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당신은 중산층입니까?

중산층경제학 | 노영우

당신은 중산층입니까?


우리는 가까운 주변에서 잘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들을 늘 보면서 자랐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유독 평등의식이 강한 사람들로 묘사된다. 부자가 되는 과정도 부자에서 가난한 사람이 되는 과정도 자주 목격했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되는 것이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생각도 하게 된 것 같다. 재밌는 현상은 3대 정도를 놓고 얘기를 해보면 대부분 비슷비슷하다는 것이다. 잘살았던 세대가 한 세대 정도는 있고 어려웠던 시절도 한 번 정도는 있다. 조금 스펙트럼을 넓혀보면 우리는 모두 중산층이다.

중산층경제학, 노영우, 61p



박정민 에디터

중산층이 안정적이어야 나라가 안정적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중산층은 중요한 중간지점 역할을 합니다. 중산층의 소득 전체는 상류층보다 많고, 소비 또한 계층 중 가장 활발히 이루어지죠. 경제는 중산층이 바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예컨대, 중산층이 미래 경기를 낙관적으로 보고 현재의 소비를 늘린다면 미래 경기는 실제 호황국면을 맞이할 수 있다고 저자는 서술합니다. 이는 부동산과 주식시장도 마찬가지입니다. '큰손'들이 시장을 움직이지만, 중산층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집값은 오르기 마련입니다.


노동자와 정부, 기업과 노동자가 대립할 때 그들 자신이 아무리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개인’이라고 주장할지라도 개개인의 논리에는 '입장'이라는 것을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저자는 이러한 '입장'에서 중산층을 위한 경제를 따져봅니다.


변화하는 중산층의 현실

90년대에는 사람들이 자신과 경제적 여건이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며 살았지만, 현대에 와서 점점 계층 간 격차는 심화되고 이것의 극복은 더욱 요원해지고 있습니다. 2007년과 비교하면 중산층에서 상위계층으로의 이동 비율은 2.4% 하락했습니다. 중산층이 역동적으로 움직여야 계급 이동이 다양한 것인데, 한국은 중산층을 유지하는 비율이 올라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한국의 중산층은 어떤 모습일까요? 우리는 과연 안정적이고 활력 있는 중산층을 유지하고 있는 걸까요? 그 물음에 답하려면 먼저, ‘중산층’이라는 말 속에 담긴 기준과 정체성부터 되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중산층인가?

한국에서 중산층을 구분하는 경제적 기준은 주로 소득과 자산을 중심으로 하며, 통계청이나 연구기관에서는 중위소득의 50~150% 또는 200% 구간에 해당하는 가구를 중산층으로 정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사람들이 인식하는 주관적 기준은 개인이 스스로를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며, 실제 소득 수준과 관계없이 생활 방식이나 소비 여건, 심리적 안정감 등을 근거로 자신을 중산층이라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컨대, 일정 수준의 주거 안정, 자녀 교육비 부담 가능성, 여행이나 문화생활 등을 영위할 수 있는 정도를 중산층의 조건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처럼 한국 사회에서는 객관적 지표와 주관적 인식 사이에 간극이 존재하며, 많은 사람이 실제보다 더 넓은 범위를 중산층으로 자처하는 특징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국 중산층 경제를 이해하는 일곱 개의 키워드

  1. 욕망 - 중산층의 욕망은 무한하지 않다

경제학은 '인간의 욕망은 무한하다'라고 가정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한국의 중산층의 욕망은 엇비슷합니다. 어느 정도까지만 물질적 부를 축적하고 싶어 하는 것이 그들의 소망입니다. 저자가 만나본 중산층 중에서 막연히 무한히 많은 재산을 원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들의 욕망은 유한합니다. 자신의 욕망을 구체화하고 따져본 다음 현실적인 고민을 하는 것이 중산층으로서 경제를 보는 출발점입니다.


  1. 회색 - 섞인 색이 아니라 실용적인 색

여기서 회색은 다면성을 의미합니다. 이들은 소비자이면서 생산자, 노동자이자 기업주이기도 하죠. 예를 들어 무인도에 표류한 크루소는 하루 몇 시간의 노동하고, 얼만큼을 먹고 잘 것인가를 정하는 경제적 의사결정을 해야합니다. 이과정에서 그는 기업가, 노동자, 소비자로 나눠서 결정을 합니다. 

이처럼 중산층은 스펙트럼이 넓기 때문에 기업주나 노동자 단체처럼 하나의 목소리를 내야 하는 연대를 이루기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경제 논리도 이데올로기적으로 선명하지 않기에 매우 실용적이며 유연한 관점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1. 공정 - 학연, 지연 없이 노력과 실력으로

다른 계층에 비해 경쟁에 익숙합니다. 어려서부터 경쟁적인 환경에 많이 노출된 탓에 경쟁에 적극적이고 생존력이 강합니다. 하지만 한국의 만연한 학연, 지연, 혈연에 의한 승진과 보상 때문에 정정당당한 실력경쟁이(미국에 비해) 이루어지기 어렵습니다. 경쟁을 해보지도 못하고 승자와 패자가 갈리는 것이죠. 중산층 주도 경제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런 부당한 요인들을 없애야 합니다.


