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중세의 기사단이 인스타그램 계정이 있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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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한 작전 | 유발 하라리

중세 기사단이 인스타그램 계정이 있는 이유


영속하는 조직은 어떤 특징이 있을까요?  

유발 하라리의 '대담한 작전'에 나오는 나자리파와 병원 기사단의 내용을 통해 알아 봅시다.



정도 서사 라이브러리 대표


중세 십자군 시대에 설립된 병원기사단(성 요한의 예루살렘과 로도스와 몰타의 주권 군사병원 가사단)은 1048년 예루살렘에서 설립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로마를 포함한 곳곳에 지부가 설립되어 있습니다. 당연히 홈페이지도 있고, SNS 계정도 있습니다. 중세 시대에 생겼고, 십자군 시대에 예루살렘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던 조직이 인스타그램을 운영하고 있죠. . 어떻게 중세 시대에 설립된 기사단이 21세기에도 활동을 할 수 있을까요? 당시에 활동하던 수많은 세력들과 비교해보면 그 비밀을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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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두려워한 니자리파 

 병원기사단이 설립된 십자군 시대 팔레스타인 지역에는 정말 다양한 세력들이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왕이 직접 참여한 군대가 오기도 했고, 귀족들이 이끄는 십자군도 있었습니다. 기독교 세력에 대항하는 이슬람의 군대들도 있었죠. 그리고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았던 세력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도 등장하는 중세 중동의 암살단 조직인 ‘니자리파’가 있었습니다. 이들이 키워낸 암살자들은 ‘히사신’이라고 불렸고, 영어로는 ‘어쌔신(Assassin)’이라고도 불렸습니다. 암살자라는 단어의 어원이 되는 조직이었습니다. 이들은 이슬람 국가와 기독교 국가를 가리지 않고,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서 마구잡이로 암살을 했던 집단입니다.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누구도 섣불리 건드릴 수 없는 세력이었습니다.

 
연쇄 암살자의 암살 조건

 나자리파의 명성을 떨치게 된 사건이 1192년에 있었습니다. 십자군을 이끌던 지도자 '콘라트'는 대관식을 코앞에 두고 이스라엘 티레의 성에서 많은 군중들이 보는 앞에서 수도자로 위장했던 니자리파의 암살자들에 의해 살해당합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니자리파의 명성이 더욱 확고해졌습니다. 이들은 암살이 주는 심리적인 공포를 극대화하기 위해 주로 공개된 장소에서 단검으로 암살하는 것을 즐겼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암살을 꺼리는 대상이 있었습니다. 바로 템플 기사단과 병원 기사단이었습니다. 기사단의 무력이 강해서가 아니라 암살의 효과가 없기 때문입니다.

“니자리파의 지도자가 ‘만약 템플 기사단장이나 병원 기사단장을 죽인다면, 그들에 못지않게 유능한 사람이 다시 그 자리에 앉을 터이니 그들을 죽여서 얻을 이득이 없다고 여겼다." 65p

이슬람과 기독교를 가리지 않고 암살을 하던 니자리파는 오직 템플 기사단과 병원 기사단은 공격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공물을 바치며 그들과 분쟁을 만들지 않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이길 수 없는 적과는 불필요한 분쟁을 만들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템플 기사단과 병원기사단은 리더가 중심이 된 것이 아니라 조직의 가치가 중심이 되었습니다. 리더가 죽임을 당해도, 조직의 가치에 충실한 누군가가 그의 빈자리를 메웁니다. 나자리파가 오랜 시간동안 공을 들여, 기사단장을 암살한다고 해도 기대할 수 있는 효과는 없었습니다. 


 성 요한 기사단의 병원 내부 출처:wiki pedia


조직을 이끄는 두 가지 동기 : 외재적 동기 VS 내재적 동기

조직을 이끄는 동기에는 외재적 동기와 내재적 동기가 존재합니다. 외재적 동기는 승진, 보상 등으로 이루어집니다. 내재적 동기는 조직의 설립 가치, 영향력 등이 포함되어 있죠. 어쌔신들의 암살이 가장 큰 효과를 거둔 경우는 지나치게 리더에게 권한이 집중되어 있는 조직이었습니다. 리더가 개인적인 카리스마 혹은 리더가 제시하는 보상이나 승진으로 동기부여되는 조직은 암살을 당했을 때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영지를 약속받을 수도 없고, 부를 축적하거나 명예도 얻을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암살을 당한 조직은 근본부터 흔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는 죽는다. 반면 병원 기사단은 달랐습니다."

병원 기사단은 성지 회복을 위한 순례자들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으로 세워졌고, 그 이후에는 차츰 순례자들을 지키기 위해 군사적인 목적이 추가되었습니다. 보상이 아닌, 가치의 실현이 중심이었고 엄격한 규율이 존재했기 때문에 리더가 죽더라도 다음 지도자에 의해 조직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조직원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가치를 제시했고, 이 가치에 동의하는 자들만이 기사단에 들어왔습니다. 내재적 동기로 움직이는 조직에서 제거해야 할 사람을 찾기는 어려웠습니다. 조직이 지향하는 가치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하지만, 조직이 영속할 수 있는 구심점이 되는 것은 분명합니다.

 구심점이 없는 조직은 위기 시에 뭉치는 것이 아니라 흩어지게 됩니다. 구심점이 명확한 조직은 위기가 닥치면 하나로 대응하게 됩니다. 다만, 이때 구심점이 리더 개인의 카리스마에 의존한 것이라면 리더의 위기가 곧 조직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중세 기사단에서 배우는 사회생활

니자리파는 몽골의 유럽 원정 때 궤멸당합니다. 모두가 두려워하던 그들도 더 강한 상대가 찾아왔을 때, 저항하지 못하고 무너져버린 셈입니다. 병원 기사단은 오스만 투르크에 공격을 받습니다. 로도스섬에 주둔하던 기사단은 오스만 투르크에 패배하고, 몰타섬으로 옮깁니다. 다시 몰타섬을 공격한 오스만 투르크와 치열한 접전 끝에 승리합니다.  

그 후로도 수많은 위기들이 있었지만, 병원 기사단의 가치에 공감하는 기사단원들의 헌신에 힘입어 지금까지 기사단은 유지되고 있습니다. 

영속하는 조직을 만들고 싶다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가치가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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