딸들의 행복한 목소리는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앞으로 펄롱의 선한 의지는 집 안에서도 도전에 부딪힐 것 같습니다. 그의 선한 의지가 꺾이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안꺽이겠죠. 세라의 의지가 있으니 말이죠.
이처럼 사소한 것들 | 클레어 키건
[서사레터 55] 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
정도성 서사 라이브러리 대표
[미묘하게 다른 해외 포스터와 국내 포스터, 처음에는 해외 포스터가 더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국내용 포스터가 영화의 정서를 더 잘 담은 것 같습니다.]
1.
오늘 서사레터는 '이처럼 사소한 것들'에 대한 내용입니다. 영화나 소설을 보신 분은 쉽게 이해하실 수 있지만, 안보신 분들은 약간 불친절할 수 있습니다. 내용을 간단하게 한 줄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결말이 중요한 영화나 소설이 아니라서, 스포지만 스포가 아니라고 확신합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포라고 생각하는 분들을 위해서 3줄을 띄우고 이어가겠습니다. 원치 않는 분들은 나가기를 누르셔도 되는데...암만 생각해도 그냥 읽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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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나 영화나 내용은 동일합니다. 따뜻하고 선함을 간직한 주인공 펄롱이 수녀원에 갇힌 소녀를 구출하는 내용입니다. 한 줄로 쓰니까 액션영화같네요. 테이큰처럼 격투 끝에 나오는 것은 아니고, 그냥 창고에 갇힌 소녀에게 손을 내밀고 부축해서 나옵니다. 이 소설을 너무너무 재미있게 읽어서 영화로 봤습니다.
2.
인스타그램에도 썼듯이, 24일에 관람했습니다. 크리스마스의 설렘과 따뜻함을 느끼고 싶어서 선택했습니다. 아,... 아까 인스타에 올린 글이 영화 수입사에서 스토리에 공유되었습니다. 괜히 뿌듯하더군요. 주연 배우인 킬리언 머피가 좋아요를 누르거나 스토리에 업로드한 것도 아닌데, 그냥 왠지 뿌듯했습니다. 저도 모르게 킬리언 머피를 언급하네요. 네..맞습니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킬리언 머피의 영화입니다. 클레어 키건의 소설이 영화로 각색된 것이 아니라, 그냥 킬리언 머피의 영화처럼 느껴집니다. 소설에서는 이 세상을 따뜻하게 만드는 선함, 특히 개인의 작은 선함들이 아일랜드의 작은 도시를 따뜻하게 채우는 느낌을 줍니다. 주인공 펄롱은 타인의 선함 덕분에 삶을 살아갈 수 있었고, 이제는 자신의 선함으로 타인의 삶에 온기를 불어넣으려 합니다. 클레어 키건의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좋아했던 문장을 딱 2개만 소개하겠습니다.
3. 영화는 그렇게 동화 같지 않습니다. 펄롱이 선택을 하기까지의 고민과 번뇌, 불안함이 스크린을 꽉 채웁니다. 그 감정들은 스크린을 뚫고 나오는 듯합니다. 정말로, 왜 저렇게까지 연기를 해서 나를 괴롭히는지 의문이 들 정도입니다. 킬리언 머피 덕분에 크리스마스의 따뜻함을 즐기겠다는 저의 계획은 산산조각났습니다. 하긴, 생각해보면 킬리언 머피라면 이런 전개는 예상했어야 했죠.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어쨌든, 소설 속에서는 클레어 키건의 문장에 감춰져 있던 선택의 그림자들이 무섭게 다가옵니다. 킬리언 머피가 연기한 펄롱을 보면서, 나도 함께 고민하게 됩니다. 내가 과연 선한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계속해서 고민하게 되죠. 아무리 선한 선택이고 선한 행위라고 하더라도,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떠오릅니다. 선함에 대한 선택의 문제가 아닌, 선한 의지의 문제로 변화합니다. 무엇이 옳은 것인지는 모두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의지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내가 선한 선택의 그림자를 온전히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인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질문이 남습니다.
4.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소설처럼, 펄롱이 세라를 데리고 수녀원에서 나옵니다. 펄롱이 손을 내밀고, 세라가 그 손을 잡습니다. 세라는 펄롱을 의지하며 힘겹게 걷습니다. 중간에 힘이 들 때에는 펄롱이 업어주기도 합니다. 솔직히 의문이 들었습니다. 오랜 시간 창고에 갇힌 소녀를 왜 업어주지 않고, 굳이 걷게 하는지...
힘겹게 걷던 소녀와 펄롱은 마을 중심부를 지나갑니다. 펄롱은 앞만 보고 가지만,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집니다. 사람들은 펄롱에게 다가오고, 그는 애써 그들의 시선을 무시하며 집으로 향합니다. 처음에는 펄롱이 세라를 부축하는 듯 보였지만, 나중에는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며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이 듭니다.
펄롱이 업어주지 않았던 이유를 알겠더군요. 혼자만의 선한 의지로는 바꿀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펄롱의 선한 의지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함께 집으로 가겠다는 세라의 의지도 필요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굳은 결심을 하더라도, 소설과 영화의 제목처럼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선한 의지는 아주 사소한 것일 수 있습니다. 사소한 의지로 앞으로 나아간다면 몇 걸음도 못 갈 것입니다. 타인의 시선에 굴복하기도 하고, 스스로 넘어지기도 하겠죠. 그렇지만, 나의 작은 의지가 타인의 작은 의지와 만난다면,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될 것입니다.
5.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마지막 장면이었습니다. 늦은 밤, 펄롱은 세라를 부축하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부엌에는 여전히 불빛이 환합니다. 환청처럼 펄롱의 딸들의 행복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펄롱이 세라에게 손을 내밀고, 함께 부엌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따뜻한 빛은 여전하지만, 딸들의 행복한 목소리는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앞으로 펄롱의 선한 의지는 집 안에서도 도전에 부딪힐 것 같습니다. 그의 선한 의지가 꺾이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안꺽이겠죠. 세라의 의지가 있으니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