  1. 지대 - 중산층 성장의 적, 독점권 경쟁

'지대 추구 경쟁'은 남들보다 유리한 자리를 차지하려고 돈이나 힘을 쓰는 경쟁입니다. 예컨대, 정부가 주는 판매 독점권을 얻기 위해 기업 간에 로비 경쟁을 벌이는 것이죠. 이러한 현상이 과열되면 기존 기득권자인 상류층이 유리한 경쟁 구도가 형성돼 계층 간 이동이 고착화되고 양극화가 더 빠르게 진행됩니다. 기득권의 반칙이 만연한 경제는 공정한 규칙을 선호하는 중산층의 삶을 어렵게 만듭니다.


  1. 소비 - 소득보다 더 중요하다

한국 중산층은 소비에 인색합니다. 과도할 정도로 '자식에게 뭔가를 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죠.

예를 들어, 40대 중반의 직장인 A씨는 아직 본인의 노후 준비가 충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매달 자녀의 사교육비와 대학 등록금 적금을 우선순위에 두고 있습니다. 그는 "내가 쓸 돈은 줄이더라도 아이에게는 최대한 투자해야 한다"며, 집을 살 때도 언젠가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을지를 먼저 고려합니다. 이처럼  개인의 현재보다 자녀의 미래와 가족의 ‘계속됨’에 가치를 두는 행동은, 후손들이 대를 이어 나의 유전자가 계속 이어지는 '무한생존모델'의 관점에서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능해집니다.


  1. 점유 - 소유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날 때

거주에 대한 인식이 소유보다 점유에 방점이 찍힌다면 어떨까요? 자본주의는 계속해서 사람의 소비심리를 자극합니다. 뭔가를 갖기 위해 일을 더 열심히 하는 것은 자본주의 경제의 기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집을 소유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패배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실제 집의 효용은 소유가 아닌 점유에서 오는 주택서비스입니다. 집을 '점유'하면서 효용을 느낀다면 굳이 소유에 대한 조급함과 주택가격 급등도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1. 상속 - 중산층의 이야기가 될까?

한국은 상속세가 높은 편입니다. 상속이나 증여할 재산이 커질수록 세금을 더 많이 매기게 되죠. 공제 폭도 좁은 편입니다. 하지만 중산층의 상속 평균은 10억 원을 넘지 않으므로 각종 공제를 적용한다면 실질적인 세금은 미미합니다. 때문에 당장에 중산층에게 상속세는 큰 문제가 아닙니다.  즉, 제도적으로 상속세는 상류층에 유리하지 않지만, 중산층에게 ‘정서적 불안 요소’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리적 불안이 크다는 점에서, 상속은 중산층의 현실보다는 미래에 대한 불안을 반영하는 키워드입니다.


중산층의 위기

자료: 한국노동패널, 조사국 고용분석팀, 저자 조사역 한지우, 팀장 오삼일


AI가 가져올 양극화

기술 혁신은 언제나 일자리에 영향을 줬습니다. 그러나 지금 등장한 AI는 이전과 다릅니다. AI가 위협하는 직업군의 중심에는 바로 중산층이 있습니다. 이전의 자동화가 주로 단순노동을 대체했다면, AI는 의사·회계사·건축가 같은 고숙련 화이트칼라 직업군을 먼저 겨냥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기술 발전의 문제가 아니라, 중산층 기반 자체가 흔들리는 구조적 변화입니다. 

인간은 그대로인데 반해 AI는 점점 더 정교해지고 있습니다. 일의 효율이 좋은 AI가 사람을 대체해도 무방할 수준이 되면, 이윤을 중요시 하는 고용주는 노동자의 비율을 낮춥니다. 생산구조가 바뀌고 자연스레 많은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잃게 됩니다.


그렇게 산업 전반적으로 근로자들의 임금은 줄어들고 실업은 늘어날 것입니다. 물론 분야에 따라 그 속도는 다를 것으로 예상합니다. 

의사, 한의사, 임상병리사는 AI 노출지수 99%로 가장 높습니다 (가장 낮은 직업은 가수, 경호원). 그다음으로는 중산층 또는 중산층 이상이 갖고 있는 직업인 건축가, 수의사, 회계사, 간호사 그리고 다른 화이트칼라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더욱 무서운 점은 AI는 빠르게, 넓게 그리고 영구적으로 직업군을 위협한다는 것입니다. 이 실업은 구조적, 항구적인 실업입니다. 경기가 살아나도 새로 고용될 가능성이 없죠. 그렇게 최대 피해자는 중산층이 될 것으로 보이며 이는 극심한 양극화라는 부작용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예상됩니다.


정치 없는 기술은 해답이 아니다

한국 중산층은 그동안 경제 성장을 지탱해왔지만, 이제는 기술과 계층, 정치의 교차점에서 새로운 위기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AI는 효율이라는 이름 아래 구조적 실업을 만들고, 이 위기의 최대 피해자는 결국 중산층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기술을 어떤 사회적 규칙 아래 수용할 것인가입니다. 중산층의 안정을 위한 정치적 개입, 속도 조절, 제도 설계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중산층 경제학’은 결국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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